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 Eponine Aug 14. 2021

여름을 위한 영화 06

16일 - 19일: 여름의 열기 속으로

여름의 특징 중 하나는 그 계절이 내뿜는 열기일 것이다. 보통 그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질리게 만들지만, 때로는 그 열기 안에서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말이다. 여기 여름의 열기 가운데 놓인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에 자신의 광기를 드러내고, 누군가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누군가는 그것을 힘입어 열정을 쏟아낸다. 여름의 열기에 의해 더 부각되는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여름을 한 번 들여다보자.


핫 썸머 나이츠 Hot Summer Nights, 2017


감독 일라이자 바이넘 Elijah Bynum

각본 일라이자 바이넘 Elijah Bynum

출연 티모시 샬라메 Timothée Chalamet, 마이카 먼로 Maika Monroe, 알렉스 로 Alex Roe, 이모리 코헨 Emory Cohen

사랑하던 아빠가 돌아가신 후, 다니엘은 말도 없이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아빠의 레코드판들을 태우다 사고를 내고, 여름 방학 내내 방에만 처박혀 있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아들의 반응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없었던 엄마는 그를 방학 동안 숙모네 집으로 보낸다. 1991년의 6월, 다니엘은 숙모의 집이 있는 매사추세츠의 케이프 코드에 도착한다. 나름대로 평화로운 이 바닷가 마을에는 토박이들과 휴가철이면 대도시에서 휴가를 보내고자 찾아오는 돈 많은 철새들이 있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 끼어 있는 다니엘은 파티에서도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이 마을에 유명인사가 있다. 36도의 날씨에도 가죽점퍼를 입고 땀도 흘리지 않는 남자, 사람을 죽였다느니, 어느 부인이랑 잤다느니 소문이 무성한 남자, 그리고 마을에 찾아든 여름 철새들에게 몰래 마리화나를 파는 남자, 바로 헌터 스트로베리. 슈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다니엘은 경찰에 쫓겨 들어온 헌터의 마리화나를 숨겨주게 되고, 그 후 둘은 가까워지게 된다. 그렇게 헌터를 만남으로 인해 마리화나의 세계에 발을 들인 다니엘은 직접 딜러의 역할까지 자처한다.


사실 영화 자체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주인공의 변화 과정에 공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저 방에만 박혀서 지내던 주인공이 여름 방학을 맞아 새로운 곳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약상이 되어가는 이야기인데, 그 대담함의 크기가 너무 갑자기 드러나서 과연 그 광기와 용기가 어디서 나온 것일까에 대해 계속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이 된 한여름의 열기는 주인공이 가진 무모함과 광기를 드러내는 데에 적절히 쓰인 것 같다. '핫 썸머 나이츠'라는 제목부터 무언가 조마조마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금 어딘가 살짝 모자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 작품은 티모시 샬라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비슷한 시기에 찍은 작품인데, 몇몇 장면에서의 표정이나 몸짓이 그 영화의 엘리오를 떠올리게 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후 찍은 '뷰티풀 보이'의 트레일러를 보면서도 느꼈던 건데, 그가 짓는 특유의 표정이나 몸짓이 주인공 캐릭터를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특유의 버릇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어떤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티모시 샬라메'. 이후엔 좀 달라졌을까? '프렌치 디스패치'와 '듄'을 꼭 봐야겠다.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 1960


감독 르네 클레망 René Clément

각본 르네 클레망 René Clément, 폴 제고프 Paul Gégauff

출연 알랑 들롱 Alain Delon, 마리 라포레 Marie Laforêt, 모리스 로네 Maurice Ronet, 빌리 케언즈 Billy Kearns

