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고 그려본 아빠의 손과 발

아빠 유치원 4

by 마이드림

옛날에 문구류를 좀 많이 샀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받았었던 사은품 중에 특이하게 생긴

9가지 색깔의 크레파스가 있었다.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나의 특성상

그걸 오랫동안 갖고 있었는데,

이 크레파스가 아빠와의 놀이를 위한

전용 크레파스가 될 줄은 몰랐던 일이다.


아빠는 색칠하기에 집중력을 보이셨다.

아빠가 색칠하기를 꼼꼼하게 잘하신다는 것을

놀이를 하다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아빠와의 놀이는 아빠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멋지게 그림을 그려드릴 능력은 안되고

아빠의 손과 발을 이용해서 장갑과 양말을

꾸며보면 좋을 것 같았다.


하얀 종이 위에 아빠의 손과 발을 올리고

테두리를 따라서 그렸다. 안에다 선을 그어

다양한 색을 칠하실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하면 아빠의 손과 발을 칠하는 거니까

아빠도 더 친근감을 느끼실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해놓고 보니 크기도 다르고 삐뚤다.)


아빠는 색칠을 하실 때마다 굉장히 진지했다.

무슨 색으로 할까에 대한 선택을 어려워하셨을 뿐

막상 색을 정하면 테두리 밖으로 색이 튀어나오지 않게

기대이상으로 색칠을 너무 잘하셔서 놀랐다.


아무래도 장갑이고 양말이니까

양쪽을 똑같이 칠하면 보기 좋을 것 같아서

왼쪽을 먼저 다 칠한 후에

오른쪽을 똑같이 칠하시라고 했었다.

그런데 아빠는 색을 칠하면서 헷갈리셨는지

양쪽의 색이 조금 다르다. 그래도 나에게는

살짝 다르게 한 것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색칠을 너무 꼼꼼하게 잘하셔서

나는 정말 유치원 선생님이라도 된 듯이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 찍어드렸다.




그림 그리기와 색칠하기를 매일 하시면서

아빠는 점점 집중하는 힘이 좋아지셨다.

뭔가 눈이 살아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 우리 집에 오실 때만 해도 아빠의 상태는

끔벅끔벅, 멀뚱멀뚱으로 다 설명이 가능했었다.

그랬는데 매일 손을 많이 사용하고 계속 선택을 하는

과정을 통해, 뇌에 자극이 되었는지

아빠가 조금씩 좋아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간단하게 밑그림을 그린 다음에

길 찾아가기 놀이도 해보았다.

이건 출발선에서 도착선까지 가는 길을 확인하고

선을 이어 보는 놀이였는데, 몇 번의 연습을 통해

길을 찾아내셨다.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신 거다.


아빠가 가족도 못 알아볼 만큼 상태가 나빠졌을 땐

아빠의 목소리 느낌도 바뀌어 있었는데,

매일의 손을 움직이는 활동들을 하다 보니

목소리도 순간순간 본래의 목소리가 나올 때가 있었다.


아주 순간적으로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른 것을

들은 것 같아서, "아빠, 제 이름이 뭐라고요?" 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답을 못하셨다.

찰나긴 했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이때 나는 아빠가 다시 내 이름을 기억해 내는 날이

꼭 다시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계속 반복을 하는 손의 활동들이 분명히

아빠의 뇌를 자극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것도 몰라요' 하던 느낌과는 다른

분명히 뭔가 달라진 아빠를 느낄 수 있었다.


설령 뭔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도

아빠가 나와의 놀이를 싫어하지 않으셨다.

일단 그거면 나는 좋았다.


놀이가 늘어날수록 아빠와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하나씩 조금씩 발전해 가는 기쁨이 있는

우리들만의 놀이였다.




아빠손색칠하기.jpg ㄴ 장갑 색칠하기 놀이
아빠발색칠하기.jpg

ㄴ양말 색칠하기 놀이

길찾기놀이.jpg

ㄴ길 찾아가기 놀이 1

길찾기놀이2.jpg

ㄴ길 찾아가기 놀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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