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빠와 과일바구니 만들기

아빠 유치원 21

by 마이드림

"아빠, 이 과일 이름이 뭐예요?"

아빠는 얼굴을 찡그리셨다.

"이게 뭐고?"

"바나나요. 바... 나... 나..."

아빠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처럼

못 알아들으셨다.


내가 과일 그림을 준비한 이유는

과일바구니를 만들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림 보면서 이름 확인부터 하고

모양을 따라서 그린 후에 색칠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과일이었던 바나나부터

이름을 모르시더니, 이어지는 과일의 이름들을

모두 떠올리질 못하셨다.


아빠는 간단한 이름들도 계속 잊으신다.

그날은 과일의 이름이었다.



같이 과일 그리기를 하려고 했더니

처음에는 "못한다"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분명히 잘하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지켜본 아빠는 이름 기억은 못하셔도

여러 놀이를 통해서 손의 감각은

상당히 좋아지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런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그림을 보여드려도 아예 판단을 못하셨던

작년 초에 비하면, 그림을 관찰하는 눈이

상당히 좋아지셨다.


과일 이름을 하나도 기억 못 하셔서

어린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듯이

"사과, 바나나, 딸기..." 이렇게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면서

연습을 했던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별개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손의 활동은 너무 잘하셨다.

(손의 움직임은 연습하는 만큼 좋아지신다.)


다만 그 그림들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아빠는 과일의 크기를 전혀 가늠하질 못하셨다.

그림을 보고 따라서 그릴 수는 있으셨지만

과일의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만큼

그 과일들의 크기도 전혀 구분해내질 못하신 것이다.


아빠는,

내가 보여드린 바나나 송이의 그림이

미니 사이즈가 아니었는데도,

참외 한 개의 크기보다 더 작게 그려놓으셨다.

딸기를 무만큼이나 길고 크게 그려놓으셨다.

사과도 너무 작게 그려놓으셔서

딸기 한 개의 크기와 거의 비슷했다.


어떤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의 대략적인 생김새와 크기까지

떠오르지 않는 것임을 의미하는 거였다.

아빠의 그림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과일을 그리는 과정은 쉽지는 않았지만

지나치게 크기 조절을 못하신 것이나

무엇을 그린 것인지 전혀 못 알아보겠는 것만

내가 살짝 도와드리고, 그 외에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멋진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그릴 수 있을 정도의

집중력을 원했던 것이었기에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기대보다는 훨씬 더 잘하셨다.

아빠와 여러 놀이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빠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손재주가 좋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아빠의 과일 그림은 색칠을 하는 순간 예뻐졌다.

1년간 매일 열심히 색칠하신 효과가 있었다.



그려진 과일들을 자르는 일은 내가 했고

이제 과일들을 바구니에 담을 차례였다.

바구니에 담긴 과일 사진들을 보여드리면서

아빠는 어떻게 담고 싶으신지 정해달라고 했다.

아빠는 이렇게도 해봤다가 저렇게도 해봤다가

대략적인 모양을 정한 후에, 내가 그려드린

바구니 모양 밑그림 위에 과일 그림을 붙이셨다.


바구니는 패브릭 스티커를 붙여서 만들었다.

패브릭 스티커는 내가 다 잘라서 준비했고

아빠는 밑그림 위에다 붙이기만 하셨다.

잘못 붙여서 다시 떼어내기도 여러 번 했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완성된 패브릭 스티커 바구니는

뭔가 엉성한 느낌이 들었다.

색칠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아빠의 예쁜 색칠로 인해 바구니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바구니의 손잡이와 리본을 추가한 것으로

조금 더 예뻐진 과일 바구니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작품이 또 하나 완성되었다.

나는 과일바구니가 좀 먹음직스러운

느낌이길 원했다. 평소에는 A4용지 크기로

완성하던 그림이었는데, 그날은

A4용지 두 장을 붙여서 더 크게 완성해 본 작품이었다.


항상 과정은 쉽지 않은데,

우리 놀이의 마지막은 늘 기쁨이 있다.

끝까지 완성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그래서 자꾸만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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