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인도, 150억 달러 무역 흑자가 말해주는 것

by 전략가 김재훈

인도에서 5년을 살면서 이상하다고 느낀 게 있었다.


방갈로르 코라망갈라 마트에 가면 삼성 TV가 진열되어 있고, 현대차가 도로를 달리고, LG 에어컨이 아파트마다 붙어 있었다. 뭄바이의 백화점에는 아모레퍼시픽 제품이 한 칸씩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델리의 편의점에는 불닭볶음면이 들어왔다. 한국은 인도에서 꽤 존재감이 있었다.


그런데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에서 인도 제품을 마주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타타, 마힌드라, 인포시스. 이름은 알아도 한국 일상에서 인도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무역 수치가 그걸 그대로 보여준다.


150억 달러 흑자의 구조

한국의 대인도 수출은 연간 약 210억 달러다. 수입은 58억 달러. 무역 흑자가 연간 150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이 인도에 파는 것 대비 사오는 것이 압도적으로 적다는 뜻이다.


한국이 인도에 주로 수출하는 품목은 전자제품, 철강, 석유화학, 기계류, 자동차 부품이다. 인도의 제조업 수요가 한국 제품을 빨아들이는 구조다. 반대로 한국이 인도에서 주로 수입하는 건 의약품, 천연 화강암, 면직물, 유기화학품이다.


이 구조는 협정으로 고착됐다. 2010년 한-인도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가 발효됐는데, 인도 수출품의 85% 이상이 한국에서 관세 혜택을 받는다. 그럼에도 교역 규모는 기대에 못 미쳤고, 무역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됐다. 양국 모두 협정을 손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CEPA 2.0, 무엇이 달라지나

2026년 현재 한-인도 CEPA 2.0 협상이 진행 중이다. 양국의 목표는 2030년까지 교역 규모를 500억 달러로 늘리는 것이다. 현재 270억 달러 수준에서 두 배 가까이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협상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디지털 무역 분야 규범 신설이다. 전자상거래, 데이터 이동,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규칙이 처음으로 포함된다.


둘째, 공급망 협력이다. AI, 반도체, 조선, 배터리 분야에서 양국 공급망을 연결하는 협의체가 구성됐다.


셋째, MSME(중소기업) 포함 범위 확대다. 기존 협정이 대기업 중심이었다면, 2.0은 중소기업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이 협상이 타결되면 관세 장벽이 낮아지고, 시장 접근성이 높아진다. 그 혜택은 먼저 들어간 기업이 온전히 가져간다.


한국이 인도에서 끼어들 수 있는 세 곳

첫째, 배터리와 EV 부품이다. 인도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타타모터스, 마힌드라 등 인도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수요를 늘리고 있고, 현대·기아의 인도 EV 생산도 확대되고 있다. K-배터리 기업들에게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큰 기회 시장이 될 수 있다.


둘째, K뷰티와 식품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인도 청년층의 관심이 뭄바이, 델리, 방갈로르, 하이데라바드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K뷰티 제품은 이미 인도 온라인 플랫폼에서 검색량이 급증하고 있다. 불닭볶음면, 한국 과자, 한국 라면 같은 식품도 도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셋째, IT와 스타트업 협력이다. 인도는 세계 최대 IT 인력 풀을 보유하고 있다. 방갈로르, 하이데라바드, 푸네의 인도 IT 인재와 한국의 자본·기술을 결합하는 협력 모델이 늘고 있다. 인도에 R&D 센터를 두고 한국 본사와 연결하는 방식이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지금 들어가야 하는 이유

CEPA 2.0 협상이 타결되면 진입 비용이 낮아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협정 타결을 기다리는 동안 일본, 독일, 미국 기업들은 이미 들어가고 있다.


인도 소비자의 첫 번째 선택이 되는 브랜드는 대부분 먼저 들어간 브랜드다. 인도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삼성과 현대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 다음 세대의 존재감은 지금 들어가는 기업들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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