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나는 1단계 연두, 쟤는 2단계 하늘입니다.
내가 먼저 기초를 다지게 해 주면
저 친구가 심화단계인 거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마도
우리 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사람인가 봐요.
한꺼번에 우리 둘 다 주문을 한 거 보면 말이에요.
하늘이와 나는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옆자리에 있더니,
결국 같은 주소로 가게 될 운명이었던가 봅니다.
우리 서로 의지하게 되어서
든든하고 좋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를 함께 선택해 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 걸까 너무 궁금했어요.
"하늘아! 너도 좋지?
내가 늘 너랑 같이 붙어있기만 해서 그런지
너 없으면 허전할 뻔했는데,
우리 둘이 이렇게 같은 봉투에 들어가게 되어서
난 너무 좋아."
"치... 좋긴 뭐가 좋냐?
너랑 계속 옆자리에 있었는데
또 이렇게 있는 거 나는 지겹다 뭐.
거기다 나는 늘 너의 뒷자리잖아.
나는 왜 하필 2단계냐고.
사람들은 꼭 너부터 고르더라."
"으이그... 1단계가 더 쉬운 거 모르니?
너는 2단계라서 더 어려운 심화단계잖아.
두 번째가 나쁜 게 아니라 수준이 더 놓은 거라고!"
"그런가? 하하... 그런데 2단계인 나보다
1단계인 네가 더 똑똑한 거 보면
너랑 나랑 혹시 표지가 바뀐 게 아닐까?"
하늘이는 투덜대는 것처럼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어요.
사실은 하늘이도 나랑 같이 가게 되어서 좋으면서
괜히 툴툴댄다는 것을요.
하늘이는 늘 자기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칭찬받고 싶어 하는 친구이고
매사에 한 번씩 투덜대는 순간도 있지만
그것만 빼면 착한 아이예요.
하늘이는 이름처럼 하늘색 표지옷을 입고 있답니다.
이쯤 되면 짐작이 되시죠?
나는 연두색 옷을 입고 있어서 연두랍니다.
어제는 인터넷으로 주문이 들어와서
하늘이와 내가 계속 이동을 해야만 했죠.
원래는 당일 배송 상품이라서 늦어도 어젯밤에는
우리의 고객님에게 도착했어야 했는데요.
너무 물량이 많아서 택배기사님이 우리를
배달하지 못하셨어요.
그래서 낯선 곳에서 하늘이랑 나랑 서로 기대서
밤을 보냈답니다.
아침 일찍부터 택배기사님은 어제 배달하지 못한
물건들을 배달하느라 바쁘셨어요.
당일 배송 상품인데 밀린 게 많으니
아침부터 얼마나 마음이 바쁘셨겠어요.
날씨도 추운데 참 고생도 많으시구나 생각했죠.
드디어 우리가 가야 할 집인가 봐요.
기사님이 우리가 들어 있는 봉투를
현관문 앞에 조용히 내려놓으셨어요.
그러고는 역시 조용히 가셨어요.
하늘이는 또 막 투덜거렸어요.
"어? 벨을 눌러주고 가야지!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거 보니
복도식 아파트인 거 같은데
우릴 이렇게 내려놓고 간다고?"
"아휴 시끄러워! 하늘아, 조용히 좀 해.
지금이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벨 누르면 놀랄까 봐 조용히 가시는 거잖아.
아마 도착 문자를 보냈을 거야."
"야... 연두 너!!!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야.
봉투 속을 뚫고 들어오는 이 서늘함 넌 안 느껴져?
이대로 있으면 우리 얼어붙을지도 몰라.
너무 춥잖아. 언제 문 열어 줄지도 모르는데."
"하늘아! 너랑 나랑은 얼어 죽을 염려는 없어.
엄살 좀 그만 떨어."
"칫... 누가 그걸 몰라?
그래도 추운 건 추운 거다 뭐."
하늘이는 이름은 참 예쁜데
왜 그렇게 늘 투덜거리는지 모르겠어요.
하늘이가 투덜거리는 거 대꾸해 주느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정말 춥기는 춥네요.
우리가 얼어 죽지는 않을 몸이긴 하지만
그래도 추운 건 인정해야겠어요.
하늘이랑 꼭 붙어 있는데도 우리의 몸이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어서 힘이 들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현관문이 빼꼼 열리더니
우리를 들어 올리는 느낌이 났어요.
집안으로 들어왔는지 온기가 느껴지더라고요.
밖이 얼마나 추웠는지 하늘이와 나는
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진 상태였어요.
잠시 후 봉투 안에서 우리를 꺼내준 손이
우리를 번갈아 만지면서 말했어요.
"어머나! 이렇게 차가운 거 보니까
바깥 온도가 많이 낮았구나.
어떻게 종이가 이 정도로 차가울 수가 있지?
택배 언제 오나 한번 내다본 건데
조금 더 일찍 문 열어볼 걸 그랬나 보다."
그러면서 하늘이와 나를 번갈아서
막 쓰담쓰담해 주더라고요.
와, 사람의 손길이 닿으니까 꽁꽁 얼어있던 몸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 들고 노곤해지면서
막 잠이 올 거 같았어요.
새로 만난 주인은 우리를 쓰다듬다가
너무 차가워서 안 되겠다면서
바닥에 깔아놓았던 이불 밑으로 넣어주었답니다.
얼어있던 몸이 따뜻한 데로 들어가니까
막 찌릿찌릿 해져서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감전된 거 같기도 하고 몽롱하기도 해서
하늘이랑 같이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어요.
무엇보다도 우리 몸이 차가운 거 걱정도 해주는
좋은 사람을 만난 거 같아서 기분도 좋아졌어요.
이불 밑에서 다시 우리를 꺼내어 만져본 주인은
이제 보통의 문제집처럼 되었다면서
추운데 고생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우릴 보며 말했어요.
"오...... 너넨 표지가 연두랑 하늘이구나?
너네 이름으로 불러도 좋겠다."
와, 우리 이름도 맞히고 불러주네요.
주인과 우리가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쿵작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생깁니다.
주인은 나를 차례차례 넘겨보기 시작했고,
하늘이도 차례차례 넘겨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구성도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우리들의 이름도 척척 불러주고
우리들의 구성도 인정해 주는 주인을 만나서
뭔가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죠.
"하늘아, 난 이 집이 마음에 들어."
근데 하늘이가 뭐랬는지 아세요?
"칫, 좋기는 뭐가 좋아?
아니 어떻게 처음 본 사람조차도
하늘보다 연두를 먼저 말할 수가 있지?
거봐. 네가 1단계고 내가 2단계라서
나는 두 번째로 불리잖아. 늘 나중이야."
아이고, 못 말리는 하늘아!
투덜거리지 않으면 하늘이가 아니죠.
나는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하는 주인을
만난 것도 기쁘고,
늘 투덜거리던 하늘이가 여전히 옆에 있어서
모든 환경이 갑자기 확 달라져버리지 않은 것도
안심이 되어서 좋아요.
너무 추워서 괴로웠던 아침만 빼면
이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 펼쳐질 나의 하루하루가
아주 많이 기대됩니다.
하늘이는 여전히 옆에서 투덜대고 있네요.
쟤는 아무래도 심화단계 문제집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내가 이해하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