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전하는 코끼리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나는 코끼리.

누구든 내 모습을 보면

미소 지을 수 있을 거예요.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내가 사실 너무너무 귀엽거든요.

나의 깜찍한 모습을 보면

아마 누구든 내게 반하고 말걸요?


그럼 지금 동물원에 살고 있는

아기 코끼리냐고요? 아니랍니다.

나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코끼리랍니다.


그럼 혹시 부상을 당해서 구멍이 뚫려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냐고요?

아뇨. 아뇨.

그것도 아니니 놀라실 필요 없어요.


내가 처음 있었던 곳은요.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았어요.

기념품을 파는 가게였답니다.


좋은 향기를 퍼뜨릴 수 있는 코끼리

그게 나예요.

내 몸에 있는 구멍에다 향을 꽂으면

그 향이 다 탈 때까지, 내가 그 향을 유지하는

지지대 역할을 한답니다.


맞아요.

나는 코끼리 모양의 향꽂이예요.


코끼리 중에서 나처럼 앙증맞고

향기로운 일을 하는 코끼리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나는 향기를 전하는 코끼리라는

자부심이 있답니다.


주인은 나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서

어찌나 요리조리 돌려보며 좋아했던지

그 표정을 여러분들도 보셨어야 해요.


나에게 향코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답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향기로운 코끼리를 줄여서 향코예요.


우리 주인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내가 선물로 주인에게 전해지면서부터였어요.


주인과 만난 이후 나는,

라벤더 향을 퍼뜨리는 향기로운 코끼리이자

주인의 사랑이 내 마음에 가득 퍼지는

행복한 코끼리였어요.


그런데요.

늘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내게

생각지 못했던 일이 생긴 거예요.



그날은,

우리 주인이 하나 남은 향을 보면서

무척 아쉬워했어요.

"벌써 마지막 향이네."


내게 향을 꽂으려고 꺼내던 주인은

향이 부러져 있는 걸 발견한 거예요.

"아, 속상해. 왜 하필 중간이 부러졌을까?

이러면 짧아서 금방 타버릴 텐데."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향이 똑 부러져 있었어요.

분명 부러진 건 향인데,

그때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주인은 부러져서 짧아진 향을 꽂으려고

나를 책상 위에 놓았는데요.

향이 부러져 속상한 마음은 알겠지만

덩달아 눈까지 흐려진 것인지,

어째 나를 놓는 위치가 불안 불안하더라고요.


나를 끄트머리에 어설프게 놓는 바람에

책상에서 떨어져서 방바닥에 머리를

쿵 찧었지 뭐예요.


"악... 아파라."

생각보다 너무 아팠어요.

분명히 머리를 박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내 코가 가벼웠어요.


"이상하다. 왜 코가 짧아진 것만 같지?"


나는 그때 보고야 말았어요.

저기 저쪽에 보이는 내 코를 말이에요.

코끼리의 상징인 내 코가 똑 부러져서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어요.



이럴 수가!

코가 부러진 코끼리라니!

너무 짧아져버린 내 코에 충격받아서

엉엉 울음이 나왔어요.


덤벙대던 주인이 너무 미웠어요.

향이 부러져서 속상하다면

모든 것에 더 조심을 했었어야죠.

책상 위에 얌전히 놓는 것을 못해서

멀쩡하던 내 코까지 부러지게 만들다니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니냐고요.


분명히 난 귀엽고 향기로운 코끼리였는데

조심성 없는 주인 때문에 코는 잘리고

못생겨진 코끼리가 됐다는 생각에

주인이 너무 원망스러웠죠.


내 코가 댕강한 것을 보던 주인은

향이 부러졌을 때보다 더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어요.


주인은 접착제로 일단 붙인 후에

내 코를 한참이나 손으로 누르고 있었어요.

물론 나에게 아주 많이 미안해하면서요.


나는 코가 없는 코끼리가 될까 봐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는데요.

다행히 코가 붙기는 했어요.

댕강하고 부러졌던 코의 부위에는

전에는 없었던 진한 선이 생겨버리긴 했지만

코가 붙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한숨 돌리고 우리 주인의 표정을 보니

코가 붙어서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과

왜 그런 실수를 했나라는 속상함이 뒤섞여

표정이 너무 안 좋았어요.



그런데요.

나에게 정말 큰 충격이 뭐였는지 아세요?

코가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주인은

나를 향기로운 코끼리로 살 수 있게 해주질 않았어요.


나를 투명한 작은 통에 담더니

서랍 제일 깊은 곳에다 넣고

그대로 닫아버리지 뭐예요.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였어요.


이게 뭐야.

내가 원한 건 캄캄한 서랍 속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아무래도 주인은 내가 싫어진 게 틀림없어요.

예전처럼 매끄럽지 않은 내 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서랍 깊숙한 곳에

나를 방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랍 밑바닥 어두운 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오랫동안 잠만 잤답니다.


좋은 향기를 퍼뜨리는 귀여운 코끼리라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자부심이

서랍 속에 완전히 잠들어버린 시간을 보냈어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을까요?

이제는 서랍 속 잠자는 코끼리가

원래의 나의 모습인가 생각될 만큼

어둠에만 익숙해져 있을 때였어요.


서랍 깊은 곳까지 들어온 손이

내가 잠들어 있던 상지의 뚜껑을 열었답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주인의 얼굴을 보았어요.


우리 헤어질 때 본 마지막 모습은

주인의 어두운 표정이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주인은 편안해 보였어요.


우리 주인을 다시 보더라도 밉기만 하고

하나도 반갑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주인이 나를 들고 등도 쓰다듬어 주고

다쳤던 코도 조심조심 만져보는 손가락 덕분에

마음이 스르르 풀려버리지 뭐예요.


한때는 내게 열심히 향을 꽂아주고

나를 다정하게 만져주던 손가락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나를 향한 애정이 한가득 담긴

주인의 눈빛도 기억하니까요.


"향코야 안녕? 그동안 잘 쉬었어?

이젠 코가 정말로 튼튼하게 잘 붙은 거 같네.

너는 선물 받은 소중한 물건인데,

나 때문에 코가 부러졌잖아.

혹시 네가 더 망가질까 봐 무서워서

그동안은 꺼내놓지도 못했었단다.

오래 쉬었으니 다시 향기를 전해 줄래?"


아... 그런 거였어요?

내 코가 부러지고 미워져서 보이지 않게

치워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소중히 아꼈던 마음으로

깊숙한 곳에 보관했던 거였군요.


하마터면 주인의 마음을 오해할 뻔했잖아요.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에요.

부상당했던 나를 충분히 쉬게 해 주려는

배려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고마운 마음이 나를 감싸서 뭉클하더라고요.



나는 이제 일할 준비가 됐어요.

충분히 쉬는 동안 코가 튼튼하게 붙었거든요.

너무 신나서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오네요.


"랄랄라...

나는 향기를 전하는 코끼리라네."



코가부러진코끼리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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