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창작스토리-8
"야호,
드디어 나도 밖에 나갈 수 있다."
밖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을 기다려왔지요.
"장화야! 드디어 외출하게 됐네.
오랜만이라 너무 신나지?"
"응, 너무 좋아!"
내가 그동안 밖에 나가고 싶어서
얼마나 몸을 꼬아댔는지
우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요.
비만 오면 외출이 가능한 우산과 달리
장화인 나는 비가 와도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었어요.
주인은 폭우가 쏟아져야 나를 찾으니까요.
나의 친구인 우산과
오랜만에 함께 외출할 생각에 신나서
한참 수다를 떨었어요.
그런데요.
우산과 내가 신나는 날이면
곱슬이의 상태는 안 좋아져요.
곱슬이는 우리 주인의 머리카락이에요.
주인이 심한 곱슬머리랍니다.
곱슬이는 평소엔 매직기의 힘을 빌려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살아요.
그렇지만 많이 습한 날이면
차분하려 애쓰던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폭탄 맞은 머리처럼 변해버리거든요.
그렇게 마음대로 곱슬이의 모습이
변해버리는 순간이면,
주인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말아요.
비 오는 날의 주인의 마음은 곱슬이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할 수 있지요.
하필 자기가 제일 못생겨지는 날에
우산과 내가 신이 나서 즐거워하고 있으니
곱슬이의 표정이 좋을 리가 있나요.
인간에겐 보이지 않는 곱슬이의 표정은
고스란히 주인의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이어진답니다.
그래서 나는 예민해지는 주인을 위해
발이라도 편안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어요.
나는 장화니까요.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고 좋아했는데
하필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어요.
걷기가 힘들 정도였죠.
밀려오는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나는 몇 번이나 숨이 막혔답니다.
아무리 장화라고 해도 정말 힘들었어요.
꾀죄죄한 몰골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지요.
오늘의 날씨는 장화인 나에게도
전혀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오랜만에 굵은 빗줄기에 몸을 맡겨
그간에 쌓였던 먼지를 씻어내고
촉촉하게 적셔지고 싶었던 바람과는 달리
세찬 빗줄기에 정신없이 두들겨 맞아야 하는
힘든 외출이었답니다.
우산이 뒤집어질까 봐 긴장한 주인은
우산만 신경 쓰느라 아래쪽의 나까지는
신경 쓰지 않고 후다닥 걷기 바빴거든요.
그래서 나는 계속 더러운 물에 처박혀야 했지요.
우산의 절대 뒤집히지 않으려는
힘겨워 보이던 몸짓도,
곱슬이의 거대 수세미같이
점점 부스스해지던 못생김도,
꼬질꼬질 더러워진 나의 모습까지 합쳐서
우리 모두가 너무 지쳐버린 날이었어요.
집에 돌아온 나와 우산은 서로에게
너무 고생했다며 인사를 건넸지요.
그런데 생각지 못한 주인의 말 때문에
나는 마음이 슬퍼졌어요.
"너도 반질반질 예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구나.
낡아서 색도 변하고 많이 못생겨졌다."
참 야속한 말이었어요.
그 말을 듣는데 문득 곱슬이가 생각났어요.
자기는 원한 적도 없었는데
비만 오면 못생겨진다던 곱슬이의 마음을
이제야 나도 알 것 같아요.
"내가 색깔 변하고 싶어서 변한 건가요.
내가 낡고 싶어서 낡은 거냐고요.
거센 비바람 맞으면서 흙탕물에 빠지면서
오랜 세월 버티느라 이렇게 된 거잖아요.
다 주인님 위해서 일하다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
주인의 말 때문에 나의 세월들이
너무나 허망하게 느껴졌어요.
너무 슬픈데 자존심 상해서 눈물도
흘리기 싫었어요.
그런데요. 주인이 나를 계속 보고 있더니
또 뭐라고 했냐면요.
"나는 네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세월의 흔적으로 땟국물은 줄줄 흐르고
예전만큼 예쁘지는 않게 변했음에도
장화에서 제일 중요한 밑창은
아직도 튼튼해서 물이 새지 않잖아.
너는 오랫동안 내게 최고의 장화였어."
주인의 말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용서가 되더라고요.
맞아요. 나는 오늘처럼 심하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끝까지 주인의 발이 젖지 않게 내 임무를
잘 수행해 낸 튼튼한 장화라 이겁니다.
비록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서
낡고 빛바랜 장화가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신도 기억해 주세요.
나는 꿉꿉한 세상으로부터 당신의 발을
뽀송하게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장화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