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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없던 해돋이

아들아 고마워

by 고스란

12월 31일 방학.

기막힌 한 해의 마지막이다.

새해 첫날이자 방학 첫날, 아들과 친구들이 함께 해돋이를 볼 거라고 했다.

5시 30분에 일어나서 6시에 만나 우리 동네 해돋이 명소로 걸어가겠다고 했다.


"요즘 해는 7시 4~50분에 뜨는데 그렇게 일찍 간다고?"

"몰라, 그래도 그렇게 약속 잡았어요."

"난 그 시간에 깰 계획이 없는데, 내일 잘 다녀와."




2025년 1월 1일, 7시가 좀 지나 우리 집 강아지 솜이가 나를 깨웠다.

솜이에게 밥을 준 후 혹시나 해서 아들방에 노크를 했다.

인기척이 났다.

"오늘 해돋이 보러 간다며? 약속 취소 됐어?"

"아니요, 늦잠 잔 거예요."

후다닥 나오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씻으러 들어간다.


"아직 해 안 떴으니까 얼른 준비해 데려다줄게."

아차, 나 차 없지.

부랴부랴 오늘은 좀 늦게 일 간다던 남편을 깨웠다.

"아들 해돋이 보러 가는 거 데려다줘야 해."

"아, 계획에 없던 건데. 더 자고 싶은데."

"그럼 내가 데려다주고."

"아냐, 이 김에 우리도 솜이 데리고 해돋이 보러 가자."


그렇게 계획에 없던 해돋이 구경을 갔다.

아들이 약속 장소를 헷갈려하는 바람에 반대방향으로 출발해서 제시간에 도착하기 아슬아슬했다.





처음 알았다.

우리 동네가 나름 해돋이 명소라는 걸.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인 건 잘 알겠고 해넘이 명소인 건 알았는데 해돋이 명소기도 했구나.

구읍뱃터라는 지역은 해돋이를 보러 온 차들로 양쪽 도로와 중앙선까지 꽉 찼다.

근처 호텔에서 여행객을 몰고 온 버스까지 주차되어 있으니 난리가 아니었다.

아들은 해 뜨기 직전, 약속장소 최대한 가까이 데려다주었다.

우리는 주차를 할 수 없었기에 차 안에서 저 멀리 떠오르는 새빨간 해를 볼 수 있었다.

제대로 자리 잡아 사진을 찍고 싶어 했던 남편은 꽤나 아쉬워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잘못 간 길 쪽이 더 보기 좋았을 거라고, 아니 우리 집 옥상에 보는 게 더 잘 보였을 거라고 했다.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 좀 한가할 때 도전해 봐야겠다.


우리의 호들갑에 같이 따라나섰던 솜이가 못내 아쉬운 모습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다 방향을 돌려 산책을 나섰다.

8시 초반 평소라면 출근하는 시간인데 산책을 하니 새롭다.


낮은 기온은 아니라지만 이불에서 나와 차 안에만 있던 터라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패딩 모자를 뒤집어쓰고 늘 가던 곳으로 산책을 갔다.


내가 사는 곳은 영종도다.

우리 산책길은 조금만 걸으면 갯벌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고 인천대교가 보이는 흔치 않은 곳이다.

해가 이미 떴어도 전망대가 있는 곳은 사람으로 북적거릴 것이 뻔했기에 적당히 갔다.

아무도 없는 길, 갯벌가 잔디둔턱에 자리 잡았다.


새해라고 해야 어제와 같은 해겠지만

그래도 온갖 의미 부여를 하며 감사, 희망의 인사를 건넸다.





2025년, 을사년.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을사늑약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연상기억이 이렇게 무섭다.

고명환 작가는 을사년이니 얼싸안는 한 해가 되자고 했다.

얼싸안다와 계속 연결 지어야겠다.


첫날부터 계획에 없던 일을 했고 계획보다 더 나은 하루를 보냈다.

서로를 보듬으며 어느 해보다 따뜻하고 단단하게 보낼 것이다.






요즘 아들이 '이태원 클라쓰'를 다시 몰아보기 중이다.

나한테 한 대사를 실감 나게 외쳤던 것이 가슴에 와서 박혔다.

"내 인생 이제 시작이고, 난 내가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거야."

좋은 생각이라고, 그렇게 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남은 인생의 첫날, 매일이 시작이다.

처음처럼 설레하며 만들어 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작년의 끝이 계획과 예상에 없었듯

올해의 끝도 계획과 예상에 없는 날일 것이다.


작년 말 새삼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이고 별의별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삶에 한계를 짓지 말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2025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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