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씨의 산책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어느 날의 오후였어요.

먹잇감을 옮기느라 바쁘게 일하고

휴식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나는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개미랍니다.

다른 개미들은 모여 수다를 떠는데,

나는 혼자서 산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도 옆쪽에 위치한 곳을 따라 걸었어요.


산책 나온 인간들의 걸음은

천천히 여유로워 보였어요.

그렇지만 개미인 나는 평소에 빨리 걷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보니, 아무리 천천히

걸어보려고 해도 잘 되질 않았어요.


인간들은 다리 두 개로도 잘만 걷잖아요.

우리 개미들도 다리 두 개만 사용하고

나머지 다리들에 멈춤 버튼 같은 게 있다면

나도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될까요?


나보다 몸집도 큰 인간들이

천천히 걷는 것을 보니까

산책은 저렇게 해야만 되는 건가?

좀 헷갈리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생각을 했죠.

'나는 지금 일하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바쁜 게 아니다.

나는 산책을 하는 중이다. 천천히 좀 걷자.'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늘 바삐 걷는 게 일상인 내 다리들은

도무지 천천히가 안 되는 거예요.

'천천히 걷지 못하는 나는 산책이 아닌 걸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지니까

오늘따라 산책로도 잘못 선택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주변에 예쁜 꽃도 안 보이고,

초록 초록한 풀도 많이 안 보이고,

아무래도 길을 잘못 선택했나 싶었지만

그래도 경로를 바꾸진 않았어요.

볼거리 풍부한 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걷다 보면 다리 운동이라도 될 테니까요.


거기까지 생각이 든 순간 멈칫했어요.

산책은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걷는 거라는

인간의 사전적인 기준에 자꾸만 나를 맞추고 있더라고요.

나는 빠른 속도로 태어난 개미인데 말이에요.


잠시 생각에 잠긴 그때,

아까부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어요.


친구들이랑 무리 지어 있을 때부터

계속 쳐다보는 느낌이 있었는데,

내가 혼자 산책을 나선 이후로도 그 시선이

나를 계속 따라오고 있었거든요.


"누가 계속 따라오는 거지?"

갑자기 무서워져서 막 뛰기 시작했어요.

더 무서웠던 건요. 살짝 돌아보니

인간이 허락도 안 받고 나를 동영상으로 찍고 있지 뭐예요.


"허락한 적도 없는데 뭡니까?"


잘 모르던 인간들이 지나가다 말고

나를 힐끔힐끔 보거나 대놓고 보는 것까진

이해한다고 칩시다!

발도 빠른 내가 재빨리 도망가면 되니까요.


뭐, 나의 잘록한 허리를 보며 부러워하는 거

그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에요.

인간들은 다이어트다 뭐다 해서 난리잖아요.

인간들이 얼마나 우리의 허리가 부러우면

'개미허리'라는 말까지 만들었을까요?


그렇지만 아무리 내가 부러워도

사진 한번 찰칵도 아니고, 나를 쫓아오면서

동영상까지 찍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나도 개미의 사생활이라는 것이 있다고요.

핸드폰 들고 쫓아오는데 무서웠단 말이에요.


나 혼자서 산책하고 싶어서

다른 친구들이랑도 같이 안 왔는데

몸집도 커다란 인간이 나를 따라오면서

촬영까지 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자꾸만 쳐다보는 것도 신경 쓰이고

계속 따라오는 것도 무서워서

"이제 그만 찍어요!"라고 외쳤는데요.

인간이 따라오면서 나를 막 설득하더라고요.


"개미 씨, 아까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작아서 점들이 움직이는 줄 알았어요.

어쩜 이렇게 재빨라요?

처음에는 사진 한 장만 찍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당신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니까

느린 내 손으로는 도저히 사진 한 컷을 건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동영상을 찍게 된 거였어요.

당신의 너무나 빠른 걸음이 흥미로운데,

당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도 될까요?"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요.

이럴 때 한번 나의 멋진 모습을 남겨봐도

좋을 것 같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나중에 보면 다 추억이잖아요.


문제는 내가 원하는 영상의 제목과

인간이 원하는 제목이 달랐어요.

내가 원한 건,

열정적인 나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여유에도 초점을

맞추어 주길 원했거든요.

<나는 오늘도 산책한다> 이런 느낌이요.


그런데 인간의 생각은 달랐어요.

오직 나의 빠른 다리에 초점을 두고

여기저기 계속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오늘도 바쁘다 바빠>라는 제목으로

담고 싶다는 거였어요.


아이참, 제작 방향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개미가 뭐 이리 정신없이 바빠?라는

느낌만 가득이잖아요.


나는 엄연히 산책 중이었어요.

비록 빠르게는 걷고 있었지만

'천천히 걸어야만 산책인 걸까?'에 대해

고민해 본 시간을 가졌다고요.

인간의 말처럼 "바쁘다 바빠"하면서

정신없게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고요.


인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로소

나의 산책의 기준이 명확해지는

기분을 느꼈답니다.


산책이 반드시 느릿느릿하라는 법이 있나요?

우리 모두의 속도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내가 진지하게 말했어요.

"제작 방향을 수정해 주세요.

그럴 수 없다면 몰래 촬영한 내 모습

모두 삭제를 원합니다.

우리는 원하는 방향이 너무 다른 것 같아요.

자, 어떻게 하실래요?

산책로 예쁜 곳으로 바꿔서 다시 걸어볼까요?"


그러자 인간이 이렇게 말했지요.

"근데 개미 씨!

아무리 산책로를 바꾼다고 해도,

아무리 다시 촬영을 한다고 해도,

당신의 다리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거라는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다시 촬영은 의미가 없다고 보는데요.

당신은 전혀 산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바쁘다 바빠의 느낌이 없어질 것 같지 않아서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머릿속이 번쩍하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아무리 달팽이의 제자로 들어가

느릿느릿 천천히 걷기 수행을 한다고 해도

내가 개미인 이상 타고난 빠른 걸음이

달팽이처럼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내가 아무리 산책이라고 말해도,

누군가에게는 늘 정신없는 바쁨으로만

계속 보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나는,

오늘부터 내 마음을 단단히 하려고 해요.


개미는 개미만의 걸음이 있어요.

남들과 똑같아지려는 걸음걸이가 아닌,

내 걸음에 맞는 나만의 빠른 산책을 즐기려고요.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요.


무지 빨리 걷는 산책이면 좀 어떤가요.

오늘의 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마음 하나면

충분한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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