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세 글자, "미안해"

by 전략가 김재훈

입술 끝에서 멈춰선 문장


저녁 무렵, 거실의 공기는 평소보다 몇 도쯤 낮게 느껴졌다. 방금 전 사소한 일로 아내와 주고받은 날 선 대화의 잔향이 여전히 공간을 부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잘못임을 안다. 내가 고른 단어가 지나치게 뾰족했고, 그 단어가 아내의 마음 어디쯤에 생채기를 냈을지도 짐작이 간다.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면 이 차가운 정적을 깨고 온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왜일까. 그 세 글자가 혀끝까지 마중을 나왔다가도, 목구멍 안쪽으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만 번 사과를 건넸지만, 입술은 마치 단단히 봉인된 성문처럼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과를 하고 나면 분명 마음이 편해질 것을 알면서도, 그 문턱을 넘는 것이 히말라야의 고산을 넘는 것보다 더 고되게 느껴지는 밤이다.



자존심이라는 가짜 성벽


우리는 왜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것을 그토록 어려워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기저에는 '자존심'이라는 이름의 가짜 성벽이 버티고 서 있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나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관계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공포가 작용한다.


특히 조직의 위계질서와 강인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군이라는 환경에서 16년을 보낸 나 같은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사과는 때로 항복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성벽은 나를 지켜주는 요새가 아니라, 나를 고립시키는 감옥에 가깝다. "내가 먼저 사과하면 지는 거야", "상대방도 잘못이 있는데 왜 나만?"이라는 옹졸한 생각들이 벽돌처럼 쌓여갈수록,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를 아끼려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소중한 시간을 침묵과 원망으로 낭비하곤 한다.



'미안해'라는 연고의 힘


한참의 망설임 끝에, 아이의 소곤소곤대는 소리가 정적을 깨울 즈음 나는 결심했다. 무거운 공기를 뚫고 "아까는 내가 말이 심했어, 미안해"라는 말을 던졌다. 공중에 흩어진 말들은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고, 그 소리가 가닿자마자 아내의 굳어있던 표정은 봄눈 녹듯 부드러워졌다.


사과를 건넨 순간,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용서보다 더 먼저 찾아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해방감이다. 사과는 결코 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잘못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이며,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존심 따위는 잠시 내려놓을 줄 아는 어른의 용기였다.


마치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것과 같다. 처음 연고가 닿을 때는 따끔거리고 쓰라리지만, 그 과정을 지나야만 새살이 돋는다. 미안하다는 말은 관계에 돋아난 가시를 뽑아내고 그 자리를 메우는 가장 강력한 치유제다. 사과 후의 돈독해진 관계는 이전의 평온함보다 더 깊은 신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나아가겠다는 약속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과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물론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미안해, 하지만 너도...'라며 뒤에 변명을 붙이는 사과는 오히려 독이 된다. 온전한 사과는 자신의 잘못만을 정직하게 도려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34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며 배운다. 아이는 잘못을 하면 눈치를 보다가도 금세 달려와 품에 안기며 얼굴을 비빈다. 그 순수한 미안함에는 어떤 계산도, 자존심도 섞여 있지 않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아이 같은 순수한 사과의 마음을 복잡한 사회적 자아 속에 가두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인도에서 보낸 5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문화적 차이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결국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것은 화려한 비즈니스 영어가 아니라 진심 어린 배려와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였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미안함'의 진심은 만국 공통어였다.



오늘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과를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입술 끝에서 맴도는 그 글자가 너무 무거워 차마 내뱉지 못하고 있는 재훈 님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그 말은 뱉는 순간 가벼워지며, 당신의 자존심을 깎아 먹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인격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될 것이라고.


사과를 하고 나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가 다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오해라는 섬에 고립되어 있던 두 사람이 사과라는 다리를 통해 다시 만나는 경이로운 순간. 그 순간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그 어려운 말을 꺼내야 한다.


아내의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거침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깔끔하게 설걷이를 한다. 그리고 건조기에 꽉 차 있는 빨대도 가지런히 갠다. 장난감으로 어지럽혀 진 거실과 공부방도 땀을 뻘뻘 흘리며 치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가족의 내일을 더 단단하게 지켜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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