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엄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아빠가 못내 안쓰러웠는지 직접 선 자리까지 알아보며 재혼을 추진했고, 아빠는 거절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빠는 홀로 엄마의 역할까지 병행하며 오빠와 나를 키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엄마와의 기억 대신, 내 어린 시절 대부분은 아빠로 메워졌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아빠는 내 삶의 전부였다.
비교적 무던한 오빠와 달리, 고집 센 아빠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아빠와 참 많이도 부딪쳤다. 아빠가 보수적이고,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아빠의 나이대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제서야 돌이켜보되 그건 억압이 아닌 과보호였다. 이 생때같은 자식들을 보호할 사람이 오직 자신뿐이라는 두려움에 기반한 과보호. 부딪치긴 했어도 아빠는 결국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뭐든 다 하게 해줬으니까.
내가 고등학생 즈음부터 아빠는 두 가지 일을 병행했다. 본업 후 집에 돌아와 잠시 우리를 챙긴 뒤, 다시 일하러 나가 아침이 다 돼서야 귀가했다. 교통 상황이 좋지 않은 날엔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시절 못 자고 일하며 생겼던 눈의 부기는 빠지지 못한 채 그대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 아빠의 외모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할 때면 종일 마음이 무겁다.
아빠에게 느끼는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과분하게 받은 사랑만큼이나 서로 주고받은 상처도 깊다. 한때 한없이 커 보였던 아빠가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는 연민의 감정도 추가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예전엔 애정보다 애증, 이제는 애증보다 애틋함에 가깝지 않을까.
잊고 있던 아빠와의 추억이 문득 하나씩 떠오를 때면 아련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열대야를 피해 드라이브를 나갔던 밤, 아빠가 만들어준 수많은 요리, 함께 본 영화,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까지도. 웃긴 건 아빠와 대화하다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은 아빠가 기억하고, 아빠가 기억 못 하는 것들은 내가 기억한다. 아빠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이미지로 자리잡혀 있을까. 희대의 불효녀만 아니면 좋겠는데
누군가 내 앞에서 아빠를 단편적인 모습으로 판단한다면 나는 아빠를 대변해야 한다. 아빠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키워낸 나는 그럴 의무가 있다. 설령 그게 내가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일지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