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지금은 달리는 택시 안.
나를 보며 시간을 확인한 주인은
그제야 숨을 돌렸죠.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는데
늦지 않고 전철을 탈 수 있겠네요.
주인은 택시에 타자마자
겉옷 주머니에 휴대폰인 나를 넣었어요.
그때 나는 소리쳤죠.
"아... 안 돼요.
이 옷은 주머니가 깊지 않아서
내가 밖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어요.
차라리 가방에 넣어주세요. 네?"
주인은 내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침부터 정신없던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눈을 감고 의자에 편히 기대더군요.
나는 이 겉옷이 제일 싫어요.
저번에도 이 옷을 입고 뛰는 바람에
주머니에서 밖으로 떨어질 뻔했거든요.
휴대폰인 내게 제일 위험한 옷이라고요.
드디어 전철역 앞에 도착했어요.
주인은 택시에서 뛰어내리더군요.
"아... 잠깐만요. 주인님아!
나 여기 있어요. 나도 데려가야죠!!!"
주인이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나는 주머니에서 미끄러졌어요.
내가 바닥 틈새에 떨어진 걸 보지도 못하고
그냥 뛰어가버리지 뭐예요.
"아... 안 돼요.
그동안 함께한 시간과 쌓인 정이 있는데
이렇게 뜬금없이 택시 안에서 이별이라뇨.
난 이런 이별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요."
우리 주인과 생이별을 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와서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그렇지만 나를 애써 진정시켰죠.
"괜찮아. 괜찮아."
우리 주인은 저번 휴대폰도 오래 써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바꾸었다고 했었어요.
그러니 나를 반드시 찾아낼 거예요.
지금의 내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고장 난 것도 아니거든요.
나를 찾아줄 거라는 희망을 갖기로 했어요.
잠시 후에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그럼 그렇지.
우리 주인이 내가 없어진 걸 발견했나 봐요.
아마도 전철역에서 전화를 거는 거 같아요.
"기사님! 빨리 전화 좀 받아주세요.
빨리요. 빨리!!!
내가 이 택시 안에 있으니까 나 좀
빨리 찾으러 오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네?"
어? 그런데 택시 기사님은 운전하느라
뒷좌석의 구석에 떨어진 나의 진동벨이
전혀 들리지 않으시나 봅니다.
주인이 거는 게 분명한 전화가 몇 번씩이나
걸려오고 있는데, 택시 안에서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주인님! 보고 싶어요!
기사님! 제발 전화 좀 받아주세요. 네?"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전화를 걸던 주인은
나 때문에 지각을 할 순 없으니까
아마 일터로 향했을 겁니다.
전화가 잠잠해졌거든요.
"괜찮아... 괜찮아..."
주인을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미리 겁먹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기사님이랑 우리 주인이랑 서로 통화만 하면
우리는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답니다.
그런데요.
이 희망이 산산조각이 났어요.
우리 주인이 내게 연락을 못하고 있는 사이
택시 기사님이 나를 발견하신 거예요.
어떤 손님이 떨어뜨린 건지 모르겠다면서
지나가다 보이는 우체통에다 나를 넣으려고 하지 뭐예요.
"어... 어... 잠깐만요. 기사님!
나를 갖고 있다가 우리 주인이랑 통화하고
전해주면 안 되나요?
우체통에다 나를 넣어버리면
주인이 전화를 걸어도 아무도 받아줄 수가 없잖아요."
나의 외침은 기사님에게 닿지 못했어요.
결국 나는 우체통으로 떨어졌지요.
캄캄한 통 속에 있으니까 너무 무서웠어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주인과 헤어진 것도 슬픈데,
점점 만나기 힘든 길로 가고 있어요.
제발 나를 좀 이 통속에서 꺼내주세요.
너무 속상해서 눈물만 나요.
우체통 속에 갇혀 있으니까
왜 이렇게 시간도 안 가는지
밤이 너무너무 길었어요.
너무 무섭고 답답해서 휴대폰 최초로
폐소공포증 걸리는 줄 알았어요.
전화는 계속 걸려왔는데,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너무 슬펐어요.
"나 여기 있는데..."
나는 대답해 줄 수가 없는걸요.
나는 인간이 아니잖아요.
내 말이 인간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인님... 보고 싶어요."
밤새 잠들지 못하고 주인을 그리워했죠.
그래도 내일은 우리 주인을 만날 수 있겠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우체통 문이 열리고 나는
우체국으로 이동을 하게 됐어요.
편지들 틈에서 기계인 내가 섞여 있으려니
왠지 부끄러웠어요.
나는 우리 주인 말고는 낯가리는 휴대폰인데
이렇게 낯선 곳으로 계속 옮겨 다니려니
너무 어색했어요. 빨리 우리 주인을 만나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주인님 언제 와요?
빨리 나를 찾으러 오세요. 네?"
컴컴하고 좁은 우체통에 갇혀 있을 때보다
우체국에 있는 게 더 낫기는 했는데요.
분실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비닐 안에 있으려니 그것도 갑갑했어요.
인간들이 하는 말 중에 집 나오면 고생이라더니
그 말이 정말 사실이었어요.
나에게 벌어지는 이 낯선 일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 믿는 게 있었어요.
우리 주인은 나를 반드시 찾으러 올 거라고!
그거 하나만은 철석같이 믿고 있었죠.
우리 주인이랑 그렇게 택시에서 어이없는
이별을 한 후로, 우리 주인이 계속 내게
전화를 걸어왔으니까요.
우리가 헤어진 그날도,
그다음 날 오후까지도 우리 주인이 나를
찾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늦은 오후가 되면서부터
더 이상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어요.
