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법규와 규제: 서류보다 사람이 먼저인 이유

by 전략가 김재훈

인도에서 살다 보면 "법대로 하자"는 말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인도의 법과 규정은 겉보기엔 촘촘하고 엄격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고무줄처럼 유연하게 움직인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


나는 인도에서 거주증(FRRO)을 갱신하거나 면허를 따는 사소한 과정에서도, 인도의 규제는 서류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즉 내가 그 담당자와 어떤 관계가 형성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안 됩니다"는 거절이 아니라 인사말이다


인도 관공서에 가서 서류를 내밀면 담당자는 열에 아홉은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라고 말한다. 서류가 부족하다거나, 규정이 바뀌었다는 핑계를 댄다. 처음에는 나도 당황해서 온갖 규정이나 법 등을 찾아보며 따졌지만, 금세 깨달았다. 그들의 "안 된다"는 말은 정말 규정에 의한 불가능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지금 당신과 대화할 준비가 안 됐다"는 인사말에 가깝다. 인도에서 규제는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담당자와 신뢰를 쌓으며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인도에서 법은 벽이 아니라, 넘어야 할 문턱이다.



법전보다 강력한 짜이 한 잔의 힘


똑같은 서류를 들고 가도 어제는 안 됐던 일이 오늘은 마법처럼 해결되기도 한다. 짜이는 담당자와 나눈 10분간의 대화였다. 나는 딱딱한 법 조항을 들이밀기보다 그들의 안부를 묻고 인도의 문화를 칭찬하며 짜이 한 잔을 나누었을 때, 굳게 닫혔던 규제의 빗장이 열리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법이 바뀌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면 규정의 해석이 달라진다. 이것이 인도가 가진 가장 비합리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다.


문서는 차갑지만, 그것을 다루는 사람은 뜨겁다.



"법대로"를 외치면 지는 게임


한국에서처럼 "규정집 몇 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지 않느냐"며 논리적으로 따지는 순간, 협상은 끝난다. 인도 관료들은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는다고 느끼면 더 까다로운 규정을 가져와 당신을 막아 세울 것이다. 나는 인도에서 법적으로 이기는 것보다,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며 "도와달라"라고 요청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임을 배웠다. 법적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의 조화다.


지식보다 지혜가 필요한 곳이 인도다.



리스크 관리는 사람을 얻는 것부터


많은 이들이 인도 진출을 앞두고 복잡한 법규를 공부하며 머리를 싸매지만, 진짜 리스크 관리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내 편이 되어줄 현지 친구, 나를 대신해 관료들과 웃으며 대화해 줄 조력자가 없다면 아무리 법을 잘 알아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내가 인도에서 확인한 최고의 리스크 관리법은 법 규정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규정을 운용하는 사람들과 깊은 신뢰를 쌓는 것이었다.



지도가 아니라 가이드를 믿어라


우리는 규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투명한 시스템에 익숙하다. 하지만 인도는 법의 문구보다 '누가 그 법을 읽느냐'가 더 중요한 시장이다. 당신이 법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누군가는 웃으며 그 법의 담장을 유연하게 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도라는 정글숲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도보다는 길을 잘 아는 현지 친구의 손을 잡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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