톰 리플리는 필립 그린리프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의 한 노천카페에 앉아 그의 서명을 연습하고 있다. 부유한 사업가인 필립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놀고 있는 아들 필립을 샌프란시스코로 데려오기 위해, 그의 친구 톰 리플리를 이탈리아로 보낸 것이다. 그를 데려오면 5천 달러를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러나 필립은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고, 톰은 이탈리아에서 돈을 마음껏 쓰며 한량처럼 살고 있는 필립의 옆에 붙어서 그의 삶에 조금씩 물들어 간다. 여자 친구 마르쥬 몰래 로마에 갔던 필립은 그녀와 말다툼을 벌이고, 둘이 화해하는 사이 톰은 몰래 필립의 옷을 입어보며 그의 흉내를 낸다. 이를 발견한 필립은 화를 내고 톰은 당황하며 옷을 벗는다. 톰, 필립, 마르쥬 세 사람은 요트를 타고 타오르미나로 출발한다. 요트 안에서 필립은 은근히 톰을 무안하게 만들고 그런 두 사람을 마르쥬는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톰은 요트를 몰기 위해 갑판으로 올라가고, 몰래 필립과 마르쥬의 대화를 엿듣던 중 자신이 혼자 육지에 남겨질 거라는 얘길 듣고는 급하게 요트의 방향을 돌리다 구명보트를 떨어뜨린다. 필립은 갑판으로 올라와 톰을 꾸짖으며 구명보트를 다시 올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고, 이때 톰은 요트에 묶인 채 바다 위에 떠있는 구명보트에 올라타게 된다. 그리고 필립은 작은 구명보트 위의 그를 버려둔 채 요트의 선실로 들어가 버린다. 홀로 버려진 톰은 요트와 연결된 줄마저 끊어진 보트 위에서 햇빛에 장시간 노출된 채 내버려졌다가 필립에 의해 겨우 구출된다. 다시 요트로 돌아오게 된 톰은 마르쥬의 옷 주머니에 여자 귀걸이를 넣어 필립과의 싸움을 부추기고, 결국 마르쥬는 중간에 요트에서 내리게 된다. 톰과 단 둘이 요트에 남게 된 필립은 자신을 죽이려는 톰의 계획에 대해 그에게 물으며 장난처럼 이야기를 이어가고, 필립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 톰은 칼로 필립의 가슴을 찌르고 만다.


영화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소설인 '재능 있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보다는 책과 동일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1999년 작품이 원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능 있는' 리플리를 더 살려낸 것은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톰 리플리'라는 인물은 타인의 서명을 위조하고, 거짓말을 지어내고, 타인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 내는 등 정말 다재다능한 능력을 선보인다. 그는 필립 그린리프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내재되어 있던 욕망을 맘껏 펼치게 되고, 그렇게 한 번 펼쳐진 욕망은 여름의 열기처럼 끝없이 피어오른다. 마치 세상이 그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도록 돕기라도 하듯 그가 꾸며낸 모든 일들은 큰 문제없이 착착 진행된다. 그러나 마치 광기에 가까운 듯 거듭되는 그의 욕망의 사슬은 그가 모르는 사이 서서히 그를 덮쳐오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되지만, 글쎄.... 그 막다른 골목에서 그렇게 끝나고 말았을까? 영화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책으로 리플리의 삶은 계속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각본 리처드 라그래브니즈 Richard LaGravenese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메릴 스트립 Meryl Streep, 애니 콜리 Annie Corley, 빅터 슬리잭 Victor Slezak, 짐 헤이니 Jim Haynie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들 마이클은 동생 캐롤린과 함께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그녀가 남긴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그러다 어머니가 그동안 숨겨왔던 한 남자와의 이야기가 적힌 일기 세 권을 찾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들 몰래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에 마이클과 캐롤린은 당황하지만, 조심히 일기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1965년의 여름, 마이클이 17살, 캐롤린이 16살이던 때, 남편과 두 아이는 일리노이 주의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흘 동안 집을 비우게 된다. 프란체스카가 홀로 남겨진 집에 길을 잘못 든 한 남자가 찾아오고, 근처 로즈먼 다리를 찾던 그에게 프란체스카는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인 로버트 킨케이드는 그렇게 프란체스카와 함께 차를 타고 로즈먼 다리로 촬영을 가고,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로버트와 다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프란체스카는 다음날 촬영을 간 킨케이드가 볼 수 있도록 로즈먼 다리에 메모를 붙여 놓는다. 다음날, 다시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면 일을 끝낸 후 오라는 프란체스카의 메모를 발견한 로버트는 다시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많은 감정을 나누게 된다.


