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시험
5월 중순, 대망의 CAP 파티시에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시험은 Chef-d'œuvre였다. Chef-d'œuvre는 지원자가 CAP 파티시에를 따야 하는 이유, 그리고 일과 공부 외에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했는지를 발표하는 자리이다. 일반교과 교사 1인과 현직 파티시에 1인 총 2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5분 동안 자신의 프로젝트를 설명한 후, 5분 동안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자격증 하나에 왜 이런 시험이 굳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지만, 준비하면서 계속 왜 2년 동안이나 파티시에 공부를 했는지, 왜 이 공부를 계속할지 잊지 않게 해 준 고마운 과목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1년은 프로젝트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우리 반 학생들이 선택한 주제는 새로운 '맛'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였는데 주변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얼마나 호응을 얻었는지, 가격은 얼마로 책정하면 좋을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등을 매끄럽게 잘 설명해야 한다. 만약 실제로 수행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대충 레시피를 따와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실제로 하지 않은 것은 티가 많이 나는 법이라 2년 내내 우리를 지도해 준 선생님은 실제로 수행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사실 2년 차 어프헝티가 개발한 레시피를 일반교과 심사위원이나 20~30년 경력이 있는 파티시에 심사위원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없다. 얼마나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했는지 그 솔직한 노력의 과정을 평가하는 자리인 것이다.
시험 당일날 아침,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시험장인 학교에 도착했다. 공지판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니 앞에서 두 번째이다. 이름 옆에 적혀있는 생년월일. 아무래도 이번 연도 시험 지원자 중에 최고령자는 나인 것으로 드러나 살짝 부끄러웠다. 지난주에 학교에서 만났던 학급 친구들은 다들 멋지게 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보니 근사해 보이는 녀석들. 아침에 아이들을 배웅해 준 부모님들은 얼마나 기특했을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주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과 아뜰리에였다. 나의 특수교사 이력과, 툴루즈 시각장애인 연합회에서 진행한 아뜰리에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것, 준비하면서 겪은 '불어로 수업하기'의 어려움, 그리고 나중에 장애인을 고용한 제과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목표까지. 5분이라는 시간에 이 모든 걸 담아내기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임에 틀림없다. 다행히 5분 동안 외워서 말해야 하는 건 아니라 발표내용을 요약한 종이 한 장과 발표 주제와 관련된 사진 자료 등을 가지고 갈 수 있다. 내가 중점을 둔 건 최대한 심사위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발음을 천천히 그리고 바르게 하는 것이었다. 영어도 스와힐리어도 아닌 제4의 외국어로 발표 내용을 다 외우는 건 임신과 동시에 더 부족해진 암기력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시험 전 일주일 동안 매일 밤. 타이머를 켜놓고 발표 내용을 입 밖으로 읽고 또 읽었다.
드디어 시험이 치러지는 교실에 들어갔다. 친절한 심사위원들은 본인들의 자기소개부터 해주었다. 다년간의 교사생활이 주는 장점은 아무리 떨려도 빨리 말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콧잔등에 땀이 나기 시작할 때쯤 발표가 모두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질의응답시간.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왜 히필 Banoffee 케이크로 아뜰리에를 진행했는지, 앞으로도 계속 아뜰리에를 할 의향이 있는지, Chef-d'œuvre 과목이 CAP 파티시에를 준비하면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계속 말을 더듬고 단어가 생각이 안나, 한 말을 또 하고 또 했지만 심사위원들 눈을 똑바로 보고 답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시험장을 나왔을 때 그 해방감이란! 집에 돌아와서 시험장에 들고 간 자료들을 책장 한 곳에 꽂아 두었다. 40대, 50대가 되어 이 자료를 보면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시험은 영어 말하기 시험이다. 이 시험은 유일하게 인근 다른 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침 8시까지 오라고 해서 갔는데, 시험 순서를 보니 한참 뒤에 배정받았다. 같은 반 학생들과 수다도 떨고 학교 매점에서 핫초코도 마시면서 기다렸다. 마침내 10시 15분이 되어서 내 차례가 돌아왔다.
영어 말하기 시험은 3분의 발표와 3분의 질의응답 총 6분 동안 진행된다. 심사위원은 단 한 명. 시험장에는 발표 지를 가져갈 수는 없고 Carte mentale이라고 마인드맵 형식으로 몇 개의 단어만 적힌 종이 한 장을 가져갈 수 있다. 주제는 영어권 나라에 관한 것이어야 하는데, 영국의 빅벤, 비틀즈, 머핀, 럭비 등이 다른 학생들이 선택한 발표 주제였다. 나는 나의 이십 대 초반을 함께한 아일랜드 캠프힐을 선택했다.
계속 영어로 된 발표 텍스트를 보다가 심사위원이 발표에 앞서 몇 가지 질문을 불어로 하니 영어로 답해 버렸다. 심사위원 앞에서 영어 실력을 과시하려던 건 절대 아니고, 다만 언어 호환이 쉽지 않은 나이인지라... 3분 발표 내용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심사위원의 질문세례가 시작되었다. 왜 프랑스, 그것도 하필 툴루즈에 왔는지, 미래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제과점을 차린다면 프랑스가 될지 한국이 될지, 한국의 제과와 프랑스의 제과는 많이 다른지, 프랑스에서 차린다면 한국 전통 과자도 판매할 건지 등등을 물었다. 가볍게 수다 떠는 느낌으로 대답을 했고, 심사위원도 잠시 펜을 내려놓은 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시험장을 나설 때에는 '당신의 제과점이 오픈하면 꼭 방문할게요'라는 응원의 말도 해주었다. 이렇게 두 번째 시험도 끝. 우리 반 학생들은 내가 영어시험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참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전 과목을 불어로 봐야 하기에 이런 숨통 트일 과목이 하나쯤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동안은 하루는 시험을 보고 나머지 며칠을 일을 하는 주가 계속 반복될 것 같다. 계속되는 기상시간 변경으로 피곤은 하지만 한 과목 한 과목 시험을 다 치르는 그날까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