주인이 계속 전화를 걸어줄 때는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마음만은 외롭지 않았거든요.
전화가 멈춘 순간부터 정말 마음이
너무 이상했어요.
애써 마음을 달래 보았죠.
"아니야. 나를 잊었을 리가 없어.
뭔가 사정이 있을 거야. 그럴 거야."
삼일 째 날이 되니까 우리 주인은
더 이상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지 않았어요.
엉 엉...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주인이 더 이상은 전화를 안 한다는 거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거구나.
거의 포기하고 있는데,
주인이 나를 찾으러 우체국에 온 거 있죠.
주인이 분실신고를 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거였어요.
석 달은 떨어져 있었던 것만 같은 나와 달리
이상하게도 우리 주인의 표정이
예전에 내가 알던 표정이 아니었어요.
많이 반가워해줄 거라 기대했는데
우리 주인은 생각보다 너무 무덤덤했어요.
"왜 저러지? 나를 만난 것이 반갑지 않나?"
2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닌데,
고작 3일 만에 만난 주인이 너무 낯설었어요.
나는 주인만 다시 만나면
폐소공포증 걸릴 뻔했던 우체통도 잊을 수 있고,
분실물끼리 섞여 있던 우체국에서의 낯섦도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나를 너무 서먹하게 대하니까
우리 주인이 아닌 것 같아서 너무 슬펐어요.
나는 주인의 눈치만 보고 있었죠.
우체국에서 나온 주인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손에 꼭 쥐고서 그냥 걷기만 했어요.
너무 반갑다고 쓰다듬어 주기라도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인의 반응이 너무 뜻밖이라
나는 계속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때였어요.
어디선가 휴대폰 벨 소리가 들렸어요.
"어? 나 아닌데? 옆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주인이 주머니에서 꺼낸 건 반짝이는 새 휴대폰이었어요.
주인은 아무 연락이 되지 않는 나를 포기하고
새 휴대폰을 개통한 상태였어요.
내 자리에,
다른 휴대폰이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안 해봤던 일이에요.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주인이?
고장 나지 않은 기계는 바꾸지 않는 주인인걸요.
고장 나면 고쳐서 쓰는 우리 주인인걸요.
그래서 더 믿고 있었던가 봐요.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고요.
그런데 왜?
왜 나는 벌써 주인에게 잊힌 거예요?
그제야 주인의 그 표정들이 좀 이해가 됐어요.
'돌아올 거면 더 일찍 왔으면 좋았잖아'라는 듯한
표정이었다는 것을요.
집에 돌아온 주인은 새 휴대폰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허탈해하더군요.
"내가 전화를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알아?
받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어도
기다릴 수 있었단 말이야. 정말 속상해.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아주니까
분실 신고도 했는데도 연락이 안 오니까
이건 찾을 가능성이 없는 휴대폰이구나 싶었다고."
주인의 혼잣말을 듣고서야 알았네요.
그 상황이 짐작이 되더라고요.
내가 택시에 떨어진 그 순간부터
우체통에 갇혔다가 우체국으로 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우리가 통화를 못 했으니
그것이 이틀이나 지속이 됐으니
새 폰을 개통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휴대폰으로 많은 것을 해야 하는 세상인데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했겠어요.
근데요. 이해는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마음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어요.
분명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이제
3일 전의 내가 아니었죠.
내가 없었던 사이에 이미 휴대폰으로서의
나의 역할은 끝나버린 상태였으니까요.
나는 이제 그냥 휴대폰 모양의 기계였어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은,
나의 여기저기를 터치해 보더라고요.
"역시 내 손에는 여전히 네가 더 익숙해.
우리 하루만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걸."
주인의 그 말에 울컥했답니다.
사실 휴대폰 기계로서의 내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긴 했었어요.
최근에 이것저것 작동 상의 문제점들이
여러 가지 있었거든요.
우리가 갑작스럽게 이별하는 일만 없었어도
조금쯤은 더 추억을 만들 수도 있었을 거예요.
내가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 그거예요.
주인은 내 안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네가 왜 내게 다시 돌아왔는지 알겠다.
나의 소중한 추억들을 돌려주려고 왔구나.
너 잃어버리고 사진들이랑 소중히 간직했던
메시지들이 제일 아까웠는데... 고맙다."
그 말을 듣는데 또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이제 이곳은 내 자리가 없다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쓸쓸해서 힘들었거든요.
이럴 거면 왜 다시 돌아오게 만든 거냐고
막 원망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주인의 그 말을 들으면서 내 마음도 차분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아니까요.
우리 주인이 소중히 여기는 추억들이 뭔지
내가 다 보관하고 있었으니까 알잖아요.
그래도 내가 주인에게 마지막으로
추억이라는 선물 하나는 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에요.
비록 완벽하게 내 자리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내가 익숙한 공간에 다시 돌아온 건 좋아요.
주인의 옆이라 마음이 편해졌거든요.
주인을 다시 만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너무 피곤하고 잠이 오네요.
주인은 나를 서랍 안에 넣어주었어요.
우리 주인이 자주 쓰는 친숙한 물건들 옆에서
나도 이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꿈속에서 나는 보았어요.
주인이 나를 잃어버렸던 날의 표정을요.
애타게 전화를 걸어대지만 아무도 받질 않아서
걱정하던 표정을 보았답니다.
그렇게 나를 만나고 싶어 했었군요.
그걸 알았으니 이젠 됐어요.
내가 없는 순간에도 내 걱정 많이 해줘서 고마워요.
아, 배터리가 방전되려고 하네요.
정말 좀 쉬어야겠어요.
주인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