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 수가 없네
가끔 달 사진을 찍는다.
50배까지 찍힌다는 폰을 사고서부터 더 자주 찍는다. 벌써 4년이 지났다.
주로 저녁이나 밤에 산책을 가다 보니 운이 좋으면 석양, 노을을 찍고 안 되면 내키는 대로 달 사진을 찍는다.
늘 같은 거리에 보이는 인천대교의 알록달록 화려하게 바뀌는 불빛도 좋지만 은근히 바뀌면서 가끔 잊고 있으면 훅 변해버리는 자연의 모습이 더 좋다.
사진첩을 보니 4월 30일, 아주 가느다란 초승달이 있다. 지금 입맛 당기는 새콤달콤한 과일을 담아놓으면 딱 좋을 듯한 얇고 옴폭한 그릇이다.
5월 4일, 칼로 자른 듯한 면이 없지만 반달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 달이 오른쪽으로 기울여 있다. 난 반달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는데 맞는지 확인하려 달력까지 열어봤다. 다행히 음력 7일이었고 보름이 15일이니 눈대중치곤 잘 맞추었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어제, 밤산책이라고 하긴 이른 오후 8시 반이 좀 지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했다. 집안일을 하다 쉬다 반복하니 몸은 축났으나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폰과 TV를 멀리하겠다고 다짐하여 9시간을 켜지 않은 날이다. 휴일이라 중간에 휴대폰을 안 보고 지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아침에 루틴처럼 보던 것을 제외하고 설거지를 하며 듣던 것을 빼니 크게 부담은 없었다. 예전에는 집안일만 하는 시간이 아까워 뭐라도 틀어놓고 들어야 마음이 놓였는데 아무것도 안 듣고 지내려 마음먹자 평소 안 하던 냉장고 정리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두 가지를 모두 해냈으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이 뻥 뚫린 바닷가 밤하늘엔 역시나 달이 높게 환히 떠 있다. 이틀 지났을 뿐인데 제법 통통하게 찼다. 바다와 인천대교와 살짝 위로 지나가는 세 대의 비행기와 달을 한 폭에 담고 싶었으나 달이 너무 높았다. 고개를 들어 단독 사진을 찍어주었다. 원래 달을 같이 찍으면 모양이 드러나지 않기도 하다.
돌아와서 책을 조금 읽고 쓰던 글도 마저 쓰자 피곤함이 몰려와 눕지도 못하고 침대에 엎어져 있었다.
제대로 자라는 남편의 목소리에 아직 안 씻었다며 중얼거렸고, 11시가 지났으니 불 끄고 자라며 아들이 불을 끄고 나가자 그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침대 위 전기장판을 온도 2로 맞춰 따뜻한 아랫목을 만들어 놓은 후 씻고 나왔다. 개운한 기분으로 뜨끈하고 포근한 이불속에 몸을 뉘이면 잠이 스르륵 올 줄 알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내일이면 출근이 시작되는 평일인데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되었다.
분명 졸음이 몰려왔는데 왜 이러지 싶었다가 몸을 돌리자 넓은 창 중 블라인드가 미처 가리지 못한 한 뼘 사이에 달이 떡하니 보인다.
음력 4월 9일.
내 방 침대 위에서 편히 누워 달빛을 눈부시게 받을 수 있는 날이다. 밖에서 나를 보고 있던 달이 살금살금 다가와 괜찮냐며 안부를 묻는 것도 같았다. 이런 환하고 뜨거운 관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시 일어나 달 사진을 찍었다. 이럴 수가 달 모양이 다르다.
내가 산책길에서 달을 찍은 곳은 집과 3km 남짓, 시간은 3시간 반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달리 보이다니. 집은 남향에 가까웠고 그럼 아까는 내가 어느 쪽을 보고 있었던 걸까. 굳이 지도를 켜서 본다. 남쪽이다.
3시간 만에 달은 얼마나 더 간 걸까. 대충 봐도 90도는 움직였으니 지구의 1/4을 돌았다는 걸까.
아, 모르겠다. 일단은 자야겠다.
그리고 나중에 어떻게 된 건지 누구에게든 꼭 물어봐야겠다.
나의 밝은 달아, 오늘도 안녕하신가.
오늘은 몸이 안 좋아 밤산책길에서도 못 봤는데 12시 무렵에 내 방 창문으로 놀러 와주렴.
너의 따뜻한 눈부심이 그립다.
어제보다 약간 더 늦은 시간 침대에 누웠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블라인드 사이를 쳐다본다.
달과 눈이 마주쳤다.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달아, 내가 브런치에 네 이야기를 썼어."
조금 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요 며칠 더 와줄 거 같은 기대가 생긴다.
등도 따시고 눈도 따시고 맘도 따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