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벵갈루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솔직히 기대치가 낮았다.
한국에서 인도 IT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이다. "아, 콜센터 많은 나라요?" 혹은 "아웃소싱 잘하는 곳이잖아요." 나도 그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군인으로 인도에 파견되어 처음 벵갈루루 땅을 밟았을 때, 나는 '개발도상국의 IT 허브'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 양쪽에 펼쳐진 풍경은 내 예상을 단번에 뒤집었다.
인포시스, 위프로, TCS의 캠퍼스가 도로변을 따라 이어졌다. 규모가 달랐다. 잔디밭, 카페테리아, 수영장, 체육관. 수천 명의 직원들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그 광경은, 내가 알던 '하청 공장'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싼 인건비'라는 오해가 만들어낸 편견
많은 한국인들이 인도 IT를 '싼 인건비로 남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산업'으로 이해한다. 2000년대까지는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인도는 영어를 쓰고, 인건비가 낮고, 수학을 잘하는 나라였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개발과 고객 서비스를 인도에 맡겼다. 인포시스와 위프로는 그렇게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구글 인도 법인에는 1만 명이 넘는 직원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단순 업무를 하지 않는다. 구글 맵의 핵심 알고리즘, 유튜브의 콘텐츠 분류 시스템, 안드로이드 OS의 일부 기능이 벵갈루루에서 개발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도에서 4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고, 아마존 AWS의 핵심 서비스 개발팀 일부도 하이데라바드에 있다.
이들이 인도에 R&D 센터를 두는 이유는 단 하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공학 인재가 이곳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IIT라는 인재 파이프라인, 그리고 세대의 변화
인도공과대학(IIT)은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대학 중 하나다. 매년 120만 명 이상이 JEE(공동입학시험)에 응시하고, 그 중 1만 6천 명 정도가 IIT에 입학한다. 합격률이 1.3%. 서울대 의대 경쟁률과 비교해도 더 좁은 문이다.
이 졸업생들이 오랫동안 택한 길은 두 가지였다. 미국 실리콘밸리로 가거나, 인포시스·위프로 같은 대형 IT 서비스 기업에 입사하거나. 그런데 내가 벵갈루루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IIT 출신 개발자들은 달랐다.
한 친구는 구글의 오퍼레터를 받았지만 거절하고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구글에 가면 저는 부품이지만, 여기서는 제가 제품을 만듭니다." 또 다른 친구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나와 농업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을 열었다. "인도의 문제를 인도에서 풀고 싶다"고 했다.
이 세대의 등장이 인도 IT의 본질을 바꾸고 있다. 단순히 외국 기업의 코드를 짜주는 곳이 아니라, 자기 문제를 자기 방식으로 푸는 기술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숫자가 증명하는 변화
NASSCOM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IT 업계 종사 인력은 500만 명을 넘는다. 인도 IT 서비스 수출 규모는 2024년 기준 2,000억 달러에 달하며, 2030년까지 5,000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인도 GDP의 10%를 차지하는 산업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성의 변화다. 과거에는 수출의 대부분이 아웃소싱 서비스였다면, 지금은 클라우드, AI, 사이버보안, SaaS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의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인도는 더 이상 싼 인력을 파는 나라가 아니다. 기술 의제를 직접 만드는 나라가 되고 있다.
한국 기업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도 IT를 바라보는 한국 기업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첫째, 단순 외주 발주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벵갈루루의 시니어 개발자 연봉은 이미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싸니까 맡긴다'는 전제가 무너졌다.
둘째, 공동 개발과 파트너십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도 IT 기업들은 단순 하청보다 공동 프로젝트를 원한다. 기술과 시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셋째, 인재 확보 전략을 바꿔야 한다. 네이버, 카카오, 크래프톤이 이미 인도 개발자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 본사에 데려오는 것도 있지만, 인도 현지에 개발 센터를 열어 현지에서 쓰는 방식이 더 빠르게 늘고 있다.
인도 5년을 살아본 나의 결론은 하나다.
인도 IT는 이제 우리가 일감을 주는 곳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가 되고 있다. 그 전환점이 바로 지금이다. 늦게 알아챈 기업은 그만큼 뒤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