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유치원 20
그날은 뭔가 화사한 기분이 드는
놀이를 하고 싶었다.
스티커로 화분의 꽃과
꽃병의 꽃을 표현해 보기로 했다.
아빠가 먼저 무엇을 하자고
말씀하신다면 좀 더 쉬울 텐데,
우리에게는 아쉽게도 그런 일이 없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하게 된다.
같이 놀이를 하는데 나도 즐거워야
그 기운이 아빠한테 전달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꽃 만들기를 하던 날에도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꽃 만들기를
아빠가 좋아하는 스티커를 사용해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화분, 꽃병, 꽃, 잎사귀 모양까지
내가 다 잘라서 준비하고
아빠는 내가 집어드리는 순서대로
붙이는 것에만 집중하시도록 했다.
직접 가위질을 하시도록 시도해 보니
패브릭 스티커 자르기는 여전히
아빠에게는 어려운 동작이었다.
손 다치실까 봐 가위질은 그냥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분의 꽃 만들기부터 먼저 했다.
화분과 꽃의 중심 부분과 줄기 부분은
패브릭 스티커를 사용하고,
꽃잎 부분은 점 스티커를 사용하고,
잎사귀는 색종이를 사용했다.
그것들을 붙이는 과정에서
스티커는 뒷면을 떼어내야 하고,
색종이는 뒷면에 풀칠을 해야 하다 보니
아빠는 어느새 두 가지를 헷갈려하셨다.
계속 사용 중인 패브릭 스티커인데도
무늬만 보고 스티커임을 알아보지 못하셨다.
뒷장을 떼어내기만 하면 되는데도
아빠는 여기저기에 풀칠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계속
"아빠, 그거 스티커예요!"를 외쳐야 했다.
화분에 담긴 꽃을 하나만 완성해 보니
패브릭 스티커의 무늬가 화려한데도
이상하게 화분이 너무 밋밋했다.
그래서 포인트를 좀 주기 위해서
화분에 리본을 붙여보기로 했다.
내가 리본을 만들어서
아빠가 화분에 붙이기 쉽도록
뒤에다 양면테이프를 붙여드렸다.
그대로 붙이시기만 하라고 말씀도 드렸다.
그런데 아빠는 자꾸만 잊어버리시고
뒤에다 풀칠을 또 하고 계셨다.
최근의 우리가 했던 놀이 중에서
아무 데나 풀칠을 제일 많이 하신 날이
그날이었다.
완성된 화분을 보니,
리본 몇 개만 들어갔는데도
처음보다는 작품이 한결 예뻐 보였다.
아빠는 화분 두 개를 완성하는 동안에
붙이기 연습이 많이 되셨기 때문인지,
꽃병 작업을 하실 때는 훨씬 더 잘하셨다.
재밌었던 일은,
꽃병의 꽃을 붙이시는 과정에서
아빠가 또 헷갈리신 것이다.
꽃은 모두 다섯 송이를 만들기로 하고,
줄기도 5개를 먼저 붙였는데
막상 완성하고 보니까 두 송이의 꽃은
잘 보이질 않았다.
세 송이는 활짝 핀 꽃,
두 송이는 아직 덜 피어서
가려진 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와의 놀이는
그날의 상황에 따른 변수가 많아서
완성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최고의 매력인 것 같다.
변수를 즐기기 시작하는 순간
놀이가 훨씬 즐거워진다.
그날의 꽃과 화분과 꽃병이 예뻐진 것은
아빠가 리본을 선택한 개수와 붙인 위치,
아빠가 직접 그려 넣으신 잎맥 등
사소한 모든 것들의 어우러짐 때문이었다.
화분의 꽃도 꽃병의 꽃도
기본 모양은 내가 정했지만
그 최종 분위기를 결정한 것은
아빠의 손끝에서 나온 것이었다.
초록 색종이로만 잎사귀를 붙였을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좀 많이 밋밋했는데,
펜으로 잎맥을 그려 넣으니까
전체적으로 훨씬 선명하고 예뻐졌다.
항상 시범을 보인 것은 나였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선의 모양이나 굵기 같은 것들의 표현은
아빠가 완성하신 것이었다.
그날의 아빠는 많은 실수와 멈춤과
반복 사이를 오가야 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결과물은 멋졌다.
우리의 놀이가 꽃으로 피어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