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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무서운 언어

by 고스란

내가 좋아하는 언어는 문학의 언어였다.
그 언어는 모호하다. 이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저것을 말하고, 저것을 말하면서 이것을 말한다. 때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언어이며, 사람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된다. 회계가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그래도 된다. 그래서 좋았다.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복복서가, p.48





바로 이 이유였다.

드디어 내 안에 오래 묵은 질문의 답을 찾았다.

나는 국어를 좋아하면서도 '가장 ~한' 답 찾는 것을 어려워했다.


국어보다 수학을 더 좋아했던
문학책보다는 자연과학책을 더 좋아했던

연애의 밀당을 싫어했던
때론 남자와 대화하는 게 맘 편했던
대화가 좋지만 혼자 있는 게 더 즐거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유였다.




언어의 모호함이 내겐 너무 어려웠다.
문학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말은 무한한 다른 해석이 가능했다.
그렇지 못한 나는 들키지 않게 눈빛을 보고 얼굴의 표정을 읽어내고 행동을 분석해야 하는 피로함을 느꼈다.
보이고 말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무시무시한 말에 차라리 스스로를 소수의견자라 여기며 사는 것을 선택했다.
말과 행동을 수없이 검열하며 의도가 잘 전달되는지 살피는 이 삶이 때론 불편하긴 하지만 분명 말의 촉각도 예민하게 다듬어졌을 테니 손해만은 아니다.

무던하고 무심한 듯 나를 다스리는 법을 찾아 하루하루를 사는 재미도 발견했다.

독서 모임을 통해 생각지 못한 다른 해석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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