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뚱 쿵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이럴 수가!

나는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노쇠한 나의 몸이,

여기저기 삐거덕대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쩍 소리와 함께 다리가 부러져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손을 쓸 수가 없이 망가져버렸네요.


다리가 댕강하고 부러진 충격에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

응급처치로 테이프만 칭칭 감아주던

야속한 사람!


무슨 주인이 이래요?



그 사람이 미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내 다리가 망가질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어요.


테이프 칭칭 감은 부상당한 다리로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던 나는

잠시 후 다른 다리가 또 댕강하고

부러지고야 말았습니다.


처음 한 개의 다리가 부러졌을 때는

아프기는 해도 서 있을 수는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리 하나가 더 부러지고 나니까

남은 다리가 네 개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내 몸의 균형감각이 사라지고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져버렸어요.


안간힘을 써보아도 몸이 기우뚱하더니

이내 옆으로 고꾸라져버렸지요.

그때의 쿵 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이제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의자인 내가 말이에요.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사고는

몇 년 전에 당한 큰 부상의 후유증이기도 합니다.

그때만 해도 내 몸은 건강하고 팔팔했어요.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어느 날 우리 주인이 나를 밟고 올라서서

옷장 위의 물건을 꺼낸다고 했던 그날의

그 사고가 내 생을 바꾸어 놓았죠.


내 몸은,

뱅그르르 잘 돌아가는 유연함을 자랑하고

내 다리에 달린 바퀴는 나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했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내가 간지럼을 좀 많이 타거든요.

특히 발가락이 닿으면 심하게 간지럼을 타요.

가만히 있질 못하고 계속 움직일 거 알면서

간지럼도 많이 타는 것도 잘 알면서

왜 하필 나를 밟고 올라서냐고요!


옷장 위의 상자 꺼낸다면서 나를 밟고서

넘어질까 봐 자꾸 발가락으로 힘을 꽉 주니까

나는 너무 간지러워서 몸을 배배 꼬면서

트위스트 한번 춘 거밖에 없다니까요.


바로 그때였어요.

주인이 기우뚱하면서 내 위로 쓰러지고

나도 덩달아 기우뚱하며 그대로 쿵 소리 내며

곤두박질치고 말았죠.

주인은 내게 부딪쳐서 엉거주춤하고

나는 주인의 무게가 더해진 충격으로

온몸이 욱신거리면서 아프더군요.


그래도 내가 워낙 건강했던 몸이라서

크게 부상당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뭔가 이상하긴 했어요.

그날 이후로 내 몸이 살짝 기울어지기 시작했거든요.

인간의 무게로 덮친 충격이 생각보다 더 컸던 거죠.


내 몸을 망까뜨린 주인이 너무 미운데

한편으로는 너무 불쌍해서 욕도 못했어요.

넘어질 때 나한테 부딪쳐 꼬리뼈가 아프다며

한참을 엉거주춤하며 끙끙댔거든요.

그래서 당신 때문에 내 몸이 삐뚤어졌다고

원망도 실컷 못했답니다.



강하게 충격받은 내 몸은 그때 이후로

몸의 밸런스가 어긋난 상태로 지내왔어요.

충돌사고 후유증이 왜 무서운지 알 수 있었죠.


그래도 다행인 건요.

살짝 기우뚱하긴 한데도 여전히 내 다리는

내 몸을 잘 지탱했고,

유연하게 뱅그르르 잘 돌아갔어요.


다만 그 당시에는 몰랐답니다.

나의 긍정의 힘으로 살아왔던 세월이

결코 건강한 세월이 아니었단 걸

이제야 뒤늦게 알게 되었네요.


심하게 충격받았던 내 몸은

그 후로도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 자신도 모를 만큼 쇠약해져 있었던 거였죠.


세월이 흐르며 낡고 볼품이 없어지긴 했지만

내 다리로 서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살고 있었거든요.


그랬던 내가,

완전히 내 정체성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쩍 소리와 함께 다리가 부러진 순간

나는 더 이상 내 일을 할 수가 없어졌어요.

기우뚱 쓰러지며 쿵 소리가 난 이후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큰 몸으로 바닥에 누워있기만 하는 나에게

주인이 말했어요.


"이게 뭐야. 서지도 못하는 의자를

어떻게 사용해. 내다 버려야겠네."

주인의 그 말이 무시무시하게 들렸어요.


뱅그르르 유연하게 잘 돌아가던

푸르고 깔끔하던 내 몸뚱이는

이제 세월의 흔적만큼 때 타고 빛바랜

후줄근한 몸이 되어버렸다는 걸

누워있다 보니 훨씬 더 잘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요.

내다 버린다고 말은 해놓고도

차마 밖에 내놓지도 못하는 주인의 표정을 보니

좀 많이 안타까워 보였어요.

왜 그러지 않겠어요.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요.

나만큼이나 당황스러웠겠죠.


그래도 결심을 헤야만 했던 그녀가

내 부러진 다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15년 동안 수고 많았다.

그런데 다른 의자들도 다리가 부러져서

헤어지는 경우가 많은 걸까?

의자인 너를 다리가 부러지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게 나 때문이라서 정말 너무 미안해."


미우나 고우나 내 마음 알아주는 건

그래도 주인뿐인가 봐요.

내 말이 바로 그거예요.

내 의자로서의 자부심이 깡그리 무너지도록

하필이면 다리 댕강이 뭡니까.

그래서 너무너무 속상해요.

아직도 갑작스러운 이별이 너무 당황스럽고

실감이 잘 안 나요.



그래도 나 말이에요.

이별을 앞두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답니다.

언제 어디서 쿵 소리를 만나게 될지

언제 어디서 기우뚱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늘 모든 순간을 소중히 감사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것을요.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날이 많았던 주인 덕분에

우리는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나는 그 순간들이 참 좋았답니다.

당신도 그때의 나를 잘 기억해 줄거라 믿어요.


자, 우리 이제 그만 인사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젠 정말 안녕.


의자의다리가부러진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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