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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May 29. 2023

1차 실기시험

plutôt bon!

    5월 25일. 대망의 1차 실기시험.

실기시험에 필요한 제과도구를 싸니 가방 두 개로는 부족하다. 혹시 몰라 간이 전자저울에 믹서기까지, 시험 도중 갑자기 온도계 건전지까지 나가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건전지까지 챙기다 보니 짐만 한 가득이다. 시험 전날에야 생각난 50센티짜리 자를 넣으니 짐가방만 3개. 그것도 적어도 7시 30분까지 시험장에 도착해야 해서 변수가 많은 대중교통보다는 차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이미 겪은 직원들은 이 초조함을 알기에 힘내!라고 어설프게 응원하기보다는 Merde(젠장!!!!!) 라고 욕을 해주었다. 그렇다. 이 떨림과 긴장은 Merde라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다. 


    시험 전날 일을 하고 퇴근하니 낮 1시. 평소 같으면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바로 낮잠을 잤을 텐데, 긴장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학교에서 지난 2년간 실습시간을 통해 모은 레시피들을 차례대로 다시 읽어 내려가며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실습시간에는 배우지 않았으나 시험에 나올 수 있는 품목들은 유튜브로 검색해서 보고 또 보고. 영어 말하기 시험장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들은 말로는 가장 일찍 시험을 본 친구들은 주제로 Chausson aux abricot, Tarte abricot pistache, Pâte feuilletée salée,  Petit fours poche pâte d'amande, Chocolate cookies가 나왔다과 한다. 같은 주제가 나올 확률은 적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레시피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시험날 아침. 새벽 6시에 일어나 흰쌀밥을 김에 싸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하루 종일 서서 시험을 치를 텐데, 더욱이 틈만 나면 배고픈 임신 5개월 차 임산부에게 밥만큼 든든한 식사도 없었다. 6시 45분, 다행히 같은 날 시험을 보게 된 저스틴과 같이 차를 타고 학교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런지 학교 정문이 굳게 닫혀있다. 십 오분쯤 기다리니 교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준다. 그래도 늦은 것보다 나은 것이라 위로하며 짐을 이고 지고 탈의실에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으려니 생각지 못한 변수에 웃음이 나왔다. 급격히 나온 배 때문에 바지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 더욱이 속에 배까지 덮는 압박스타킹까지 신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지금은 겨우겨우 몸을 끼여 넣었는데 한 달 후에 있을 2차 실기 시험 때는 배가 더 나올 테니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톡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아가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야 오늘 하루 잘 부탁해.' 이렇게 CAP 시험 사상 어쩌면 처음으로(?) 뱃속 태아와 엄마가 함께 시험장에 입장했다. 


    시험장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번호표를 뽑는 것이었다. 신분증을 내고 수험표를 확인하고 뒤집힌 번호표 중 하나를 골라 보니 숫자 4가 적혀있다. 오늘 하루 종일 나는 기호 4번이다. 4번 자리에 가서 보니 저스틴은 뒷자리로, 앞에는 제레미가, 대각선 방향으로 엘리시아가, 옆에는 뒤늦게 나웰이 왔다. 아는 얼굴이 많으니 조금 안심이 됐다. 12명의 시험 참가자, 6명의 심사위원, 재료들이 떨어지거나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도와주시는 교수님까지 시험장소는 꽉 찼다. 작업대를 소독하고 도구를 정돈하고 나니 심사위원들이 쓰기 시험지와 주제를 나누어주었다. 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시험 주제는 

 6 Chausson aux pomme (사과 컴포트도 직접 만들 것)

 Palmier

 Tarte aux multi fruits avec Crème pâtissière

 30~50 pieces de macaron avec Framboise pépin 


    팔미에는 집에서 밖에 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아예 낯선 주제는 하나도 없었다. 차근히 쓰기 시험문제에 답을 적어내고 남은 시간 동안은 대략의 작업 순서와 지정해 준 양에 따라 재료들의 양을 계산했다. 30분 동안 이어진 쓰기 시험 답안을 제출한 후 바로 Pâte feuilletée 작업에 들어갔다. 실습시간은 총 4시간 50분이다. 5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4가지 품목을 만들어내라니, 집에서 취미 삼아 베이킹을 할 때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지난 2년 동안 새벽마다 매일매일 일하면서 단련된 근육들은, 한 번 익힌 자전거 타기 기술이 평생 지속되듯이 긴장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고, 한 작업을 하면서 다음번 할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시험에 있어 한 순간의 선택도 참 중요한 것 같다. 시험 전날 쇼숑을 만들면서 Hugo가 했던 반죽과 반죽 사이에 계란 물을 바르지 않아도 반죽끼리 서로 잘 붙으며 오히려 계란 물 때문에 더 지저분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 과감히 계란물을 안에는 바르지 않고 겉에만 발라주었다. 그리고 마카롱을 만들 때에도 과감히 두 가지 색을 섞어 보았다. 머랭을 정확히 잘 나눠서 섞어야 해서 어려운 작업이다. 실패할 확률이 더 크다. 하지만 성공하면 더 돋보일 수 있어서 과감히 도전해 보았고 다행히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크기 조절에 실패했지만 무사히 잘 구워져 나온 마카롱, 산처럼 잘 부푼 쇼숑오폼, 그리고 팔미에 

