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Français, PSE, Mathématiques-physique, Anglais 총 4가지 과목의 시험을 치렀다. 이틀연속으로 보는 시험이라 마치 중고등학교 기말고사를 치르는 기분으로 임했다. 2년 전 제과학교에 입학했을 땐 이 많은 일반교과들을 어떻게 다 공부하나 걱정이 앞섰는데, 시험을 다 치르고 보니, 학교 수업만 놓치지 않고 충실히 따라가면 결코 어려운 시험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시험시작 30분 전 학교에 도착해 로비에 공지한 시험장을 확인했다. 시험시간 10분 전, 시험장에 들어가서는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나 꺼진 것을 감독관에게 보여주고 그대로 가방에 넣어 교실 앞에 두었다. 감독관은 제과학교 선생님들로 저번주에 수업이 다 끝나서 시간이 있는 선생님들로 배정한듯했다. 곧 행정실 직원이 교실마다 다니며 검은 봉투에 담긴 시험지를 배부하였다.
첫 번째 불어 읽기 쓰기 시험. 다행히 외국인이라 불어시험만큼은 한불-불한사전 사용이 허용되었다. 지난 기출문제로 모의시험을 봤을 때는 빅터 휴고의 레미제라블이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고전문학이 출제되어 지문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 해도 꽤 어려웠다. 문학작품의 어휘들, 특히 고전문학의 어휘는 일상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도 않을뿐더러 사전에도 나오지 않을 만큼 낯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불어 시험은 다른 과목들은 불어로 공부하는 게 다 불어공부다 라는 마음으로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다. 그저 시험 전날 기사 쓰기, 편지 쓰기, 논설문 쓰기 방법만 살짝 들쳐본 게 다일 정도로 마음을 살짝 내려두었다. 그리고 받아 든 시험 문제. 다행히 현대문학에서 발췌된 짤막한 지문이었다. 미용실에만 가면 미용사와 어색하게 원하지 않는 수다를 떨고,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어색한 상황이 싫어 무조건 맘에 든다고 말하는 상황을 그렸다. 쉽지 않은 어휘도 많았지만, 내용 자체는 재미있었다. 지문과 관련된 문제를 다 풀고 나니 남은 시간은 약 40분. 쓰기 문제가 남았다. 그런데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하나 둘 답안을 제출하고 교실을 떠나고 나니, 감독관 둘과 나 혼자만 시험장에 남게 되었다. 불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에겐 전혀 어렵지 않은 수준인가 보다란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쓰기 문제에 집중했다. 주제는 어느 한 직업을 가졌다는 가정하에 고객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온 상황에서 사장에게 본인의 노력에 대해 어필하는 대화문을 20~30 문장으로 적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내가 파티시에인 상황을 설정해 대화를 풀어나갔다. 아마 모든 학생들이 본인에게 익숙한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작문을 하는데에 있어서 사전의 역할은 중요했다. 철자를 확인하는 것도 그렇지만 불어 명사는 남성형 여성형이 구분되어 관사나 형용사까지 그 생김새가 달라지기 때문에 아는 단어라도 성별을 확인하기 위해선 사전이 꼭 필요했다.
참고로 나처럼 외국인인 경우 사전 사용은 허락되지만 추가 시험시간이 주어지진 않는다. 루카처럼 학습장애가 있는 경우엔 답안을 대신 적어주는 보조인력도 배정되고, 50% 추가 시간도 함께 주어졌다. 이런 경우엔 교내 별도의 시험장에서 실시되었다. 대신 문제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학생들과 동일한 시간에 시작하고 추가시간을 고려해 시험과 시험 사이 1시간씩 쉬는 시간도 배정되었다.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 시험 관리 업무를 맡았던지라 이런 세세한 진행과정을 보는 게 재미있다. 바삐 뛰어다니는 통에 땀 흘려가며 시험지를 배부하는 행정실 직원이 이 시험 준비를 위해 며칠이나 야근을 했을까 동병상련까지 느꼈다. 아 옛날이여.
불어 시험 문제지. 다행히 이해하기 수월한 현대문학이 출제되었다. 두 번째 시험인 PSE. Prévention Santé Environnement의 약자로 우리나라로 치면 실과 혹은 보건 과목에 해당된다. 이 과목은 일반교과가 아닌 전문교과라서 모든 CAP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필수로 통과해야 하는 과목이다. 이미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진 학생이라도 이 과목은 꼭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직장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 상해나 보험처리, 응급처치 방법에서부터 성병예방과 피임방법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주제가 꽤 방대했다. 이 과목은 준비하는 데 있어 용어를 익히고 외우는 게 걸림돌이었다. 용어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 혹은 서술형이라서 답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부분점수조차 얻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고안해 낸 방법은 학창 시절에 사용하던 영어 단어 암기장. 작은 수첩에 용어와 그 정의를 적어서 틈만 나면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이 방법이 도움이 되었던 게, 시험 마지막 문제의 답은 심장제세동기 'Défibrillateur Automatisé Externe (DAE)'이었다. 단어가 워낙 길고 어려워서 그 약자인 DAE만 외웠었는데, 이게 딱 출제되어 그나마 약자라도 적어낼 수 있었다. PSE는 이론 시험 중에 가장 오랜 시간 준비했었고, 용어나 줄임말을 보았을 때 이게 뭐와 관련된 용어인지는 알 수 있을 정도까진 되었을 때 기출문제들을 풀어보았다. 참고로 CAP 시험은 2020년 이후로 개정되어 문제 출제 형식이 많이 바뀌었다. 교재에 나오는 법이나 규칙도 많이 바뀌기 때문에 이왕이면 최신 기출문제들 위주로 공부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모의 시험에서 받은 만점. 그런데 정작 실제 시험은 결과가 어떨지 감이 오지 않는다. 세 번째 시험이었던 수학-과학. 한국에서 공통교육과정을 수료한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는 과목이다. 계산기도 사용할 수 있고 수준도 중학교 수준의 방정식, 전기, 원자 정도를 다루는데, 다만 답을 적을 때 숫자만 적어내선 안되고 문장으로 답을 적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불어로 반올림이 뭔지, 전압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이 아니었더라면 혼자 준비하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1시간 30분 배정된 이 시험에서 30분 일찍 답안을 제출하는 여유도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실시된 영어 듣기-읽기-쓰기 시험. CAP를 준비하는 많은 학생들이 포기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듣기 문제가 끝나자마자 반 이상의 학생이 시험지를 제출해 버리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옆 학생들과 장난을 쳤다. 영어 시험 수준 차체는 정말 쉽지만 이렇게 영어를 지독히 싫어하는 프랑스사람들의 진면목을 엿보는 게 재밌기도 했다. 나는 실수로 점수를 잃고 싶지는 않아 답안을 몇 번 더 확인하고 제출했다. 이틀에 걸친 4과목의 시험. 실기시험에 비해선 그 중요도가 높진 않지만,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실기시험에서의 실수에 대비해 과락 없이 모두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는 건 중요한 것 같다. 이제 남은 시험은 불어 말하기, 역사-지리 말하기 시험과 실기 2차 시험이다. 특히 불어, 역사 말하기 시험은 영어 시험을 포기한 프랑스 학생들의 마음을 백번이고 공감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이제 정말 2주도 채 남지 않은 CAP 시험. 그리고 한 달도 남지 않은 생또방에서의 근무. 진짜 마지막까지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무사히 잘 마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