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를 들어줄게요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선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나와 찰떡궁합인 주인이 될

사람이라고 말이에요.


나는 그 말들을 믿을 수가 없었답니다.

가끔 친구들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면서

떠나갈 때도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나한테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거든요.


떠날 준비가 되어 대기하던 친구에게

직접 물어본 적도 있어요.

"지금 저 손님 마음의 소리가 들리니?"

그러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면서 떠나가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거의 대부분 안 들린다고 하는 걸로 봐선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인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가게는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벽 쪽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빵집인데요.

손님들이 항상 많은 편이에요.

지하철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음료는 커피만 팔고 있답니다.

가게가 좁아서 테이크아웃만 가능하지요.



오늘도 나는 창밖으로 사람들을 구경 중입니다.

지하철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너무나 바빠 보여요.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기 발로 걷는 게 아니라 떠밀려 가는 것만 같이

보이는 날도 있어요.

그럴 때 보면 인간의 삶이 종이컵인 나보다

더 나아 보이지도 않아요.

나는 그래도 복잡한 지하철에 끼어 타야 하는

숨 막히는 삶은 아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조용한 곳에서 한가하게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커피 향 솔솔 나는 이곳에서 말이에요.


이 빵집에서 손님을 만나기 위해

꽤 오랫동안 대기하고 있었던 나는

어쩌면 오늘은 이 가게를 떠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으니 뜨거운 커피를 찾는

손님들이 더 많을 테니까요.

나는 테이크아웃을 위해 대기 중이던

1회용 컵이랍니다.

뜨거운 커피를 위한 컵이죠.


요즘 매일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나는 어떤 손님을 만나게 될까?입니다.

이 작은 빵집 밖을 나가게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도 너무 궁금했어요.

그렇다고 내가 있던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나는 이 빵집이 정말 좋았거든요.

가게가 무지 작아서 빵 종류가 많진 않지만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예쁜 빵들을

매일 보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냥 이 가게에 계속 살아도 불만이 없을 만큼

나는 이곳이 좋았답니다.


그런데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건

가게 바깥의 세상에선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나를 바깥세상으로 데려가 줄 손님을

기다리는 이유였어요.



어느덧 퇴근 시간입니다. 날씨가 추워져서

치하철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웅크리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어요.

역시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엔 한 무더기로

이동을 하는구나 생각했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시간이라서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는 생각도 했어요.

사람들이 모두 대단해 보였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서

누구 한 사람을 구별하며 보기가 힘들었는데,

그 와중에 창밖에서 우리 가게를 잠깐 쳐다보는

한 여자 손님을 봤어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갈까?

아니야. 이 시간에 커피 마시고 밤에 잠 못 자면

어쩌려고. 좀 참아보자.'


"어? 누구 목소리지?"

분명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설마 저렇게 멀리 서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고요? 에이 그럴 리가요.


'아, 머리가 너무 아파.

지금은 지하철을 타도 멀미가 날 것만 같아.

커피를 마시면 두통이 좀 가라앉던데

마실까, 말까?'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우리 가게를 쳐다보던

그 여자분이 맞는 것 같아요.

지하철역을 바삐 지나가던 사람들과 달리

아까부터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이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갈까,

커피를 한잔 마실까로 고민하고 있었어요.

두통 때문에 머릿속이 흔들려서 괴롭다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죠.


'약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커피를 마시자.

그래, 마시자!'


가게의 반대편 벽에 아까부터 붙어 서있던

여자분은 드디어 결심을 하더군요.

드디어 우리 가게로 걸어 들어왔어요.

그리고 사장님에게 말했어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어머!

그동안 전해져 오던 이야기가 정말이었네요.

그녀가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가게 밖에서부터의 그녀의 마음 소리가

다 들려왔었으니까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신기했어요.


나는 점점 몸이 따끈따끈해지고 있어요.

손님이 주문한 따뜻한 커피가 채워지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토록 기다리던 손님을 오늘에야 만났네요.

손님은 나를 받아 손에 꼭 쥐고는 아주 마음에

들어했어요.

'너무 예쁘잖아. 1회용 노란색 커피컵은 처음 봐.'


직접 경험해 보니까,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는 건 아주 편리하고

좋은 점이 있네요.

이 손님이 나를 예쁘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비록 손님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나도 반갑게 인사했어요.

"예쁘다고 말해준 거 너무 고마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말이에요.



나를 손에 꼭 쥔 손님은,

지하철역의 끝 쪽을 향해 계속 걷기 시작했어요.


'뜨거운 커피를 들고서 지하철을 탈 수는 없잖아.

앉아서 마실 데가 없어서 불편하네.

사람이 적은 의자에 앉아서 다 마시고 집에 가야겠다.'


늘 빵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역의 끝에 이렇게 다른 가게들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꽃 파는 가게도 있고,

호두과자 파는 가게도 있고,

각종 건어물과 장 종류를 파는 가게도 있고,

화장품 파는 가게도 있었네요.

역시 빵집 밖을 나오니까 다른 것들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빵집 창밖으로 봤을 때는,

떠밀리다시피 바쁜 사람들 모습밖에는

구경할 게 없었거든요.

오늘은 처음으로 쇼핑을 하는 기분이라 즐거웠어요.


눈을 즐겁고 몸은 따뜻하고 아주 좋았죠.

