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I, Non Resident Indian
"인도인들은 인도에 살지 않아도 인도를 움직인다."
이 말은 다소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인도의 NRI(Non-Resident Indian, 비거주 인도인)를 떠올리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NRI는 말 그대로 인도 국적을 유지하면서 인도 밖에서 장기 거주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1년에 6개월 이상 해외에 있다면 NRI에 해당한다. 해외에 살고 있는 인도인은 2025년 기준으로 약 3200만 명이며, 이는 단일 국가 이민자 집단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NRI는 북미, 유럽,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에 퍼져 있으며, 각각의 지역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인도와의 연결고리를 이어간다.
해외에서 사는 재외동포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만약 NRI를 이 정도 수준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정말이지 큰 실수다. 단순히 '해외에 사는 인도인'이라는 표현만으로 NRI를 설명할 수는 없다. NRI는 인도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정치에까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인도 안팎을 오가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모국인 인도에 막대한 투자와 지식, 경험을 가져오고 있으며, 인도의 글로벌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영향력 어디서 오는 것일까?
NRI들이 인도에 기여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은 단연 송금(remittance)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는 매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송금을 받는 국가 중 하나다. 2023년 기준, 인도는 약 1,250억 달러에 달하는 송금을 받았는데 이는 인도 GDP의 약 3%를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송금은 단순히 가족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 자금은 인도 내에서 소비를 촉진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도 기여한다. 특히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는 해외에서 보내오는 돈이 지역사회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또한 최근 NRI들은 단순히 생활비에 필요한 돈을 송금하는 것을 넘어서, 인도의 부동산 투자, 스타트업 펀딩, 벤처캐피털 투자 등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즉 NRI는 인도에 대한 '투자자'로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 성장을 촉진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인도는 유능한 인재들이 해외로 떠나는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현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도는 이를 '브레인 서큘레이션(Brain Circulation)'으로 바꾸어 해석하고 있다. 서큘레이션이 주는 의미답게 인도의 핵심인재들이 인도를 떠나 선직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누비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시 인도에 환류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NRI들은 해외에서 최첨단 기술, 경영 기법, 학문적 지식,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인도에 가져온다. 대표적인 예로 IT 산업을 이야기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한 인도계 기술자들과 경영자들은 인도 방갈로르(벵갈루루, Bengaluru)를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의료, 교육,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NRI 출신 전문가들이 조언자, 투자자, 멘토로서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인도 내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며, 인도의 현대화를 앞당기는 주체가 된다.
NRI들은 인도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대사(cultural ambassadors)' 역할도 한다. 할리우드에 비견되는 발리우드를 들어봤는가? 발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인도 음식, 요가, 인도 전통 음악과 무용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인도 패션과 웰빙 문화까지도 이들 NRI의 손을 거쳐 세계 곳곳에 전파되고 있다. 특히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디왈리(힌두교 최대 축제)나 홀리(색깔 축제) 같은 인도 전통 행사가 주류 사회에까지 확산되었으며, 인도계 정치인과 연예인들의 활약은 '인도'라는 이름을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소비를 넘어, 인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 관광산업 활성화, 글로벌 브랜딩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NRI들의 힘은 경제와 문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도 정부는 오래전부터 NRI를 '국가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이들과의 유대 강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해 왔다. 예를 들어, "Pravasi Bharatiya Divas(해외 인도인의 날)"를 매년 1월 9일에 개최하며, NRI들이 인도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정책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NRI 출신 정치인들이 인도의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도계 미국인들이 미국 정계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이는 인도-미국 관계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비공식적 로비스트, 정책 자문가, 전략적 파트너로서 NRI들은 인도에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인도는 해외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NRI는 물론,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무언가를 배우려는 분위기가 상당히 자연스럽다. 인도여행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인도인들이 친절하게 맞아주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한다.
NRI들은 '인도 밖의 인도'를 구축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인도에 투자하고, 문화적으로는 인도를 알리며, 지식적으로는 인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의 존재는 인도라는 국가가 '국경'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인도 밖에 살고 있지만, 인도의 심장 안에 있다."
오늘날 NRI들은 인도의 과거와 현재를 넘어, '글로벌 인도(Global India)' 시대를 여는 주역이다. 이들은 인도와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세계 속의 인도', '인도 속의 세계'를 동시에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