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내 이름은 달팽!
나는 산책을 참 좋아해요.
천천히 주변을 눈에 담으면서 걷는 걸
제일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아주 느리게 걸어요.
나는 인간들의 자동차 바퀴처럼
휘리릭 빨리 지나가지 않는 내가
아주 마음에 들거든요.
그런데 나의 이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나를 보기만 하면 왜 이렇게 느리냐고
답답해하는 인간도 있더라고요.
느린 게 뭐가 어때서요?
불편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정작 나는
즐기면서 잘만 살고 있답니다.
나의 산책하기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세 가지 코스를 제일 좋아해요.
촉촉한 잎사귀 위에 올라타고
흔들흔들 체험을 하는 산책을 좋아하고요.
유리창을 타고 오르며 내부의 분위기를
살짝 엿보는 산책도 좋아해요.
조금 긴 산책을 즐기고 싶은 날에는
건물의 벽을 오르는 산책도 좋아해요.
요즘에 새로 지은 고층아파트들은
너무 지나치게 높아서 아예 벽 타기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때문에 내가 정착한 동네는
아파트의 층이 낮은 편이랍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요.
벽 타기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이네요.
그동안은 너무 뜨거운 날들이 이어졌거든요.
내 연약한 피부로는 잔뜩 달구어진 벽을
오를 수가 없었어요.
바람까지 솔솔 부는 오늘이 딱 좋네요.
천천히... 천천히... 벽을 타고 올랐어요.
오랜만이라 좀 힘들긴 했지만
바로 이 느낌이에요.
벽 타기의 즐거움은!
이렇게 천천히 벽을 타고 올라가서
높은 데서 잠시 아래를 내려다볼 때의
그 짜릿한 쾌감이 얼마나 좋은데요.
그래서 나는 벽 타기가 즐거워요.
내가 작은 몸집에 비해서 의외로 모험심이
강한 달팽이랍니다. 하하...
그런데 오늘의 벽은 그동안의 벽 타기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어요.
뭐랄까.
그냥 쭉 위로만 이어지는 벽이 아니라
벽이 누웠다가 섰다가 하는
그런 느낌이 반복된다고 해야 하나?
낯선 느낌 때문인지 평소보다 힘들었어요.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 인간이 다가왔어요.
그녀는 짐을 들고 가다가 내가 있는 벽 앞에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어요.
"아휴 힘들어! 생각보다 되게 무겁네.
아이고 팔이야."
마트에서 장을 봐서 돌아오는 모양이었어요.
잠시 서 있던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는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아이 참, 그만 쳐다보세요.
왜 남의 얼굴을 그렇게 봐요?"
나는 민망함에 살짝 짜증이 올라왔어요.
"달팽이야!
근데 너는 왜 아까부터 꼼짝도 안 하고
그 자리에만 붙어 있니?
얘! 너 살아 있는 건 맞지?"
"난 휴식 중이라고요.
왜 갑자기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지?
남의 사정이나 마음도 모르면서
마음대로 말하지 말라줄래요?"
인간들은 참 이상해요.
남의 일에 참견을 많이 해요.
내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어도 느리다고 말하고,
내가 열심히 걷다가 조금 쉬고 있으면
왜 안 움직이냐고 말해요.
인간들은 마음대로 넘겨짚기 선수들이에요.
"달팽아! 너 언제 움직일 거야?
빨리 좀 움직여봐.
너 움직이는 거 보고 가려고
내가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치... 누가 기다리라고 했나!
왜 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해요?
이보세요.
나는 나만의 벽 타기 방식이 있다고요!
제발 방해하지 말고 가세요."
내가 알아서 움직일 건데,
왜 자꾸 나를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가지도 않고 계속 나를 쳐다보면서
언제 움직일 거냐고 물어서 너무 성가셨어요.
"달팽이야!
근데 너는 올라갈 수 있는 벽이 많은데,
왜 하필 계단에 붙어 있니?
사람들이 모르고 밟아버리면 어쩌려고.
넌 모험심이 강한 달팽이인가 보구나?"
어? 계단이라고요?
오늘 내가 힘들게 오르고 있던 벽은
계단이었군요.
어쩐지 평소보다 느낌이 다르다 했네요.
그동안 폭염 때문에 산책을 너무 못했더니
내가 감각이 많이 떨어져서
방향을 잘못 잡았었나 봅니다.
쓸데없는 참견이 아니라 내 걱정을 해준 거였네요.
나도 마음대로 당신을 오해해서 미안했어요.
잠시 나를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말했어요.
"달팽이야! 난 이제 가 봐야 해.
부디 사람들 발에 밟히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녀는 다시 짐을 챙겨 들고 떠났어요.
나도 그녀에게 인사를 해주었어요.
"당신도 잘 가세요"라고.
자, 좀 쉬었으니 나도 다시 벽 타기를
아니, 계단의 끝을 향해 올라가 볼까요?
할 수 있다. 힘을 내자. 으랏차차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