뜨거운 커피가 내 몸에 가득 담겨 있으니까

오늘 같이 추운 날에는 보온효과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답니다.

나를 손에 꼭 쥐고 있는 손님도

손이 따뜻하니까 좋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다만 머리가 아프니까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좀 안쓰러워 보였어요.


드디어 지하철역의 끝 부분에 도착했어요.

지하철역의 끝 부분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빈 의자가 있었죠.

드디어 자리에 앉게 된 손님은

손가락으로 계속 머리를 꾹꾹 누르더라고요.


머리가 아파서 커피를 마시겠다고 사놓고

정작 커피는 안 마시고 나를 옆에 내려놓고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커피 마시고 싶은데 너무 뜨거워서

지금은 못 마시겠다.

지하철역에 사람이 너무 많잖아.

조금만 사람들이 지나가면 마시자.'


커피가 좀 식은 후에 마셔야겠다면서

손가락으로 머리만 꾹꾹 눌러대고 있는데,

내 손님이 두통 때문에 고생하니까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도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어요.

내 몸을 이리저리 좀 흔들어서라도 빨리 커피를

식혀주고 싶더라니까요.



몇 분이나 흘렀을까요?

커피는 좀 식었고 손님은 드디어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기 시작했어요.

나의 손님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되게 오랜만에

마시는 거래요. 그동안 커피를 끊었었대요.

화사한 노란색 컵에다 커피를 마시니까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말도 없이 조용히 커피만 마시고 있어서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아, 그런데요.

내 몸에 담긴 커피의 양이 줄어들수록 나는

조금씩 슬퍼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가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에

너무 들떠서 생각을 못했다가,

이제야 내 슬픈 운명에 대해서 자각하기

시작했거든요.

바깥세상을 드디어 구경하게 됐다는

설렘 때문에, 내가 1회용이란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커피를 다 마신 손님이 나를 버리고 가면

방금 전에 지하철 상가 한번 쓱 본 것으로

내 오랜 기다림이 끝나버리는 거잖아요.

나 진짜 오래 기다렸는데...!

1회용의 운명이란 이렇게 슬픈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커피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내 눈물로 다시

가득 채워야 할 것처럼 슬펐답니다.


그런데, 커피만 다 마시면 금방 지하철을

타러 갈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손님은

커피를 다 마시고도 계속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지 뭐예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죠.


'흔들거리는 머리 진정될 때까지만 좀 앉아 있자.'


아, 이 사람은 아직 머리가 아픈 거였군요.

하긴 커피를 마시자마자 멀쩡해질 리가 없죠.

무슨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말이에요.


슬픈 1회용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하다 말고

이 사람이 머리 아픈 건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머리 아픈 거 빨리 괜찮아져라 하면서

내가 옆에서 머리 아프지 말라고

"호..."를 해주고 있었답니다.


이거 이거 뭡니까.

종이컵 계의 오지라퍼 납시셨네요.

"정신 차려! 나 1회용 종이컵이야.

지금 남 걱정 할 때가 아니라고!"



두통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지하철역에

가만히 앉아 있었던 손님은

드디어 머리가 아프던 것이 가라앉았다며

일어날 준비를 하더라고요.


"어떡해. 큰일 났다! 나는 이제 버려지겠지?"

이제 정말로 1회용의 쓸모가 끝난 건가 싶어

눈물이 차오르는데, 손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내게 말해주었어요.


"너는 아무리 봐도 1회용으로 버리기엔

너무 예쁘게 생겼어.

너 우리 집에 나랑 같이 가자.

테이크아웃 커피 마시는 기분을 내고 싶을 때

몇 번은 더 쓸 수 있겠다.

나중에는 연필꽂이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아.

근데 손에 들고 가기엔 가야 할 길이 멀고

가방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어. 알았지?"


"나 버리고 가는 거 아니었어요?

정말 나 데리고 가는 거예요?

와우, 이렇게 기쁜 일이 생기다니!

너무 고마워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아요.

그냥 한잔의 커피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커피가 사라진 뒤에도 나의 존재를

사랑해 줄 주인을 만나게 되는 행운을

내가 얻게 된 것이었어요.

운명의 주인을 만났을 때만 들리는

마음의 소리였던 거예요.


야호 신난다!

한번 만나는 손님이 아닌,

함께 지내게 될 우리 주인님의 집은

어떤 곳일까요?


내가 지금 얼마나 신나고 좋은지

그리고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 주인에게도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지네요.

당신의 마음이 내게 들렸던 것처럼,

내 기쁨과 고마움도 당신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를 1회용으로 끝나지 않게 해 준 당신,

정말 고마워요!


오늘부터 1일인 나의 주인님!

내가 카페 커피 마시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 줄게요.

오늘부터 나만 믿어요!


내가 종이컵이라서 어쩌면 생각만큼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나는 이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삶의 의미를 발견해서 괜찮아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날들 동안에는

당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맞장구쳐주는

당신의 종이컵 친구가 되어줄게요. 꼭이요!


.

.

.

우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몇 년째 책상 위에 놓인 연필꽂이로

재활용되고 있지요.

나중에 연필꽂이로 사용해도 좋겠다던 주인이

정말로 약속을 지켜준 덕분입니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그녀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어요.


분위기만들어줄게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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