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유치원 5
아빠는 학창 시절 공부머리가 좋은 분이셨다.
그런데 그것이 치매 환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일까.
아빠를 보면 적용이 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아빠와 놀이를 하다 보니
걷기 정도의 가벼운 신체 활동에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시는 데 비해,
손과 머리를 쓰는 활동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빠랑 놀이를 한 후 내가 엄마한테
제일 많이 했던 말들이 있었다.
아무리 손을 많이 쓴다고 해도
눈에 띄게 발전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아빠는 반복한 만큼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치매 환자이면서도 학습적인 부분에 있어서
근성까지 있으시다고.
정말 신기했다.
우리의 놀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손을 사용하고 머리를 사용해야 하는,
상당히 끈기가 필요한 놀이들이었다.
그 정도로 반복하라고 하면 짜증이 나서
화가 폭발했을 것 같은데도
놀이에 대해서는 짜증을 내지 않으셨다.
그 부분이 너무 다행이었다.
아빠는 젊은 시절부터 머리만 대면 잠드실 만큼
잘 주무시는 분이었다.
원래도 잘 주무시던 아빠가 치매 환자가 되시더니
옆에서 어떤 자극을 드리지 않으면 정말로
하루 종일 잠만 주무시려고 했다.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 하시니
다리의 힘이 빠져서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고
뇌는 점점 더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그나마 움직임에 큰 거부감이 없는 것이 손이었고
그래서 나는 손이라도 움직일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했을 때만 해도 확실하게 도움이 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 혹시 모르잖아?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다른 이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아빠에게는 도움이 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못했던 것들을
시간이 가면서 할 수 있게 된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빠가 나와 함께 제일 많이 반복했던 놀이는
미니 털모자 만들기였다.
(우리가 제일 처음 했던 놀이였음)
아빠가 좋아하셔서 많이 반복한 이유도 있었지만,
구멍 사이로 실을 빼내야 하는 동작이 생각보다
섬세한 동작이었음을 아빠 손을 보면서 알게 됐었다.
그래서 손 많이 움직이시라고 계속 시키기도 했다.
연습을 많이 하니까 나중에는 손이 기억해서
내가 옆에서 보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실을 다 잘라드리고 휴지심도 준비해 드리고
이거 혼자 하세요라고 말씀드린 후에
나는 내가 할 일을 해도 될 만큼
혼자서도 하실 수 있게 되었다.
모자 만들기의 실 끼우기가 혼자서 가능해진
바로 그 시점부터 아빠는 손의 움직임이
훨씬 좋아지셨고, 더불어 관찰력이 좋아지셨다.
그전에는 내가 아무리 그림을 보여드려도
그림을 멍하니 바라만 볼뿐, 전혀 반응이 없으셨다.
그랬던 아빠의 눈에 이때부터 인쇄된 그림들의
다른 점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관찰력이 좋아진 상태에서 시도를 하면
되게 좋을 것 같은 놀이가 있었다.
바로 칠교놀이였다.
칠교는 모두 7개의 도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당히 많은 활용이 가능하다.
치매 환자에게도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주 간단한 그림부터 시작했었다.
내가 처음에 보여드렸을 때만 해도
아예 같은 모양 자체를 찾지 못하셨고
방향을 돌리거나 뒤집기를 할 생각을 못하셨다.
즉 따라 하기 자체가 불가였다.
보통의 인지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칠교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어렵긴 하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기대는 없었지만 이걸 따라 할 수만 있게 되면
아빠가 확 좋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그렇게 치매 환자인 아빠에게
나는 날마다 칠교 그림판을 보여드렸다.
그림과 같은 조각을 찾는 연습,
그림과 같은 모양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연습을
날마다 하시도록 했다.
잘 되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림이라도 계속 보시도록,
그냥 손이라도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이었다.
너무 못 찾고 안되니까 걱정도 됐다.
욱하는 아빠의 성격이 튀어나와서
칠교판을 집어던지는 거 아닐까?
신기하게도 그러지 않으셨다.
아빠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지적욕구가 강하신 분이었던가 보다.
될까? 과연 될까? 싶었는데
그림판의 모양을 똑같이 따라 만드신 날
너무 기뻤다.
칠교도 결국 아빠가 해내셨다!
당사자가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면
정말 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보여주시니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성공했다고 박수를 쳐드리는 순간에
아빠의 성취감도 확 올라가서인지,
아빠의 인지 기능이 순간적으로 확 좋아졌다.
그날따라 기억도 못하시던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아빠가 불러주는 내 이름을 들어보는 것이
몇 달 만이었던가.
엄마 이름과 큰 동생 이름까지 기억해 내셨다.
막내의 이름은 아쉽게 떠올리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아빠 본인의 이름과 가족이름 자체를
아예 모르시던 순간들에 비하면,
아주 잠시라도 되살아난 기억이 어딘가!
눈부신 발전이고 기적 같은 찰나였다.
내가 예전에 어떤 센터에서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놀아야 할 일이 있었다.
관심 보이는 몇몇 아이들을 데리고
칠교놀이를 했었다.
매일은 별 차이를 모르겠더니 두 달 후에
매일 만들었던 아이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아이가
만들기 수준의 차이가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의 뇌는 유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빠처럼 정상적인 뇌가 아닌 치매 환자에게도
계속 반복하면 두뇌 자극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보고 따라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의 특징을 파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끝이 아니라 표현을 해야 하기에
손도 잘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칠교놀이는
보고 생각하고 표현하고의 과정이 다 있다.
이것을 매일 하고 있었으니 효과가 생겼을 것이다.
아무리 활발한 움직임이 멈추어버린 뇌라도
지속적인 반복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음을
나는 아빠와 놀이를 통해 여러 번 느꼈다.
그때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우리 이렇게라도 같이 놀기 잘했다였다.
처음에는 나만 느끼는 것인 줄 알았는데,
2주간 지켜본 엄마도 동의하셨다.
아빠가 약만 드시고 아무것도 안 하실 때보다
나와 매일 놀이를 하고부터 아빠의 얼굴 표정이
확 살아났다고 말이다.
할 수 없게 되었던 많은 것들에서
다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생겨나는 순간,
그 변화가 주는 기쁨은 배가 된다.
내가 너무 신나서 박수를 치는 순간이면
눈만 끔벅끔벅 무표정이던 아빠의 얼굴에도
아이 같은 웃음이 피어났다.
나는 그 웃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