    시험을 치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참가자들 간의 호흡이었다. 함께하는 시험이 아닌데 어째서?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죽을 얇게 펴주는 laminoir는 단 한대, 오븐도 모두가 한 번에 넣기엔 부족했다. 눈치껏 기계에 대기 줄이 긴 것 같으면 다른 작업을 먼저 하거나, 마카롱은 중간에 오븐 문을 열면 실패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먼저 다 굽기까지 순서를 기다려주는 등의 배려도 필수이다. 다행히 2년 간 함께한 친구들이 함께 있어 의사소통 하기가 어렵진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매서운 눈을 가진 평가자이자 시험을 도와주는 조력자이기도 했다. 타르트 장식으로 쓰일 사과를 반절 쪼갰을 때 색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대로 사용하려 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심사위원이 나에게 사과를 새로 가져다주었다. 알고 보니 내 chef-d'œuvre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분. 너무나도 감사했다. 내가 불어를 잘 못한다는 걸 알기에 말대신 행동으로 바로 사과를 가져다 주신 센스 존경해, 존경해! 내 차례의 laminoir 사용법이 왔을 때 갑자기 등 뒤로 3명의 심사위원이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회사에서 쓰던 기계와 달라 멈추는 방법을 몰라 처음부터 반죽이 기계에서 떨어져 버렸다. 심사위원이 긴장하지 말고 하라며 멈추는 방법까지도 설명해 주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심사위원은 또한 후배 참가자들에게 배우려는 자세도 잊지 않았다. 나의 두 가지 색 마카롱은 관심의 대상이어서 6명 앞에서 Dresser 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마치 스타 셰프가 진행하는 마스터 클래스 마냥. 오븐에서 나왔을 때 예쁘게 잘 나온 모습에 박수도 쳐주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크기 조절에 실패해 살짝 크게 만드는 바람에 딱 30개 정량이 나왔다. 그래서 내 마카롱 코크를 구경하다 하나를 떨어뜨린 심사위원과 눈이 마주쳤고, 서로 머쓱한 상황도 연출됐다. 개수에 모자라면 감점 요인이라 하나의 코크도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떨어졌던 코크는 살짝 쪼개졌지만 그 코크는 아랫면으로 가게끔 안 보이게 해 두었다.           

마카롱과 과일 타르트. 마카롱을 쌓아 예쁘게 전시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과일 타르트. 과일 타르트가 시험 주제로 나와 놀라웠다. 생과일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시험 주제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업장에서 조차 써보지 못한 신기한 과일들을 써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신이 났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큰 실수를 한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옆에서 작업하던 나웰은 시험에도 지각하더니 시간 부족으로 팔미에는 만들지 못했다. 다른 참가자들 대부분 마카롱 코크를 충분히 말리지 않고 바로 오븐에 구워 겉면이 쫙쫙 쪼개지는 실수를 저질렀다. 엘리시아는 깜빡하고 크렘 파티시에를 냉동고에서 꺼내지 않아 꽁꽁 얼어버린 크림을 다시 녹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남들보다 30분은 일찍 끝내 일찍이 정리에 들어간 참가자도 있었다. 같은 시간을 공부했는데도 이렇게 다른 결과물을 낸다니, 제과는 정말이지 어렵고도 신기하다. 


    4시간 50분. 화장실도 갈 틈이 없던 바쁜 시간을 보내고 끝이 났다. 작업대에 결과물만 남겨두고 시험장을 나섰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길 시간이다. 그 사이 30분 동안 우리는 잠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배고픈 것도 배고픈 것이었지만 갑자기 긴장이 풀리자 화장실이 더 급했다. 시험 내내 뱃속의 아가도 긴장했던 걸까,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던 아가가 쉬는 시간부터 활발히 태동을 시작했다. 엄마 시험에 집중하라고 조용히 있었던 거니?라고 생각이 들자 빙긋 웃음이 났다. 


    시험장에 다시 들어가 시험장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명씩 불려 가 말하기 시험을 진행했다. 10분 동안 진행되는 말하기 시험은 자신의 제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심사위원들이 팔미에를 맛보고 개선점을 말하는 시간, 그리고 몇 가지 이론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나의 팔미에를 맞본 심사위원들은 모양과 단단함에는 칭찬을, 맛에서는 설탕이 살짝 부족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설탕 많이 넣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그리고 팔미에보다는 팔미토라는 모양에 좀 더 비슷하다고, 불어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만난 심사위원은 나에게 사과를 가져다준 친절한 심사위원이라 그런지 이론 질문도 거의 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청소시간. 다른 참가자들의 말하기 시험이 끝날 때까지 두 시간가량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오늘 만든 제품들은 다 버려진다는 말에 심사위원들이 없는 틈을 타 맛을 보기도 했다. 몰래 제품 사진을 찍는 참가자들 틈에 나도 버려지는 제품이 아까워 슬쩍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원래는 모두 금지라서 쉿!


    시험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피곤함에 거실 바닥에 누워 팅팅 부운 다리만 주무르다 그대로 잠에 들었다. 1차 시험이 끝났다는 후련함, 그리고 아직 더 많이 남은 나머지 시험에 대한 걱정에 만감이 교차했다. 3주만 더 노력하면 이 모든 과정도 끝이 난다!


    P.S. 바로 그다음 날 시험을 본 참가자들의 주제에는 생전 처음 들어본 품목도 있었다. 시험은 역시 운도 좋아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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