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연결이 되다니
분명 서로 상관없는 시작점이었다.
그저 하고 싶어서 마음이 끌려서 했을 뿐이다.
의도된 바는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최근 무심코 찍은 점들이 연결되는 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찾아보았다.
전부 제대로 기억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다행히 검색해서 찾을 수 있을 만큼 가장 중요한 것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connect, dot, 스티브 잡스
바로 이거였다.
처음 이 내용을 접할 때만 해도 '그렇겠지.' 하며 무심하게 넘겼다.
다시 읽어보니 '역시'고, '과연'이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2005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봤을 때만 점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언젠가 이 점들이 미래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뭔가를 믿어야 합니다 — 직감이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업(karma)이든, 어떤 것이든 말이죠. 이런 믿음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내 인생에서 모든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 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연설
'오직 뒤를 돌아봤을 때만 점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러려고 그랬구나. 결국은 자기만의 해석이자 합리화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는 꿈보다 해몽이다.
Dot #1-1
올해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독서만 하는 모임은 아니지만 독서가 내겐 주역할을 하기에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을 듯하다.
지난달 독서 모임에서 내가 골라 읽은 책은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약간은 어두운 소설을 읽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가끔 에세이가 나오면 사서 읽곤 한다.
책의 앞부분을 읽는데 예전에 들은 강연이 떠올랐다. TV에서 가끔 보기도 하지만 말씀을 정말 잘하신다.
그리 살갑지 않게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속에서 지식과 다정함과 유쾌함이 버무려져 나온다. 자극적이지 않고 충격을 주진 않지만 담백하면서 슴슴하니 고유의 맛도 있어 먹는 내내 기대이상이라며 다시 생각나게 한다.
강연자로서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싸인이나 사진 촬영은 기대도 못 한다.
영화의 쿠키영상을 기다리듯 강연 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져온 책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면 강연 주최자 측에서 안쓰럽다는 듯 말씀하시곤 한다.
"작가님 잘 아시잖아요. 못 보실 거예요. 가까이서 보는 저희도 사인 못 받아요."
알고 보면 츤데레인 경우가 종종 있으시다는 것도 안다.
다시 강연을 보고 싶었다.
정말 아무 기대 없이 검색을 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조만간 토크콘서트가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삶'이라는 주제로 네 명의 명사가 나오는 프로젝트로 5월 30일이 김영하 작가편이다. 검색한 날은 티켓오픈일 이틀 째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예매를 했다. 제법 앞자리가 있는 데다 시에서 운영하는 아트센터에서 하는 강연이라 가격도 정말 착했다.
Dot #1-2
올해 굳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가끔 글에도 썼지만 오현호 작가님과 함께 '굳이 행동하는' 프로젝트이다.
초반 줌강연에서 어떤 강연에 참여하면 꼭 질문자가 되어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평소 내향적이기도 하고 강연은 말씀을 들으러 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질문할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굳이 질문을 하고 싶었다. 솔직히 질문을 할 기회가 있다는 보장도 없다.
최근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정말 나에게 국한된 사소한 질문거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최근 읽기 시작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서 본 예술가의 삶에 대한 문장 하나도 기억났다.
강연 시간에 맞춰 운전을 하고 가면서 두 가지 질문을 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고 질문하는 나를 상상하며 말이 꼬이지 않게 하려고 몇 번이고 연습했다. 질문시간이 있는지도 모르고 나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강연장 로비에 들어서니 Q&A 시간에 쓸 판이 세워져 있고 옆에는 세 가지 색깔의 포스트잇이 네임펜과 함께 놓여 있었다. 이미 10개가 넘는 질문이 붙어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그곳에 가서 빨간색과 노란색 종이를 골라 두 가지 질문을 정성스레 썼다. 로또를 사놓은 토요일처럼 강연을 듣는 내내 더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한 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질문판과 함께 돌아오시겠다며 아주 잠깐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괜히 기대하게 된다. 간단한 질문 몇 개가 뽑혀 답변을 들었다. 내 질문의 양이 너무 많아서 손이 안 가는 걸까 내용이 별로라서 읽고도 넘기신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내가 쓴 포스트잇을 집어 들어 읽어 주셨다.
