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갈로르 코라망갈라에서 살 때, 골목 입구에 라메시라는 키라나 가게 주인이 있었다. 새벽 여섯 시에 셔터를 올리고 밤 열 시가 넘어야 닫았다. 처음엔 그냥 동네 편의점이려니 했다.
그런데 며칠 살다 보니 이 가게가 단순한 소매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침에 가면 동네 할아버지가 신문을 집어가면서 "나중에 줄게"라고 했다. 라메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에 가면 어떤 아주머니가 쌀 한 포대를 가져가면서 외상장부에 사인을 했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는 길에 과자를 집어가면 "엄마한테 말하고 갚아"라는 말이 자동으로 따라붙었다.
라메시는 동네 사람들의 월급날을 기억했다. 생일을 알았다. 아이가 몇 명인지도 알았다. 몇 번 밥을 먹다 보면 어느 집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지, 어느 집 아이가 시험을 앞뒀는지도 알았다. 이 관계를 앱이 대체한다는 건 쉽지 않겠다 싶었다.
인도에서 이런 키라나 가게는 전국에 천만 개가 넘는다. 방갈로르의 IT 직원들이 사는 동네에도 있고, 뭄바이 다라비 같은 빽빽한 슬럼 골목에도 있고, 델리 구시가지의 좁은 길에도 있다. 하이데라바드 올드시티를 걷다 보면 한 블록에 서너 개씩 있는 경우도 있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아무리 외진 곳에서도 키라나 가게 하나는 꼭 있다. 없는 곳이 없다.
이 가게들이 살아남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가격도 아니고 품질도 아니고, 신뢰다. 외상이 된다는 것. 월급날 전에도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 대형 마트나 온라인 플랫폼은 절대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신용카드나 UPI도 외상은 안 된다. 라메시의 장부만 가능한 일이다.
뭄바이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도 비슷한 풍경을 봤다. 다라비 근처 골목 가게 주인이 동네 아이한테 과자를 외상으로 줬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과자를 들고 갔다. 당연한 일인 것처럼. 델리 구시가지를 걷다가도 마찬가지였다. 좁은 골목마다 가게가 있고, 가게마다 단골이 있고, 단골마다 장부가 있었다. 첸나이에서도, 하이데라바드에서도, 인도 어디서나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 풍경 위에 완전히 다른 세계가 올라왔다.
방갈로르에서 Blinkit을 처음 써봤을 때 솔직히 좀 놀랐다. 밤 열한 시에 라면이 떨어졌는데 앱을 열었다. 주문하고 11분 만에 왔다. 배달원이 헬멧을 쓰고 작은 가방을 들고 왔는데, 가방 안에 물건이 정확히 들어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묘한 기분이기도 했다. 라메시 가게가 바로 옆 골목에 있는데, 11분 배달 앱이 같은 도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뭄바이에서 만난 친구는 Zepto를 쓴다고 했다. 방갈로르에선 Blinkit이 더 빠른데 뭄바이에선 Zepto가 낫다고 했다. 도시마다 강자가 달랐다. 하이데라바드 친구는 Swiggy Instamart를 쓴다고 했다. 이미 Swiggy로 밥을 시켜먹고 있으니까 같은 앱에서 식료품도 같이 주문한다는 거였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 플랫폼들이 운영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배달 거점이 따로 있다. 다크 스토어라고 부르는 소형 물류창고를 도심 곳곳에 깔아두고, 거기서 출발한다. 편의점처럼 외부 손님을 받지 않고 배달만 한다. 이 다크 스토어가 얼마나 촘촘하게 깔려 있느냐가 배달 속도를 결정한다. 방갈로르 코라망갈라 같은 IT 밀집 지역은 다크 스토어가 여러 개 겹쳐 있어서 10분 이내 배달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키라나는 사라지는가. 라메시는 어떻게 되는가.
3년 뒤 귀국 전 그 골목을 다시 지나쳤다. 라메시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달라진 게 있었다면 카운터 옆에 QR코드가 붙어 있었다. UPI 결제 코드였다. 스마트폰으로 재고를 주문하고 있었다. 외상장부는 그대로였지만 그 주변에 디지털이 조금씩 붙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JioMart, Udaan 같은 B2B 플랫폼들이 키라나 가게를 공급망에 연결하고 있었다. 라메시가 앱으로 도매 재고를 주문하면 다음날 배달이 온다. 이전엔 도매상까지 직접 가거나 도매상 사람이 오는 걸 기다려야 했다. 그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키라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디지털 공급망에 연결되면서 진화하고 있었다.
퀵커머스와 키라나는 대결하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 퀵커머스는 밤에 갑자기 뭔가 필요한 도시 중산층을 겨냥하고, 키라나는 매일 아침 이웃과 얼굴을 마주치며 장을 보는 사람들의 일상을 유지한다. 두 세계는 공존한다.
인도 유통은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골목마다 다르고, 도시마다 다르고, 소비자마다 다르다. 라메시의 외상장부와 Blinkit의 다크 스토어가 같은 도시에서 같은 날 작동하는 나라. 그 복잡함 자체가 이 시장의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