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운영하고 있는 주간보호시설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직원의 연차 사용내용과 관련하여 자료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조사가 기준보다 더 많은 연차를 사용한 직원을 찾아내기 위해서 이루어진 다는 점이다. 연차를 '덜' 준 기관을 찾는 것이 아니다. '더' 준 기관을 찾는 목적이다.
예를 들어 입사한 지 1개월밖에 안된 직원이 감기에 걸렸다고 하자. 병원에는 가지 않았지만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쉬겠다고 해서, 맘씨 좋은 시설장이 그러라고 했다고 하자. 그럼 놀랍게도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그 직원을 기준만큼 채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장기요양기관의 수입 중 일부를 환수해 간다. 그 비율은 기관 전체 수입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최소 몇 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까지 이른다. 직원에게 하루 휴가를 더 주었다고 받게 되는 처벌이다.
왜 그러냐고? 이제부터 설명해 보겠다.
먼저, 요양원 등 장기요양기관의 수익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요양기관은 어르신을 돌보고 한 달 단위로 건강보험공단으로 부터 그 대가를 정산받는다. 이때 기관은 어떤 어르신이 얼마나 이용하셨고, 그 기간 동안 어떤 직원을 채용했는지 보고해야 한다. 어르신 이 개별 이용시간은 물론, 직원의 출퇴근 시간, 휴게시간까지 전부 보고한다. 공단에서는 그 보고 내용이 이상이 없으면 확인하고 대가를 기관의 통장에 입금해 준다. 만일 차후에라도 문제가 발생되면 공단에서는 그 지급한 금액 중 일부를 다시 환수해 간다.
보고 내용에 '이상이 없으면'이라고 했다. 그 이상이 없다는 것은 특정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각 장기요양기관은 기관의 유형과 이용 어르신의 숫자에 따라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 그만큼 채용하지 않으면 지급받는 금액에서 일정 비율이 감산 적용되어 받게 된다. 이는 요양기관 운영에 있어서 최소한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그럼, 직원을 채용했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 이를 판단하기 위해 '월 기준 근로시간'이라는 개념이 있다. 월 중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의 수 * 8 이다. 그 달의 평일의 숫자가 21일이라면, 168시간 이상 근무를 해야 그 직원을 채용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 1시간, 아니 1분이라도 부족하면 공단은 직원을 채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감액을 한다. 뭐, 시스템 적인 부분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연차 사용에 있다. 근로자가 연차를 사용하면 8시간 근무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 그리고 연차는 노동법에 명시한 최소한 만을 인정한다. 시설장이 노동법 이상의 연차를 근로자에게 지급하면 앞서 이야기한 '월 기준 근무시간'을 채우기 위해 편법을 운영한 것으로 본다. 즉, 건강보험공단은 모든 장기요양기관 종사자들에게 노동법에서 제시한 최소한의 연차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노동법에서는 1개월 만근을 했을 경우 다음 달부터 1일씩 연차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한다. 예를 들어 근무를 시작한 지 2개월이 되었고 만근을 했다면, 다음 달에는 2개의 연차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를 더 사용하면 앞서 이야기한 월 기준 근무시간을 위반하게 된다. 그래서 칼같이 기 준 데로만 연차를 지급해야 한다. 당연히 정당한 연차를 사용할 때에도 어려움이 있게 된다. 다행히 입사 후 1년이 경과하는 순간 연차는 15개가 생기므로 그때부터는 조금 여유로워진다.
또 하나는의 참 안 좋은 기준은 병가의 인정 기준이다. 근로자가 병가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입원'을 해야 한다.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입원하지 않으면 병가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심지어 병원을 갔다가 오면 그 시간만큼 추가로 근무를 해야 한다. 기준이 그렇다. 기준이.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참으로 비극적인 결과가 일어난다. 팔이 부러져도 입원하지 않았으니까 근무를 해야 하고, 고열에 시달려서 아주 괴로워도 출근을 시켜야 한다. 연차 규정 때문에 여행이나 개인의 사정 따위는 당연히 고려해 줄 수 없다. 포상휴가? 병가도 안된다니까? 직원이 이사 등으로 사정사정해서 미리 연차를 쓰게 했다? 공단은 그런 거 고려하지 않는다. 시설장은 기준을 어겼으니까 환수금을 내야 한다. 그 직원의 급여보다 더 많은 금액을 말이다.
추가적로 힘 빠지는 사실은 기준보다 연차를 덜 준 것에 대해서 건강보험 공단은 전혀 관심이 없다. 기준보다 연차를 덜 주었다? 그건 노동자가 알아서 노동부에 신고를 해야 할 일이다. 뭐, 당연한 일이다. 자기네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당연히 보조금을 잘 사용했는지 서비스를 어르신에게 잘 제공하는지 감시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이는 반드시 존중받아야 하며 그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에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그 대상이 마음씨 좋은 시설장들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 선의의 피해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이나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집중적으로 이런 조사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연차 사용과 관련된 문제는 안 그래도 열악한 종사자의 처우와 관련된 문제이다. 앞서 이야기한 월 기준 근무 시간 사용에서의 편법은 실제적으로 큰 부정을 저지를 만한 부분이 없다. 이런 것도 부정 청구에 포함시키고 시설장이 뭔가 엄청나게 예산을 착복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더군다나, 이러한 조사는 안 그래도 바쁜 시설 운영에 있어서 많은 행정 비용을 야기한다. 시설에는 행정인력이 적다.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2-3명이서 행정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러한 조사가 있으면 자료를 찾는데 일주일은 고생해야 한다. 이런 쓸데없는 자료 조사에 응하느라 종사자는 더욱 어려움에 처하고 어르신의 질은 더 떨어진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공단의 정당한 조사는 필요하지만 이런 조사는 실익이 적다.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건강보험공단의 조사는 장기요양기관의 종사자들을 더욱 열악한 처지로 내몰 수밖에 없다. 이제 시설장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더욱더 깐깐하게 종사자들의 휴가 사용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이 실수 한 번이면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되어 자기 생업을 잃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요양기관 종사자들의 처우를 향상시키고 싶다면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장기요양기관은 민간 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구립이나 시립 시설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민간에 위탁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모든 장기요양기관은 민간 기관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모든 잘못을 시설장들로 돌리는 것은 상생을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조사는 시설장들을 단순히 공격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시설장들이 장기요양보험의 재정을 시설장들이 무언가 부정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말이다. 실제 서비스 제공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부정을 저지르는 일부 나쁜 시설장들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이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도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