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노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를 꿈꾼다면...
노인을 대상으로 선택한 사회복지사의 자세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되면 자신의 클라이언트를 결정하기를 권고받는다.
아동, 노인, 여성, 청소년, 장애인, 저소득층, 탈북민... 등등.
이 중에서 자신이 어떤 대상을 지원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클라이언트를 결정하면 자신의 세부전공과 활동분야가 결정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특정 대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러 분야를 경험해 보고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상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노인.
사실 노인은 그렇게 인기 있는 대상이 아니다. 복지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에 무슨 인기를 따지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누구를 돕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쏠림현상이 있을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문제가 사회문제 아닌가?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복지의 대상이 있는 것이다.
노인을 복지에 대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본인이 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처럼 아직 청년이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인을 선택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물론 최근에는 고령화 이슈로 인해 그 관심도가 많이 높아지기는 해서, 노인이 인기 없는 대상이라고 이야기하면 아마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노인이 매력적인 복지의 대상이 아닌 이유를 아주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노인은 변화가 적다.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자원을 투자한다. 같은 예산을 투자해도 노인보다는 아동과 청소년에서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정책의 차원에서야 노인복지의 문제는 투표율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개인의 차원에서는 이 변화의 적음은 꽤나 신경 쓰이는 문제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 노력하는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급여는 매우 적은 반면 일은 아주 힘들다.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정신이 피폐해지기도 쉽다.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은 클라이언트의 변화 가능성이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이 삶이 변화한다는 놀라운 경험은 그 많은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게도 한다.
하지만 노인분야에서는 그러한 드라마틱한 경험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인들에게 발생하는 급격한 변화는 대부분 부정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노인 대상 프로그램의 목적은 '현상유지'이다.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나의 노력이 정말로 얼마나 이 사람의 삶에 기여했는지 더욱더 알기 어렵게 한다.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회의를 느끼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오래 사는 것이 과연 복일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침대 위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특히 치매환자를 돌보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치매환자는 대부분 더 나빠질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노인분야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노인분야, 특히 요양기관에서 일하면서 노인들의 건강이나 인지기능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돌보는 대상자들이 오히려 더 나빠지기만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이다. 70세에서 80세까지는 10년간 큰 변화가 없다가도 81세가 된 단 1년 만에 급격하게 나빠지기도 한다. 마치 그동안 늙지 않았던 세월을 한꺼번에 늙는 것처럼 말이다. 그 1년이 언제가 될지는 정말이지 예측할 수가 없다.
노인분야에서 일하면서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해야 했다. 노인들은 발전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지 않는다. 적어도 노인복지의 수혜자가 된 노인들은 그러하다. 뇌졸중으로 편마비를 가진 노인이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다시 걸을 확률은 거의 없다. 어르신, 운동을 열심히 하시면 다시 걸을 수 있을 거예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부축을 받으면서라도 걸을 수 있는 기간을 더 연장하기 위함이다. 아직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심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당신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데 더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상상해 보자. 오히려 더 나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며,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결국 당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인간관계나 재산을 소모하면서만 당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벌써 자살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사회복지사의 자질이 상당히 부족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도대체 어떤 면에서 삶의 긍정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게끔 조언을 해야 할까? 이런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쯤에서 버킷리스트 등을 떠올리는 낭만주의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서 처럼 멋진 버킷리스트는 시도하기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현실적이지도 않다. 버킷리스트는 그동안 살면서 실행해 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버킷리스트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한 방에 남은 자원을 다 사용해 버린다는 것은 대부분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역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노인은 이 것을 조금 더 자주 떠올리고 더 잘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질문은 결국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라는 매우 커다란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한 가지 조건을 더 추가하자면 내가 명확한 능력의 한계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딘가로 외출할 준비를 하는 것.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식사를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 새로운 어떤 것을 구경하거나 배우는 것. 그런 일상적인 생활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 모든 행동과 순간들을 어떻게 긍정적이고 기분 좋게 바라볼 수 있느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왕이면 여유롭고 유쾌하게 그 과정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무언가 이루거나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복지 역시 결국은 삶의 태도를 바꾸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