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중국어
오랑우탄이 직장 동료들과의 약속으로 집을 비운 어느 날이었다. 근래 계속 내 마음 한구석을 불편케 하는 중국어 공부를 기필코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날이기도 했다. 당시 상황으로 말하자면, 호기롭게 시작했던 처음 결심과는 달리 나의 중국어 열정은 점점 불씨를 잃어 가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주마다 한 번씩 보기로 한 단어 시험을 세 번은 더 봤어야 했지만, 의도치 않은 여러 병원 신세와 겹친 귀차니즘은 모든 것을 손에서 놓게 만들었다.
장담컨대 혼자 조용히 시작했던 공부라면 진즉 그만두고 이미 책에는 먼지가 수두룩하게 쌓여있었을 것이다. 불편한 내 마음의 근원은 ‘또 잠깐 깔짝대다가 포기한 나’가 아니라 ‘오랑우탄에게 한심하게 비춰질 의지 없는 나’였다. 내가 이대로 공부를 포기해도 그는 별말 없이 받아들일 테지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느낄 그의 감정을 상상하는 것이 못내 괴로웠다. 물론 그는 이미 낌새를 채고 있었다.
“코코넛은 계속 중국어 배우고 있니?”
“응. 가끔 뭐… 시간 되면.”
내가 그에게 중국어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어머님께, 오랑우탄은 우리가 약속했던 ‘매주 한 번’이 아닌 ‘가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나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얘가 곧 포기하겠거니 생각하는 때를 틈타 반전을 주고 싶었다. 나 역시도 다시 열정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상해를 거닐며 중국어를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던 그 소중한 순간을 흐지부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다 간신히 책상에 앉았을 땐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고작 몇 주라지만 한 번 놓은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데는 꽤나 큰 의지력이 필요했다. 그간 열심히 외웠던 것들을 죄다 까먹었을 게 분명한 터라 더더욱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한참을 쓸데없는 생각으로 허비하다 그냥 시작만 하자는 생각으로 이전에 공부한 내용을 무작정 훑어 내려갔다. 물론 쉽지 않았다.
‘병음 다 찢어발겨 버릴까’
‘한자 선 넘네?’
‘이 성조 새끼가 진짜….’
그럼에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들어맞은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꾸역꾸역이라도 보다 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공부는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그날 훑어본 중국어들이 다시 들어찼다. 완벽하게 공부를 끝마친 것도 아니었지만,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마치 묵혀 둔 체증이 가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달까.
한숨 자고 일어나 충전된 다음 날은 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어제 중국어 공부의 물꼬를 터놨다는 생각에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날을 계기로 나의 중국어 열정은 다시 불을 피웠다. 분명 다시금 하기 싫어지는 날들이 찾아올 테지만, 아마도 이번 경험을 토대로 더 수월하게 제동을 걸 수 있지 않을까. 비단 중국어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결론은 하기 싫어도 어떻게든 시작하면 한층 좋은 결과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