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다른 이들은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마무리하는 걸까요?
어제부터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요.
지이이잉...
들려오는 소리가 이상했거든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음질이 좋진 않아도
잘 들리기는 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소리가 완전히 이상해졌어요.
나와 그녀를 이어주고 있던 선이
내부에서 끊어진 게 분명합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있긴 했어도,
그것이 오늘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그 순간이
바로 떠나갈 때거든요.
분명히 내가 알고 있던 신나는 노래였는데,
더 이상은 신나는 노래가 아니었어요.
소리가 이상하게 바뀌어 있었어요.
그것이 내 마지막 증상이었어요.
원래의 소리로 들리지 않는 것!
음악이 계속 지이잉 늘어져 들리더니,
잠시 뒤엔 그 소리마저 멈추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멈추었다 나오다를 반복했어요.
주로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그녀는
아직도 유선 이어폰인 나를 계속 쓰던
사람이었어요.
이상해진 음악 소리에 놀란 그녀는,
핸드폰이 고장 난 거라 생각하더라고요.
그녀는 핸드폰에서 나를 빼고 나서
버튼을 이것저것 막 눌러보기 시작하더군요.
"아휴, 다행이다. 핸드폰은 멀쩡하네."
소리가 멀쩡히 잘 나오는 걸 확인한 그녀는
핸드폰의 고장이 아니라는 것에 기뻐했어요.
그럴 만도 하죠.
핸드폰보다 이어폰인 내가 쌌으니까요.
그녀의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일 테지만
이어폰인 내 입장에선 솔직히 서운했어요.
나의 망가짐에 대해선 그다지 마음 아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거든요.
핸드폰만 챙기는 느낌??
나 혼자만 그녀에게 정이 들었던가 봐요.
나는 이렇게 헤어지기 싫었거든요.
이어폰들은 떠날 순간을 느낄 수가 있어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세상이 조용해지는
그 순간이 우리의 명이 다한 순간이랍니다.
나에게는 신나는 노래를 듣고 있을 때
그 순간이 찾아왔어요.
기력이 다해버린 몸으로 가까스로 버티며
마지막으로 쥐어짠 안쓰러운 소리가 난
다음이었지요.
그녀가 나를 구겨 넣듯이 가방에 넣을 때마다
이러다 망가진다고 투덜댔었는데,
그 투덜거림마저 지금의 적막함에 비하면
좋은 시절이었던 거였어요.
조금 더 감사하며 지내볼 것을!
내가 망가진 건 그녀의 탓이 큽니다.
나를 조금 더 조심하며 지켜주지 않은
그녀를 원망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미 소리가 멈춘 상태에서
원망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제는 돌아갈 수가 없는 시간들인걸요.
대신에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려 봅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어폰 생이 행복했습니다.
늘 좋은 멜로디와 함께 하는 삶이었어요.
누구는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힘들다는데,
나는 이 세상에 나와보니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게 정해져 있었어요.
고되게 일할 필요도 없었어요.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다 한 번씩
그녀의 귓속으로 음악을 전해주기만 하면 됐거든요.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라니
얼마나 복 받은 생입니까.
나는 정말 기뻤습니다.
세상에 감미로운 음악들이 가득하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아름다운 소리를 그녀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여서 좋았죠.
내 선을 타고 그녀에게 전달되는 소리가
우리를 다정하게 연결하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즐겁고 보람 있는 나날이었어요.
그녀가 내게 늘 음악만 들려주어 몰랐는데요.
세상에는 나쁜 소리들도 많더라고요.
그동안 좋은 음악으로만 채워주었던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리고 핸드폰 멀쩡한 것만 기뻐한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을
분명히 들었답니다.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었는데..."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에요.
이번 생에선 유선 이어폰의 삶을 살아봤으니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무선 이어폰으로 활동해 볼까라고
잠시 생각을 해봤는데요.
그래도 나는 유선 이어폰인 내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