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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짜 잡음인지

노이즈캔슬링(잡음차단)

by 고스란

평소보다 늦은 9시 20분에 강아지와 밤산책을 시작했다.

얼굴도 아직 못 본 아들과의 부대낌으로 시간도 늦어졌고 부아도 살짝 올라왔다.

다른 때 같으면 이어폰을 끼고 노이즈캔슬링(외부잡음차단)을 하고 듣고 싶었던 것들을 들으며 여유 있게 걸었을 것이다.


오늘은 이어폰을 낄 수가 없었다. 외부 소리보다 내 속이 더 시끄럽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들리는 볼륨은 0이지만 내가 듣기엔 소리도 크고 빠르며 꽤나 날카롭다. 오히려 내 속의 소리를 상쇄시키기 위해 귀를 열고 생생하게 들리는 모든 소리와 감각을 온전히 느껴본다.




산책길을 사이로 왼쪽에는 다, 오른쪽에는 도로가 있다. 왼쪽 까만 갯벌 위에 이 동그랗게 떠 있다. 벌써 보름달이다. 며칠 전 반달 얘기를 했는데 그 새 알차게 차올랐다.

산책길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힐끗힐끗 달만 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소리에 집중해 본다.

이어폰 없이 밤에 걸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이렇게 쌩쌩 달리는 소리가 크게 나는지 몰랐다. 무섭기까지 했다.

신호가 잘 연동되어 있어 달릴 때는 시끄럽게 번쩍번쩍 몰려 달렸다가 보이지도 않는 저 먼 신호에 걸려 있을 때는 8차선 살짝 굽은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이 몇 분간 고요하다.


파란불이 켜져 내 옆으로 달려오는 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가던 길에 멈춰 서서 살짝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다.

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몇 차선쯤에 있는지 차의 크기가 어떻고 무게는 어떠할지 가늠이 될 만큼 저마다의 소리가 있었다.

근처에 사거리가 있어 신호에 걸린 듯 속도가 줄어들며 바퀴가 바닥에 점점 넓게 닿아 천천히 굴러가는 리까지 들린다. 다양한 소리의 잔향이 귀에 맴돈다.

내가 음악에 소질이 있다면 뭐라도 떠올랐을 거 같은 기분이다.


모든 차가 떠나고 다시 정적이 오자 내 왼쪽 옆에서 걷는 작은 강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신발도 없이 맨발로 걷는 이런 하찮은 소리라니. 하네스와 줄을 연결한 고리 두 개가 맞닿아 딸그락 거리는 쇳소리가 차라리 더 크다.


조금 더 먼 곳에서는 이름 모를 동물의 소리가 가끔씩 들려온다.

더욱더 멀리에서는 묵직한 비행기의 팬소리인지 엔진소리인지 여하튼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거친 소리가 작게 난다.


더 이상 내 속 시끄러운 소리는 사라졌다.

잡음이 제대로 차단되었다.


내 뺨과 마음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이 손아귀에서 잠시 잡혔다가 빠져나간다.






오늘 처음으로 산책을 하며 떠오르는 문장들을 녹음했다.

한 번의 산책으로 세 가지 글감을 얻었다.

집에 와서 잠자기 전 모두 담고 싶어 두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주제 하나를 완성했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던 찰나, 내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처음엔 틈틈이 저장을 하다가 생각의 꼬리를 물어 길게 썼는데 그 글이 날아갔다.

모바일 브런치에는 ctrl+z 기능이 없다. 맙소사.

허망하고 기운 빠져 초반까지 쓴 글만 저장해 놓고 자려다 굳이 마무리한다.

첫 번째의 생생함은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듬어졌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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