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그녀 옆에

어른을 위한 창작 동화

by 마이드림

우리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나네요.

나는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어요.

"내가 저 사람과 인연이 되겠구나!"

그날 그녀는 나만 보고 있었답니다.

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죠.



추위를 많이 타는 그녀는 언제나 따스하게

목을 감아주는 나로 인해 행복해하더군요.

그녀가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행복했어요.


맞아요. 나는 목도리랍니다.

우린 외출 시에 언제나 꼭 붙어 다녔어요.

절대 한눈을 팔지 않는 그녀였기에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시기가 돌아와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어요. 몇 년을 함께해도

나에 대한 애정이 사그라들지 않는 주인을

철석같이 믿었으니까요.


그런데요.

우리 그렇게 서로 좋아하면서

평생 살아갈 줄 알았는데,

그게 나만의 꿈이었던가 봅니다.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와서

나를 꺼내줄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열어주지 않았어요.


그녀와 나 사이에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침착하게 기다려보았죠.


아, 그녀는 나를 잊어버린 것 같았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나를 꺼내주지 않았어요.



어느 날 문이 열렸을 때 나는 보고야 말았죠.

그녀의 목을 포근히 감싼 다른 존재를 말이에요.

우리 다시 반갑게 만나게 될 날만 기다리며

꾹 참고 기다렸단 말이에요.

그사이 그녀는 나 말고 다른 목도리를 감고 있었어요.


그녀가 한눈을 판 건 아닐 거예요.

아마 다른 목도리도 좀 해보라면서

그녀의 친구들이 추천했을 거예요.

어쩌면 선물을 받은 건지도 모르고요.

그래요. 그럴 거예요.


내가 아는 그녀라면 절대로 그녀가 먼저

다른 목도리를 찾아낸 건 아니었을 거예요.

아주 많이 섭섭하긴 하지만,

그녀에게 나 아닌 다른 친구가 생긴 것까지

내가 막을 수는 없어요.

그건 나만의 욕심이니까요.



나는 늘 자부심이 있었답니다.

그녀가 구입했던 첫 번째 목도리가

나라는 사실만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니까요.

그녀가 나 아닌 다른 목도리와 만나더라도

나에 대한 마음만은 영원히 특별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듯

다른 목도리들과만 친하게 지내지 뭐예요.

오래된 나보다는 예쁜 새 목도리들을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녀에게 다른 목도리 친구들이 생겨나면서

나는 예전처럼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서서히 잊힌 지 좀 오래됐어요.


처음엔 너무 슬펐어요.

버림받은 것 같아서 서러웠어요.

우리 좋았던 시절이 내겐 너무나 선명한데,

그녀에겐 잊힌 과거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어요.


울다가 소리쳤다가 원망했다가 체념했다가

온갖 감정들이 뒤섞이며 세월이 흘러갔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내가 그녀에게 잊혔어도 예전만큼 아프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게 된 어느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닫힌 문을 열어젖힌 그녀가

구석에 있던 나를 먼저 찾아주었어요.

"와, 정말 오랜만에 꺼내본다. 이 옷에는

이 목도리가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아."


옷장 속 깊숙하게 넣어두었던 나를

그녀가 다시 끄집어 내준 날에

나는 바보처럼 또다시 설레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그녀는 직접 구입한 목도리,

선물 받은 목도리, 사은품으로 받은 목도리 등

종류가 몇 가지나 되는 목도리들 때문에,

제일 오래된 목도리인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거든요.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소홀하긴 했었어도,

처음으로 직접 샀던 첫 번째의 목도리인 나를

내다 버리진 않았어요.

그것이 나에 대한 애정인지 잊어버림인지는

내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같은 집에

머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예전의 기억이 좋아서

언젠가는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정말로 그날이 올 거라곤 생각 못했지만요.



이번 겨울엔 그 꿈이 이루어졌어요.

우리가 다시 만났거든요.


이번 겨울에 그녀의 선택을 받은 목도리는

유일하게 나 혼자뿐이랍니다.

다른 목도리들에겐 기회조차 안 주고

오직 나에게만 그녀의 목을 감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답니다.


그녀가 요즘 다시 달라졌어요.

나를 처음 좋아했던 그때의 마음과 추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던 걸까요?

나를 향한 눈빛이 다시 다정해졌어요.

그렇게 우린 다시 겨울 내내 함께 붙어 다녔죠.


오래전 내가 신상이었을 때 만난 그녀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나도 예전에 비해

빛바랜 천이되었답니다.


너무나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그렇게 미웠었던 마음은 다 사라지고

처음처럼 다시 되살아난 감정으로

그녀와 잘 지내게 된 내 마음이었어요.

그녀의 목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했답니다.

더는 바랄 게 없을 만큼요.



다시 되살아난 애정으로 행복했는데,

내 마음을 철렁하게 만든 일이 일어났어요.

그녀와 생이별을 할 뻔했어요.


그날은 한파가 살짝 물러가고 기온이 좀 올라서

버스 안이 제법 따듯했던 날이었어요.

그녀가 좀 덥게 느껴졌는지 나를 목에서 풀어

옆자리에 놓았었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릴 때

나를 깜박 잊어버리고 가는 거 있죠.


"어? 나도 데리고 가야죠!

나 여기 놓고 갔다고요!!!"


그녀는 의자에 나를 흘리고 간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녀가 못 듣고

바삐 내려버렸어요.


그땐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또 이별하긴 너무 싫었거든요.

우리 어렵게 다시 회복한 애정이었는데,

이렇게 버스에서 이별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우리의 인연이 생각보다 깊은가 봅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목이 허전한 걸 느끼고

그녀가 재빨리 다시 뛰어왔더라고요.

"기사님! 문 좀 열어주세요."라며

버스 문을 막 두드려댔어요.


정말 다행인 건 그날따라 버스 정류장 주변이

혼잡했어요. 차들이 빨리 빠져나가지 못하고

멈춰 있었던 덕분에, 그녀와 내가 극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답니다.


버스에 뛰어올라서 나를 발견한 그녀는

정말 너무 기뻐했어요.

"아휴, 다행이다.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그 표정을 보는데 나도 울컥했었다니까요.

"주인님이 나 놓고 가는 줄 알았잖아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울렁거리던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았는데

그녀의 목에 다시 감기는 순간

그제야 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답니다.



그녀와 버스에서 생이별을 할 뻔하다가

다시 만나고 보니, 모든 게 너무 감사했어요.

예전엔 나만 바라보지 않는다고 원망한 적도

있었던 거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그녀는 버스에 놓고 내린 나를 찾기 위해서

뛰어서 쫓아올 만큼 아직도 나를 여전히

아끼고 있다는 걸 확인했잖아요.

나는 이제 그 마음이면 충분해요.


내년 겨울에 또다시 다른 목도리에게 밀려나서

옷장 깊숙한 곳에서 홀로 보내야 된다고 해도,

이젠 그녀의 속마음을 알기 때문에 괜찮아요.


딱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요.

나는 그녀가 할머니가 됐을 때도

이렇게 계속 있고 싶어요.

오래오래 그녀 옆에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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