이탈리아에 살다 군인이었던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오게 된 프란체스카는 이름 조차 잊힌 채 살고 있다. 집 앞의 우편함에는 남편의 이름을 따라 그저 '리처드 존슨 부인'이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듣고 싶은 음악도 마음대로 듣지 못하고, 싫어하는 것도 그저 감내하고 살아야 한다. 남편도 아들도 딸도 모두 사랑하지만, 그만큼 단란한 가정이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자신을 찾을 수는 없다. 선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남편의 반대로 아이들과 집안일에만 갇혀 지낸 지 오래이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꿈꾸던 삶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삶에 로버트가 걸어 들어온다. 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따위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프란체스카'라는 존재가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느끼는 그 수많은 감정에 집중하고 싶다. 삶의 여러 상황 가운데에서 기대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다시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가 겪는 감정들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불륜'이라는 것이 너무 컸고, 두 번째 보았을 때는 두 사람의 감정이 가장 크게 다가왔는데, 세 번째 영화를 보니 '사람'에 집중하게 된다. 그 여름 열기 속에서의 프란체스카를 보며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그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얼마나 섬세하고 연약하며 또 동시에 강한지 깨닫게 된다.



더티 댄싱 - 하바나 나이트 Dirty Dancing: Havana Nights


감독 가이 펄랜드 Guy Ferland

각본 보아즈 야킨 Boaz Yakin, 빅토리아 아치 Victoria Arch

출연 디에고 루나 Diego Luna, 로몰라 개리 Romola Garai, 셀라 워드 Sela Ward, 존 슬래터리 John Slattery, 조나단 잭슨 Jonathan Jackson

1958년, 혁명기의 쿠바,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미국인 케이티는 가족과 함께 아바나로 이사를 가게 되고, 숙소인 오세아나 호텔에 짐을 푼다. 가수들의 노래를 듣거나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보다는 제인 오스틴의 책을 더 좋아하는 케이티는 책 한 권을 들고 호텔 수영장에 나갔다가 아버지의 상사 아들인 제임스 펠프스를 비롯한 다른 미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쿠바인 웨이터 하비에르와의 첫 만남도 이루어진다. 케이티가 카디건을 벗느라 그가 들고 있던 쟁반을 떨어뜨리게 된 것. 케이티는 미안하다고 그에게 사과하지만, 다른 미국인 친구는 그를 무안하게 만들고, 케이티는 그에게 다가가 다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아직 아바나의 길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집으로 가는 학교 버스를 놓친 케이티는 길을 헤매다 우연히 도착한 광장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케이티는 그 무리들 가운데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하비에르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그런 그녀를 발견한 하비에르는 그녀에게 호텔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통성명을 하고, 함께 길을 걸으며 서로를 알아간다. 정부군의 진압 현장도 겪으며. 제임스의 초대로 컨트리클럽에 가게 된 케이티는 오만과 지루함으로 가득한 그곳을 벗어나 하비에르가 말했던 큐반 클럽인 '라 로사 네그로'로 제임스를 데리고 간다. 광장에서 보았던 큐반 댄스에 매료되었던 케이티는 큐반 클럽에서 하비에르와 춤을 추며 라틴댄스에 매력에 빠지고 만다.


적도에 가까워서 일까?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는 우리에겐 추운 겨울인 12월에도 한여름의 열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두 소년, 소녀의 열정이 먼저 다가온다. 혁명기의 쿠바에서 펼쳐지는 미국 소녀와 쿠바 소년의 이야기는 조앤 잰슨(JoAnn Jansen_영화의 안무가)이라는 사람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각본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매우 정치적이었던 원작에 비해 영화는 춤과 로맨스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던 혁명의 시대에 춤이라는 것으로 자유와 사랑을 누렸던 두 사람. 특히 광장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미친 듯 춤에 열중하고 있는 아바나 사람들 틈의 하비에르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아프로-큐반 댄스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라는 그의 말은 이내 케이티와 하비에르의 춤으로 이어진다. 경직되어 있던 케이티의 움직임과 케이티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웠던 하비에르의 몸짓은 점차 하나를 이루어 가고 그 가운데 그들은 둘만의 세상, 둘만의 시간을 누린다. 물론 그들의 세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누렸던 그 열정과 열기의 순간은 평생 그들의 마음에 한구석에 자리할 것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느껴지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에 가슴이 뛴다. 그리고 그 느낌이 좋아서 또다시 이 영화를 찾게 된다.





Next

여름 20일 - 26일: 호러, 스릴러 위크

작가의 이전글 여름을 위한 영화 31편 0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