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작

취학 전 이야기 하나.

by 해피엔딩앤

총기가 좋은 아이들은 네댓 살 아기 때 이야기도 기억한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똑똑하지 못했던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모습은 마당에 앉아 대문 밖을 바라보는 약간은 긴장한 어린 소녀이다. 다행히 학교는 아직 가지 않은 나... 또 다행히 글자를 알고 있는 나. 알뜰한 부모님은 이제 대부분 다니는 유치원에 나를 보내지 않으셨다. 이건 80년대의 이야기이다.


항상 그랬던 거 같다. 친구를 사귀어보지 않은 나에게 밖에 나가 놀라고 하던 엄마. 엄마는 내 기억에 바빴던 적이 없는 전업주부였지만 그 시절 엄마들이 그랬듯이 다감하게 나를 이해하거나 놀아주지는 않았다. 무릇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어떻게든 누구와 놀 거라고 생각하셨다. 뭔가 그런 부분에서도 여느 아이와 내가 다른 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오빠를 겨냥해 사 둘 법했던 집에 있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나름 재미도 있었고... 흑백 티브이 같은 느낌의 계몽사의 조막만 한 문고들은 스케치 같은 소박한 그림일지언정 내 마음을 빼앗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여 하루에 몇 시간은 나가 놀기도 해야 했다.

대부분의 날들은 동네 꼬마들을 구경하며 뱅뱅 돌다 " 놀 애들이 없어.."라고 하며 집으로 부끄럽게 들어와야만 했다. 아직도 엄마는 이랬던 나의 흉내를 내며 웃곤 한다. 그렇다. 엄마와 나는 서로 맞지 않고 이해도 잘 못한다. 그런 기억들이 나에겐 여전한 부끄러움임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이랬던 나에게 드디어 친구들이 생겼다. 어떤 과정으로 알게 되었는지까지는 기억에 없다. 나와 동갑이었던 남자아이 희상이와 이름도 기억에 없는 미용실집 언니였다. 그때는 지방의 중소도시가 한창 주택지 개발에 들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를 짓기 위한 모래와 자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해서 애들이 접근할 수도 없는 환경이었지만 들강아지 마냥 해질 때까지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니며 동네를 쏘다녔던 것 같다. 드디어 나도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서 하루를 보내고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길이 다 연결되지도 않아서 동네 끝에 지저분하고 위험한 하천도 있었고 고장 난 공사장비들도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었다. 미취학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놀고 다닐 환경이 아니었다. 하기야 오빠 같은 남자아이들은 야산에 가서 놀다가 밤이 되면 돌아오기도 했지만 어른들은 그런 걸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때 불과 아홉 살에서 열 살 정도의 아이들이었다.

살인의 추억이니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니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그때의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운 좋게도 아무 일 없이 놀고 또 놀기만 하는 유년시절을 보내던 중이었다.


오늘이 어제 같던 어느 날, 미용실 언니는 돈이 많이 생겼다며, 희상이와 나에게 오늘은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했다. 그래봤자 동네슈퍼였지만. 이상하게 열띤 기쁨이 있던 그날, 당연히 우리도 즐거웠다. 언니는 우리를 데리고 우선 하천으로 갔다. 하천에 간 언니는 아줌마들이 쓸법한 무지개무늬 비닐 지갑을 꺼냈다. 그러더니 그 이쁜걸(어린 나는 그걸 이쁘다고 생각했음) 하천에다 버렸다. 큰돈(수표이진 지폐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음)만 꺼낸 언니는 기찻길을 넘어 국민학교 앞에 있는 문방구에 가서 정말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했다. 그 당시 나에게 기찻길이란 엄마가 정해준 경계선이었다. 어떤 아이가 엄마말을 안 듣고 건너다가 치어 죽었다는 괴담이 떠도는 기찻길이었다. 희상이는 남자아이라 그런가 전혀 거부감이 없었지만 나는 그야말로 무서운 아빠 얼굴부터 시작해서 괴담까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방구에만 파는 불량식품이 눈에 아른거렸다. 수많은 갈등을 때리며 기찻길 앞까지 가서는 희상이와 언니만 보내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기찻길만이 내 발길을 잡는다고 생각했지만, 지나서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이 불안했던 건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던 거 같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던 나에게 엄마가 물었다. 미용실 언니와 희상이가 어디를 갔냐는 거였다. 나는 사실대로 언니가 돈이 많아서 우리에게 슈퍼에서 먹을 걸 사 주었고 더 맛있는 걸 먹기 위해 희상이를 데리고 학교 앞으로 갔다고 했다. 왠지 언니에게 뭔가를 얻어먹고 학교를 가는 것을 말리지 못한 내가 잘못한 것 같았지만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결에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00 이가 희상이 집에서 돈을 훔쳤단다. 부엌 찬장에 지갑을 넣어놨는데 그걸 빼가지고 가서.. 00이 엄마가 애 잡아와서 뭐라카고...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아도 울고불고..."

잠결이었지만 나는 기찻길에서 내 발목을 잡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슈퍼에서 과자를 얻어먹던 나는... 하천에서 지갑을 버리는 것을 본 나는... 계속 이 돈의 정체에 대해서 불안해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미용실 언니는 나에게 다정하고 희상이에게 다정하고 착한 언니였는데 왜 희상이 엄마의 지갑을 훔쳤을까?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후로 나는 언니랑 놀지 않았다. 엄마가 놀지 말라고 했는지 그건 기억이 안 난다. 어릴 때부터 내 단속이 심했던 성격 탓이었을까. 난 불과 일곱 살이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언니는 인사도 없이 이사를 갔다. 나의 첫 번째 친구는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언니는 아빠가 없었고, 엄마는 미용실을 하며 언니를 키웠다. 지갑 사건 때 희상이의 엄마는 아무 타박이 없었지만, 미용실 아줌마는 동네 사람들이 다 볼 정도로 울면서 언니를 야단쳤다고 한다. 언니가 이사 간 걸 알고 나는 언니도 미용실 아줌마도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고, 친구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내 곁에 동네 친구는 희상이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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