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찐 고구마가 아니야!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우리는 마트에서 처음 만났어요.

주인은 진열대에서 우릴 보자마자

나와 친구들을 마음에 들어 했죠.


"두 봉지에 이 가격이면 괜찮네.

고구마가 작아서 먹기에도 편하겠어."

그렇게 해서 이 집에 오게 됐어요.



주인은 집에 오자마자 찜통에다

물부터 끓이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들어 있는 봉지 말고

다른 봉지에서 내 친구들을 꺼내서

씻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은 신나 있었어요.

시원한 물에 샤워시켜 주니까

물놀이라도 온 듯이 얼마나 좋아했다고요.


그런데, 잠시 후에 뚜껑이 열리더니

펄펄 끓는 찜통 속으로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지지 뭐예요.


"이건 너무 하잖아요.

이렇게 뜨거운 날에 뜨거운 찜통이라뇨.

찜통더위니까 찜통에서 익으라는 거예요?"


물론 내가 고구마인 거야 알고 있죠.

먹거리가 되기 위해 이 집에 왔다는 것도 알아요.

인간의 취향에 따라, 먹는 방법만 달라질 뿐이지

결국 뱃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아요.


그렇지만 내 꿈은 찐 고구마가 아니거든요.

다른 봉지의 친구들이 방법이 없다는 듯이

그냥 찜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결심했어요.

절대로 찜통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요.


나는,

내 소중한 생을 찜통에서 마감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찜통에 들어가지 않을 방법을

열심히 생각했죠.


그러다 떠오른 생각은요.

화분에서 예쁘게 자라는 식물들처럼

나도 그렇게 줄기를 뻗으면서 살고 싶었어요.


꿈이 생기니까 정말 하루라도 빨리

싹이 나오게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비닐봉지 안에 있는 나는

당장 싹을 틔울 방법이 없었어요.

흙속에 심어진 것도 아니고,

물에 담긴 상태도 아니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희망을 가져야 했어요.

"방법이 있을 거야. 생각을 하자, 생각을!"



간절했던 마음 덕분일까요.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이 생겼어요.

더위에 지친 주인이 한동안 고구마 봉지를

그냥 구석에다 내버려 두었답니다.

쪄먹는 것도 더워서 싫다면서 말이에요.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죠.


봉지 안에는 나처럼 찜통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요.

그 애들은 어차피 찜통에 들어갈 거라면서

그냥 막연하게 넋 놓고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나는 날마다 "끙" 하면서

온몸에 힘이라도 모았어요.

도대체 언제 싹이 나올지는 몰랐지만,

있는 힘을 다해 싹을 틔워보고자 노력했어요.


언제부터인가 몸에 간질간질한 느낌이 있었어요.

아! 어쩌면 나의 꿈이 이루어 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어요.


설령 이것이 나만의 착각이라 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죠.

왜냐하면 난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했으니까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주인이 오랜만에 우리들을 봉지에서 꺼내어

샤워를 시키는 거예요.

"아, 나는 결국 찜통행을 피할 수가 없는 건가?"

너무 속상했어요.


그런데, 내가 주인의 손에 들렸을 때

주인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어머머! 이 고구마 뭐니?

날이 너무 더워서 싹이 나버렸나 봐.

조그만 게 싹까지 나니까 왜 이렇게 귀여워!

너는 먹지 말고 키우라는 건가 보다! 호호호"


아, 다행이에요

드디어 나는 싹이 난 고구마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정말 내 소원대로 뜨거운 찜통행을

피할 수가 있었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역시 인간만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고구마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싹도 났으니 이제 나는 예쁜 통에 담겨서

꽃처럼 곱게 길러질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하나를 얻었으니 다른 것까지

욕심내면 안 되는가 봐요.


주인이 내게 그랬어요.

"고구마가 너무 작아서 어디에 담아

키워야 할지 모르겠네."


그러더니 주인이 만들어온 나의 집은요.

재활용품을 활용한 집이었어요.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겠는 카페의 1회용 컵과

두부가 담겨 있었던 통을 뚫어서 결합한 집이었죠.


이왕에 집을 만들어 줄 거면 좀 예쁘게나

만들어주던가 말이에요.

대충 집에 있던 재료들을 들고 와서

내 집이라고 만들어주다니 좀 실망했답니다.


그래도 실망은 잠시, 기쁨이 훨씬 컸어요.

나는 찐 고구마가 되는 걸 피한 그 순간부터

매사에 감사하는 고구마가 되기로 다짐했거든요.


주인이 잘라낸 두부통의 구멍에 내 몸을 끼우고

물이 가득한 컵 위에 나를 올려주는 순간,

아, 너무 시원해서 난 폭염인걸 잠시 잊었어요!

너무너무 시원했어요.

물이 가득한 집이라니 이렇게 좋을 수가!


나 혼자만 넓게 쓰는 집도 생겼겠다,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물도 가득이겠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한 고구마랍니다.


물론 폭염의 날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고,

더위가 끝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나는 이제 찜통에 들어갈까 봐 무서워하는

고구마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걸요.



우리 주인한테는 조금 섭섭하긴 했어요.

처음에 내 머리에 싹이 난 걸 보고선

무지 깔깔대고 웃으면서 귀여워하더니,

며칠 지났다고 주인이 뭐라는지 아세요?


"너는 혼자서 싹이 나버린 그 독립적인 자세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어. 내가 더위에 지쳐서

너한테까지 신경을 못 쓸거 같거든.

그러니까 너는 앞으로도 초심 유지하며

씩씩하게 잘 크면 좋겠어. 알았지?"

라고 하더라고요.


이럴 때일수록 싹을 틔우고자 했던

간절한 내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뜨거운 찜통에서 생을 마칠 뻔했었는데,

시원한 물에 몸 담그고 줄기 뻗으면서

살게 된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래서 나도 주인에게 씩씩하게 말했죠.

"내가 아주 초록초록한 예쁜 잎사귀들을 키워내서

눈을 즐겁게 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봐요.

나는 매일매일 더 예쁘게 자라는 고구마가 될 거예요."

.

.

.

그동안 나는 줄기를 많이 뻗어나갔답니다.

우리 주인은 서운하게 말했던 것과 달리

내가 자라는 모습을 애정 가득한 모습으로

매일 지켜봐 주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더 많이 행복해졌어요.



고구마의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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