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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렌체장탁 Jan 29. 2023

39살 1월, 처음 담배를 입에 물다.

작은 일탈의 짜릿함

 39살(만 37살)의 겨울 공기가 유독 차갑게 느껴진다.

심지어 한국보다 훨씬 따듯하고 겨울 내내 영상의 기온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 살면서도 말이다. 그 공기가 너무 맑고 너무 차가워서 조금 뜨겁게 그리고 뿌옇게 더럽히고 싶었던 걸까.


39살 1월, 나는 정말 아무런 계기도 없이 처음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금껏 살면서 물론 남들이 하지 말라는 거 대부분 다 해보고 살았지만 딱 하나 내가 시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흡연이다. 술을 이만치 많이 마시는 삶이니 담배까지 피우면 난 아마 죽어도 벌써 죽었을 거라고. 음주와 흡연 중에 무엇을 하나 선택하여 깊이 있게 심취하기 위해서 나는 과감히 담배를 포기했노라고 자랑스레 떠벌리던 내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것도 방금 오늘.. 심지어 친구들한테 질색하며 난리 치던 방 창문 앞에서.


 인생은 예측불가능이라 참 재밌다.


오늘 손님들에게 제공한 석식 메뉴가 삼겹살이라 온 집안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는 그저 향초를 찾아서 피우고 싶었을 뿐인데 그 향초를 찾는 과정에서 집주인이 서랍장 구석에 놓고 잊은 듯한 말보로 담배 한 갑이 나왔다. 그전에 수 천 번 담배를 보고서도 그리고 흡연의 현장에 함께 했어도 한 번도 피워봐야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어이없게도 너무 자연스럽게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또 너무 자연스럽게 입에 물고서는 향초를 피우려고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간접체험을 너무 많이 해서였던 걸까.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연기를 머금고 숨을 들이켜는 순간 미친 듯이 기침이 나왔다. 아니 이거 꽤나 중딩스럽고 신선하잖아...?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피워보고 싶어 급히 초록창에 '담배 피우는 법'을 검색했다. 어릴 때 담배를 처음 접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멀뚱히 서 있을 때 '겉담배'를 피운다며 놀림받던 몇몇 친구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거 참.. 입에 잠시 머금고 있다가 천천히 연기를 들이켜라는 데..... 독한 연기를 입에 머금을 새도 없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은근히 도전의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잘 참고 연기를 제대로 들이키면 시원한 느낌도 난다는데 난 도무지 이 연기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한 입 머금고 콜록콜록, 머금을 새도 없이 다시 콜록콜록.  원래 같으면 이 시점에서 멈추어야 하는데 다시 초록창을 찾았다. '담배 빨리 배우는 법'... 아니 나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현타 반, 이왕 시작한 거 담배의 맛을 기필코 알아내야겠다는 이상한 오기 반.

 그 와중에 또 머리와 옷에 베어나는 담배향기가 너무 싫어서 상의를 다 탈의할까 라는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만 피우면 되잖아... 왜 이러는 거냐 나 자신.

  담뱃재는 어떻게 터는 건지 몰라서 창틀에 대고 그저 뭉개다가 담뱃불을 꺼뜨렸다. 아직 절반이나 남은 담배를 보며 한 3초 정도 고민에 빠졌다. 이쯤 해봤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그러다가 또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늘은 참 나답지 않은 날이군.

 

 백해무익이라는 담배에서 하나 재밌는 지점을 찾았다. 담뱃불을 붙이려고 담배를 쭉 빨아들이는 그 순간 끝에 빨갛게 불이 붙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거칠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점점이 빨갛게 점화되는 모습과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첫 연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담배의 맛을 채 알기도 전에 한 개비의 담배가 끝났다. 이젠 멈추자. 다행인 것은 한 대 더 피워볼 생각은 안 든다는 점.

 

 첫 담배를 태운 소감은 콜록콜록콜록코올록.

담배 끝에 맺힌 불이 예뻤고 그걸 다 태우느라 창가에 몸을 반쯤 내민 채 감상하게 되는 바깥 풍경도 아름다웠다. 담배연기를 내뱉느라 길게 날숨을 쉬는 것이 긴 한숨 쉬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것 같아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30대 중반이 넘고 나서는 좀처럼 해보기 힘든 첫 경험, 익숙지 않은 행동을 하는 느낌이 주는 짜릿함이랄까. 이제는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나 이거 예전에 해봤어 혹은 예전의 비슷한 경험과 비교하게 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담배만큼은 남겨두길 잘한 것 같다. 이건 이전에 해본 그 어떤 것과도 또 다른 경험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앞으로도 담배를 태우느냐... 그건 아마 아닐 것 같다. 부모님이 물려준 이 몸이 소화기관과 간은 튼튼하게 타고난 반면 유독 호흡기는 약해서 잠시의 흥미로 담배를 피우다가는 곧 골로 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냥 맑은 공기만 가지고도 제대로 숨도 못 쉬는 놈이 무슨 담배인가 싶은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시작되었던 내 작은 일탈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 일탈이 참으로 소소하고 귀엽고 그러나 짜릿했어서 글을 남긴다.


 피렌체는 공기가 맑아서 담배가 더 맛있다던 나의 애연가 친구들아! 그 맛있는 담배는 너네나 실컷 태워라!(사실 좀 줄일 수 있음 줄여라).


나는 맛있는 와인을 한 병 더 마시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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