책을 읽은 직후인 것도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셨다. 정말 진심 어리고 실제 도움이 많이 되는 답변을 아주 길게 해 주셨다. 다 끝나고 겨우 그 포스트잇을 기념으로 받아올 수 있었다.
굳이 질문을 한 덕분에 궁금했던 것도 풀렸고 절대 잊히지 않을 강연이 되었다.
Dot #1-3
작년부터 유뷰브를 통해 고명환 작가의 아침 확언이나 강연을 자주 듣는다. 물론 '고전이 답했다' 책도 읽었다. 독서를 통해 나오는 인사이트가 좋고 선의와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좋았다.
김영하 작가님이 강연을 하시는 동안 배경 화면에는 까만 바탕에 문장이나 그림, 사진이 한 두 개만 띄어졌다.
가끔 다른 작가 작품의 글이나 명언이 나오곤 했다.
책 제목이 쓰여 있지 않은 문장을 읽어주시며 "어디에 나오는 글이죠?"라고 물으신다.
나도 모르게 절로 책 제목을 말하게 된다. 미술품도 보여주시는데 제목이 생각난다. 누구의 명언인지 안다.
맙소사, 이러려고 읽은 건 아니었다. 유튜브도 출근 준비를 하면서 혹은 집안일을 하면서 듣곤 했던 건데 머리에 남아 있었다. 스스로 기특했다.
Dot #1-4
금요일 강연을 다녀온 후, 토요일 오전 6시.
성장 모임이 있는 날이다. 전체 줌모임 후 소모임에서 '좋, 아, 해'를 말한다.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 해보고 싶은 일을 줄여 말한 것이다.
전 날의 강연이 너무나 생생했기에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작가님께 했던 질문과 답변도 궁금해하셨다. 강연 내용이 선명히 남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누니 신나고 도움이 된다고 하시니 기뻤다. 원래 이 모임을 통해 책을 읽게 돼서 일어난 일이다. 선순환이 일어났다.
Dot #1-5
책과 강연으로 이야깃거리뿐만 아니라 글 쓸 거리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거의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다 굳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인 미션으로 정했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선순환이다. 굳이 프로젝트로 인해 질문자가 되었고 그 이야기를 다시 글로 쓰고 있다.
몇 개의 점을 잇다보니 원 하나를 그려낸다. 내 인생에 아름다운 동그라미가 추가되었다.
Dot #2-1
2022년부터 브런치 작가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
올 6월 6일 다문화 가정의 엄마와 자녀를 위한 글쓰기 무료 강좌가 재능기부로 열린다. 작가 모임에서 희망자를 받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역할 중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맡게 되었다. 어떤 주제로 해야 좋을지 생각이 많아졌다.
Dot #2-2
최근 비폭력대화 관련 연수를 들었다. 세 차례에 걸친 9시간 강좌 중 병원진료로 1시간을 빠지면 이수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듣고 싶었다.
연수 중간에 강의와 어울리는 그림책 몇 권을 보여주셨다.
'바로 저거야.'
재능기부 수업에 딱 맞춤인 그림책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수업 주제가 정해졌다.
수전 베르데 작가의 책 '나는 ( ) 사람이에요'를 바로 주문했다.
주제가 정해지자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수업의 방향도 잡히고 내용도 채워졌다.
Dot #2-3
그다음 점은 언제 어떻게 찍힐지 모른다. 아직도 진행 중이기에.
오늘도 다양한 크기의 점을 여러 개 찍었다.
어떤 그림을 그리겠다고 찍는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이 끌리는 대로
손길이 가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생각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산다.
나의 작은 점들이 그려낼 그림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