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의 첫 공기, 한 주를 여는 월요일의 긴장감, 매월 1일의 깨끗한 달력,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유독 큰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반복되는 시간의 마디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이 '시작의 순간'들이 곧 과정과 결과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특히 12월은 나에게 일종의 '상황실'과 같다.
지나온 1년을 냉정하게 복기하고, 다가올 1년의 청사진을 그리는 이 시기는 내 삶의 방향타를 점검하는 가장 중요한 달이다.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믿음은 16년간의 군 생활과 인도라는 낯선 땅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 몸에 새겨진 본능과도 같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철저한 루틴마저도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현대 사회의 속도는 내가 세운 계획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와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세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강제로 끌려가는 기분이 든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며 고민하는 삶.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부족하다'는 불안이 안개처럼 깔려 있다.
문득 근원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결국, 이 모든 치열함의 끝은 돈 때문일까?"
만약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자유롭다면, 나는 지금처럼 매일 아침을 긴장감 속에 깨우고 매 순간 전략을 짜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통장의 숫자가 넉넉하다면 굳이 트렌드를 쫓지 않아도,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솔직히 말해, 돈이 주는 여유가 있다면 지금 느끼는 불안의 상당 부분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내가 집착하는 이 루틴과 시작의 감각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최소한의 확인이며,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나만의 저항 방식이기도 하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 해도 나는 여전히 12월이면 한 해를 돌아볼 것이고, 월요일 아침이면 새로운 계획을 세울 것이다. 다만 그 목적이 생존에서 성취나 기여로 바뀔 뿐이다. 결국 내가 두려운 것은 돈이 없는 상태보다, 내 삶의 템포를 내가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이 정해준 속도에 끌려가는 상태 그 자체인 것 같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와 내가 지키고 싶은 템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이 루틴을 반복한다. 비록 지금은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기록도 그 연장선에 있다. 글쓰기는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나만의 속도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돈 때문이든, 자아실현 때문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나만의 전략을 가지고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