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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건네준 책 한 권

너, 이탈리아에 진심이구나

by 고스란

"엄마, 나 오늘 도서관 가서 책 두 권 빌렸어요."

아들이 오랜만에 동네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오랜만에라고 쓰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사오고는 처음인 듯하다. 재작년 4월에 이사를 왔으니 2년 만이다.

대출카드를 분실했다고 그동안 책을 안 빌렸다. 고등학생이라 시간도 없고 학교도서관도 있는데 굳이 동네도서관에 가야 하냐는 말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둔 탓이다.

"한 권은 내거고 한 권은 엄마 거예요."

"엄마 책도 빌렸어?"

주방테이블 한편, 그리고 내 방에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생각났다.

대출카드를 새로 신청해 놓고 어렵게 빌려온 책이라니 무슨 책일까 상당히 궁금했다.

"둘 다 이탈리아 책이에요."

이탈리아책? 이탈리아 여행책인가 했더니 에세이다.

내게 한 권 쥐어주고 자기 책은 보여주지 않고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2월 8일까지 반납이니까 그때까지 꼭 읽으세요."

내가 이 책 저 책 깨작대며 읽는 걸 알고 있었는지 반납 날짜까지 일러준다.



<글쓰는 엄마의 이탈리아 여행법>, 김춘희






가끔 공수표로만 던진 어디 여행 가고 싶은데 있냐는 질문에 예전 대답은 프랑스, 영국, 스페인이었다.

에펠탑을 꼭 직접 보고 싶다던 아들이 축구를 한참 보는 나이가 되고서부터는 프리미어리그를 직관해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경기는 일품이라 챔스 전을 보려면 스페인을 가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 꿈목록에도 '아들과 프리미어리그, 챔스 직관'이라고 써넣었다.


그러던 아들이 자기와 이탈리아 여행을 가잖다.

요리를 좋아하고 특히 파스타는 제법 잘 만드는 아들이기에 요리 때문이냐고 했더니 이탈리아에는 축구, 요리, 건축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게 다 있단다.

그래, 맞다. 얼마 전 아들이 원해서 이탈리아어 입문책도 사주긴 했었다.






책을 들어 제목을 찬찬히 보니 '글쓰는 엄마'라는 말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나를 '글쓰는 엄마'로 인정해 주는 건가?

브런치 작가가 되고, 책 두 권을 출간했다고 말했을 때 축하는 해줬지만 그 후로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삶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의미부여가 되었다.

왼쪽 아래 익숙한 브런치 파비콘과 위클리 매거진 연재작이란 딱지도 보였다. 여행 가서 꾸준히 잘 쓰면 이렇게 책이 되는구나.

'이탈리아 여행'

2021년 겨울, 한 강의를 듣고 지금의 비전보드 같은 것을 작게 만들었다.

거기에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사진을 붙여놓고 아들과 함께 꼭 가겠다고 했다.

난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았던 소원이었는데 아들이 먼저 이탈리아에 가자니 약간은 놀랍고 이제야 텔레파시가 통한 건가 싶어 재밌기도 했다.






프롤로그를 보니 중3인 아들, 아홉 살 딸과 함께 겨울방학 한 달 동안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여행한 이야기라고 했다.

예비고 1의 중요한 시기를 놓쳐 나중에 후회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지만 잘 다녀왔고 나중에 수능도 잘 본 아들이 그 한 달 여행이 더없이 좋은 추억이라고 했단다.

고2를 앞두고 방학 때 안 놀면 언제 노냐며 펑펑 노는 아들을 생각하니 우린 어느 방학이든 여행 다녀올 수 있는데 다만.. 하면서 생각을 멈췄다.

아빠가 원래 해외출장 잘 다니는 집이네. 이 전에도 다른 해외여행 자주 했던 집이네. 여유 있는 집이네. 엄마는 기자 출신이었네.

그렇다. 그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건 내 앞에 놓인 아이스 카페라테를 마시는 것만큼 쉽다.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하는, 우아하고 싶은 엄마의 고군분투도 엿보였다.

난 아이도 하나인 데다 이젠 제법 커서 자기 할 것도 하고 깜빡하길 잘하는 나를 챙겨주기까지 하니 더 좋을 것이다.

키도 크고 관찰력도 뛰어난 아들은 이제 노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 나 대신 멀리 길도 잘 찾고 이정표도 잘 볼 것이다.

모험심이 강한 아들은 나의 첫 이탈리아 여행 때보다 좀 더 과감하게 계획 세울 것이고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더욱 대처를 잘할 것이다.

한국에 대한 위상이 높아진 요즘은 예전보다 덜 낯설고 우리에게 더 호의적일 것이다.

한 두 가지 쓰다 보니 아들과 둘이 떠나는 긴 해외여행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여행 갈 수 있는 이유, 여행 가기 좋은 이유를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찾아 놓는다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그땐 나도 여행기를 브런치에 연재해야겠다.

기자출신도 아니고 글도 그리 수려하지 않지만 아들과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기 하나 남기는 것은 참으로 멋진 꿈이 분명하다.

<축구, 요리, 건축의 나라, 아들과 함께한 이탈리아> 책 제목은 정했으니 이제 목차를 짜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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