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독서 입문기
나는 어릴 때 책에 관심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아들에게 하는 것과는 달리, 어릴 때 엄마가 내게 책을 읽어주셨던 기억이 없다. 그리고 책을 가까이 한 경험이 없다 보니 독서의 재미를 몰랐다.
엄마는 둘째 오빠한테는 책을 읽어주셨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둘째 오빠가 우리 셋 중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다.
나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를 받아준 대학에 다니면서 방황의 시기를 맞이했는데, 그때 학교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학교 도서관과 집 앞의 책방에서 돈을 내고 빌린 책들을 읽으며 독서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독서에 재미를 붙인 건 출산과 육아로 전업주부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반복되지만 티가 안나는 집안일에서 벗어나서 책을 읽으면 내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책을 통해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내게 설렘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에서 동네 도서관을 다니며 무료함을 달래곤 했는데 도서관의 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책을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아직 혼자서 앉지도 못하는 나의 어린 아들도 유모차를 타고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쯤 유모차에서 그대로 잠든 적도 많이 있었다.
초보 엄마였던 나는 육아에 지쳐 있었고, 책을 읽어주는 게 아이와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부터 도서관을 다녀서 그런지 아이는 도서관의 분위기에 금방 익숙해졌고 엄마랑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만 6살이 된 지금도 잠자기 전에 엄마나 아빠와 책을 읽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좋아한다.
아이와 영국 서점에서 놀기
한국과 달리 내가 사는 런던의 동네 도서관은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 좀처럼 쉽게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도서관의 분위기가 별로였던 것인지 구비되어 있던 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런던의 동네 도서관에 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번은 영국의 서점 체인 중 하나인 Waterstones의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런던 피카딜리서커스 Waterstones에 갔다. 5층 높이의 넓은 서점은 우리나라 광화문의 교보문고처럼 방대한 서적량을 뽐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 영국스러운 Waterstones 서점에서 한국 도서관에서 느꼈던 것처럼 설렘과 함께 마음의 평온함을 느꼈다. 게다가 영국의 책 표지는 독특하고 너무 예뻐서 책 표지 구경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Waterstones를 방문한 날,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무료 스토리텔링 이벤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찾아보니 다른 서점들도 아이들을 위한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중 책을 읽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준다는 <Mr Tiger, Betsy and the Blue Moon>의 이벤트가 있는 토튼햄코트로드역 Foyles에 다녀왔다.
<Mr Tiger, Betsy and the Blue Moon>의 저자 Sally Gardner가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낭독하면, 일러스트레이터 Nick Maland가 즉석으로 그림을 그려냈다. 그리고 이 날의 하이라이트로 출판사에서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에서 아이스크림이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책을 구매한 후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사인도 받았다. 아이는 그날 바로 집에 오자마자 아빠와 <Mr Tiger, Betsy and the Blue Moon> 책을 읽고 사랑스러운 내용의 이 책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그 외 영국의 서점에서는 음악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북페스티벌을 주최하기도 한다.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런던의 예쁜 서점 Dauntbooks에서는 3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Daunt Books Festival이 진행된다. 이 페스티벌의 프로그램 중 유명 동화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Children's Afternoon Tea라는 아이들의 이벤트는 무료라서 그런지 일찌감치 솔드 아웃되었다.
런던에서 놀이터나 박물관에 가는 것도 좋지만, 한번쯤 서점에서 이런 이벤트에 참여하여 직접 동화 작가를 만나보는 것도 아이에게는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축제날 World Book Day
World Book Day(세계 책의 날)는 독서와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보호에 대해 널리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날로 영국에서는 매년 3월 첫째 주 목요일에 이날을 기념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는 이 날 모처럼 교복을 벗고 하루 종일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복장을 하고 수업을 듣게 된다. 또한 학교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는데 동화작가를 초청하여 스토리텔링 시간을 갖거나, 캐릭터 의상을 잘 꾸미고 온 학생을 위한 시상식의 자리도 마련한다.
그리고 이맘때쯤 학교에서 도서상품권을 주는데, 서점과 출판사들의 후원으로 선정된 어린이 책을 이 상품권으로 무료 교환하거나 선정되지 않은 다른 책들은 정가보다 1파운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영국 아이들에게 World Book Day는 이렇게 하나의 축제처럼 자리 잡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독서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책 읽기는 즐기는 것, 잡지로 책 읽기
영국의 대형 마트에 가면 책과 잡지를 파는 코너가 따로 있는데, 매달 나오는 잡지를 판매하는 진열대의 비중이 꽤 크다.
영국의 다양한 잡지를 둘러볼 수 있는데 그중 풍성한 부록이 첨부된 아이들 잡지 코너가 단연 눈에 띈다. 어린이 TV 프로그램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다양한 만화잡지와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잡지에는 색칠하기, 간단히 만들기 놀이, 맞추기 게임뿐만 아니라 짧은 스토리도 포함되어 있다.
책을 멀리하는 아이라도 좋아하는 만화가 있는 잡지를 보면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르기 쉽다. 게다가 부록으로 주는 선물까지 좋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잡지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4파운드 가까이하는 그리 저렴하지 않은 가격대이긴 하지만, 아이가 잡지 속에 수록된 짧은 스토리를 읽으며 책 읽기를 놀이처럼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