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 덕분에 행복하게 삽니다

귀찮아도 괜찮아

by 고스란

일요일 저녁, 6시가 넘었는데도 밖이 환하다.

블라인드를 쳐놔도 전혀 어둡지 않을뿐더러 방이 은은한 옅은 주황빛으로 꽉 차서 따스하고 평온하다.


들어올 때 현관 앞 신발을 보니 모든 가족이 집에 들어온 게 분명하다. 그런데 조용하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짐을 내려놓고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일단 침대에 눕는다. 몰려오는 잠을 10여 분간 자고 일어났다. 이제 제대로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아, 귀찮아.

강아지도 옆에서 잔다.




아직도 소리가 안 나는 걸 보니 다들 자나보다.

아무도 깨우지 않는다.


피곤한가 보다.

어제 새벽 1시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서 2시 넘어서 잤으니 남편도 피곤할 테지.

어제 비 맞으며 축구대회를 하고 회식까지 하고 들어온 데다 오늘도 나가서 축구하고 왔으니 아들도 피곤할 테지.

가벼운 산책 후 카페에서 내리 3시간 공부하고 정리하고 다시 산책하며 6500보를 채우고 들어왔으니 나도 피곤할만하지.


아까 들어와서 주방을 보니 무언가 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셋 다 일어나 자기 식성에 맞게 밥도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다 쉬고 있으니 됐다.


평화롭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또 나름 열심히 한다.

그러면 됐지.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안 차면 어떤가.

사는 모습이 저마다 다른 걸.




귀차니즘을 이기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꼭 해야 하거나 꼭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삶이 단순하다.


그렇다고 항상 같은 것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투명하다.


지금 그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몸상태와 기분이 어떤지 그대로 다 드러난다.


침대에 누워서 엄지로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가 참 재미있다는 것이다.




귀차니즘이라 행복한 이유 세 가지


선택지가 간단하다.

생각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딱 떠오른 것 중에서 고른다. 어쩌면 그게 진짜 나 일수도.


비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의 삶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 귀찮은 일이다.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비난하려면 기준을 두고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더군다나 내기 위해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부글 너지를 끌어올야 한다. 생각만 해도 힘들고 귀찮다.




귀찮아도 괜찮다.

귀찮아하는 나도 좋다.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혹시

만사가 귀찮아 뒹굴거리면서

귀차니즘에 빠진 내가 싫


충전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잘 먹고

자.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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