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아 Jun 25. 2021

당신의 남은 날이 내리막길 뿐이라면


 만약 당신이 더이상 '발전' 할 수 없다고 가정해 보자.

 배움의 속도가 망각의 속도 보다 느리고 신체적인 기능 역시 점차 약화되어 간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은 요원하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하나둘 사라져 간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얼마되지 않는 재산 마저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느껴지는가?

 누군가는 분명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발전'해야한다고 강요받아왔다.  쓸모있는 기술을 숙련하거나 지식을 쌓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라고 말이다. 돈, 인맥, 지위 등 경제적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치를 추구할 수 없는 삶에 대해 대부분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노인들이 직면한 상황이며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이다. 이러한 삶은 절망적이거나 비극적인 삶만은 아니며 오히려 충만한 삶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반드시  발전, 더 나은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생뚱 맞을 수 있지만 최근 유행했던 YOLO 역시 이에 대한 하나의 예시일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경쟁과 성장에 지친 젊은 세대에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이미 노인들은 YOLO의 삶을 살아왔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반드시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실은 낯설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아마도 생존을 위해서 였을 것이다. 매우 궁핍한 시기를 경험했던 우리 사회는 낙오자들의 열악한 삶을 끔찍히 두려워 한다. 남들보다 더 뛰어나지 않으면 난 낙오될 것이고 낙오자는 절망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이러한 두려움은 낙오, 혹은 다른 사람보다 뒤처짐을 인생의 종말로 받아들이게 한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당신이 더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순간 느끼는 절망감이란 아마 이런 종류일 것이다.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나쁜일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 같은 것들 말이다. 반면 노인이라고 불릴 나이쯤이 되면 이러한 감정은 조금 누그러들 수 있다. 대신 노인들은 그보다 무력감과 체념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더 많다. 다른말로 하자면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죽지못해' 사는 삶은 좋은 삶이 아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삶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꾸준히 지속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우리는 보다 긍정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산책을 하고 같은 활동들을 말이다. 이런 활동들은 '죽지못해' 사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만약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런 긍정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저 나쁜 길을 가지 않는 방법일 뿐, 좋은 길로 안내하는 지침이라고는 볼 수 없다.


 내가 발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욱 집중해야할 것은 삶의 의미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정말로 개인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작은 꽃 한송이를 키우거나 집안을 청소하는 것, 혹은 매일 한마디씩 건내는 덕담과같은 사소한 것도 얼마든지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다르게 설명하자면 나와 다른 존재에게 아주 작게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당신에게 남은 날이 내리막길뿐이라면,

 그 길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은 '삶의 의미'이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노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를 꿈꾼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