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제는 '바다를 마신 달'이라는 글을 쓰고 싶었다.
저장 못한 글을 날려버리며 시간도 없고 기운이 나지 않아 쓰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오늘, 달도 바뀌었고 제목도 바뀌었다.
퇴근 후 피곤함이 몰려와 저녁잠을 잤다.
아들이 들어온 줄도 몰랐고 저녁도 못 차려주었다.
아들에겐 기분이 아직 안 풀린 엄마로 보였을 테지만 그냥 정말 피곤했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산책시간이 늦어져 어제와 비슷한 시간이 되었다.
밤에 보는 산책길 옆 까맣고 널따란 갯벌에는 물이 차 있지 않다. 근처 산 어디선가부터 흘러내려와 바다로 가야만 하는 물의 마지막 길만 보일 뿐이다.
밤에는 볼 수 없지만 그 물길 옆에는 커다란 하얀 새들과 그보다는 좀 작은 오리들이 무리 지어 앉아 쉬곤 한다. 갯벌에 물이 차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산책길 끝에서야 우리가 아는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어제 보름달을 발견하고는 바다에 비친 달사진을 찍고 싶어서 산책길 끝 전망대에 올라 카메라를 들이댔다.
'어라, 바닷물이 어디 갔지?'
찰랑이던 그 많던 물이 사라졌다.
눈이 커진 난 달을 쳐다보며 물었다.
"넌 봤을 거 아니야. 바닷물이 어디로 갔는지."
달은 모른 척하며 눈을 돌린다.
바다가 없는 바다라니 아니 물이 없는 바다라니.
그럼 여긴 바다야 땅이야.
다시 달을 쳐다본다.
"설마 네가 마셔버린 거야?"
달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이없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물에 비친 달은 돌아오는 산책길 옆 갯벌의 좁다란 물길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어제에서 하루 지났을 뿐이니 바다를 기대하지 않았다. 달은 둥글 거고 바닷물은 없겠지.
산책길 골목을 돌아서 넓게 펼쳐진 하늘에 뜬 달이 생소해 보인다. 옅은 구름 뒤에 숨어서는 자기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차분한 달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어제처럼 바닷물을 마셔버린 모습일까 봐 차라리 가는 길 물길에 비친 달을 찍어두었다. 어제보다 물길이 조금 더 굵직했다.
도착지에서 바로 바다 가까이 둑에 몸을 붙이고 까치발을 들어 바다를 본다.
'오늘도 물이 별로 없군.'
그런데 달을 쳐다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아까 느꼈던 생소함의 이유를 알았다. 달이 노르스름하다.
아무래도 바닷물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짠물을 그리 많이 마셔 대더니 탈이 났나 보다.
그래서 표정도 밝지 않고 흐리멍덩했나 보다.
그래서 어제처럼 높이 뜨지 못했나 보다.
오늘은 주변이 더 조용하다. 반짝이는 별도 별로 없고 지나가는 비행기도 안 보인다. 짠물을 그리 마셔버려 탈이 난 건 달의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노랗게 힘 없이 떠 있는 모습에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나도 8차선 건너서 집으로 간다. 더 멀어져 있다. 조금은 미안했다. 대신 눈길을 더 많이 주었다.
아니다. 생각을 달리 해봤다. 노르스름한 달이 진짜인가?
보름이라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쳐다보니 더 높게 환하게 있었는지 모른다. 더 힘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밝지 않은 본모습을 보여주며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은 환하고 밝을 때도 좋지만 은은하고 따뜻한 모습일 때는 더 사랑스럽다.
달 앞에 있는 유난히 밝고 하얀 가로등 불빛이 유치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