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 전 이야기 둘
이해할 수 없는 기억들이 많다. 왜 내가 거기에 있었을까 하는 것들 말이다. 김 군 아저씨가 A언니와 데이트를 갈 때 왜 나를 데리고 갔을까 하는 것도 이런 류의 기억들 중 하나이다.
아저씨는 용달 운전수였다. 나는 우리 지방 사투리대로 아저씨를 ‘김 군 아지야’라고 불렀다. 알뜰한 우리 부모님은 방 두 칸짜리 안채의 한 개 방을 김 군 아지야에게 세를 놓고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자는 걸 선택했다. 아재라고 불러도 어른들이 ‘김 군’이라 불렀으니 김 군 아지야는 지금 생각하면 20대 초중반의 총각이었으리라.
공사판이었던 우리 동네에는 여기저기 건설사 사무소가 있었다. A언니는 그런 건설사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사무실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공터에 임시로 지어져 있었다.
김 군 아지야는 용달 운전사였지만 오토바이를 갖고 있었고 쉬는 날에는 나를 태워주기도 했다. 이 때도 대략 학교 다니기 전이었고 여전히 나는 하루 종일 책 읽기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아지야는 좀 뺀질한 인상이었지만 잘생긴 얼굴이었던 것 같다. 언니는 날씬하고 화창하게 웃는 인상의 20대 아가씨였다. 당연히 젊은 그들이 연애를 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만 왜 그런지 대놓고 연애를 하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 둘의 오토바이 나들이 가운데 내가 끼어있었던 것은? 요즘 같으면 애엄마들이 가만있지 않았겠지만 묘하게 바빴던 우리 엄마는 내가 이런데 동행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의 연애생활에 동행하여 내가 뭘 했는지 그것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식도 조카도 아닌 주인집 딸인 나를 그들 연애의 안전망처럼 끼워 다닌 듯했다. 나도 알 수 없는 핑크빛 구름을 탄 꼬마처럼 내가 미처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랑의 미풍일지 오토바이 얻어 타는 아이의 즐거움인지 신이 나 따라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미풍은 늘 그렇듯 오래가지 않았다. 낯선 성벽 같은 아파트들이 들어선 게 먼저인지 김 군 아지야가 이사 가 버린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자연스레 그들의 연애는 끝나버린 것 같다.
김 군 아지야의 등 뒤에 내가 앉고 뒤에서 언니의 화장품 냄새가 나는 듯한... 옛날 청춘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 마치 그날들은 봄날의 하루였던 것처럼 내 유년의 한 장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