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엔 비슷한 간격으로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다.
몇 종이 반복되어 있는 것도 같은데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소나무뿐 벚꽃이 진 벚나무 외 나뭇잎만 달린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겠다. 아직 나뭇잎의 특징이 도드라진 게 아닌지 사진검색으로 찾아봐도 찍을 때마다 다르게 말해주니 확실하지 않다. 좀 더 나뭇잎이 커지고 다른 그림 찾기가 가능할 때가 돼서야 이름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땐 더 자세히 살펴보고 이름도 외워야겠다.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으니 기억하기도 좋을 거 같다.
아직 제대로 구별할 수 없는 나무들 사이로 내 산책은 계속된다. 나와 강아지는 늘 가던 속도대로 쭉 지나간다.
무심결에 한 나무 앞에 발길이 멈췄다,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상체만 살짝 앞으로 기울어지다 다리에 맞춰진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무를 쳐다본다.
5월 중순에 다다른 이때, 낮기온이 20도도 넘어서는 요즘에 여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나무가 서 있다.
혹시 죽은 나무인가 싶어 굵은 줄기부터 저 높은 가지 끝까지 올려다본다.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높은 가지에는 몇 개의 잎이 달린 것도 같다.
지나가던 이가 멈춰 서서 쳐다보고 있으니 앞, 뒤, 양 옆 나무들도 같이 멈칫한다.
뒤에 서 있던 나무가 눈치주며 말한다.
"그러게 내가 얼른 싹도 틔우고 나뭇잎도 달라고 했잖아."
'벌써 5월인데, 해도 잘 드는 곳인데, 주변엔 다 잘 자랐는데.. 아직도 나뭇잎이 없다니 신기하네. 왜 그렇지?'
나의 의아함에 나무가 살짝 언짢았나 보다.
가만히 있다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꼭 지금 싹을 틔우고 나뭇잎을 보여줘야 하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원래 봄이면 나무들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원래', '나무들'이란 말이 괜히 신경 쓰인다.
"전 아직 생각이 없어요. 저 아니어도 나뭇잎 달린 나무들은 많으니까요. 저까지 굳이 같은 시기에 나뭇잎을 키워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머리에 무언가로 한 방 맞은 듯하다.
봄에 새싹이 돋고 여름에 나뭇잎이 무성해지는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꽃은 사계절 다 다르게 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 시와 노래를 통해 알았는데 거기까지만 대충 알았을 뿐이다.
같은 장소 같은 종류의 나무들은 다 한 때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례를 저질렀다.
사진을 찍어 두었다.
다른 나무는 잊어도 너만은 꼭 기억하고 싶다.
네가 언제 어떻게 변해갈지 무척 궁금하다.
남들이 늦었다고 말할 때 혼자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는 나무가 있다.
나무도 마음이 따로 있다.
지금까지 난 무슨 잣대로 나무들을 비교한 걸까?
어리석고 어리석다.
나무를 보고 나의 자람을 생각해 본다.
내 주변이 하기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른 이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태어나 사는 자연물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밤에 만난 나무가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