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사랑일랑 있고 없고

by 유중유강

공교롭게도 요즘 읽은 책들의 주제에 사랑이 다 걸려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데 다들 사랑에 관심이 많은가 싶다. 살면서 '사랑 밖에 난 몰랐'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나름 낭만적으로 살고 싶다면서도 내 인생에 사랑은 왜 부각되지 않는가.


책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몇 권의 책에서 같은 질문을 맞닥뜨리고 나니 답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는 태도, 낭만적인가.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색은 아무래도 강렬한 레드. 불같이 열열한 사랑만이 진실한 것인 양 우리는 믿는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상대에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때 난감해진다. 아 이 사람도 아닌가?! 망했네. 너와 나를 모두 태우고 재만 남기는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후회 없이 행복하려나. 어떻습니까 경험자 여러분? 전 경험이 없어서요. 감정의 진폭이 그리 크지 않게 살아온 나로서는 이미 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 그런 사랑 못해봤어!!! 너 죽고 나 죽는 절절한 사랑을 다음 생에는 해볼 수 있기를.


사랑은 이타적인 사람이 더 잘할까, 이기적인 사람이 더 잘할까. 왠지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이 사랑을 더 잘하고 행복해야 될 것 같은데, 어쩌면 '명은원' 같은 사람이 더 잘하려나?! 사랑을 잘한다는 건 또 뭘까. 상대를 잘 구슬려 내가 하려는 사랑을 잘 만들면 되는 것인가. 공기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나는 도통 상대를 움직이는 데는 영 소실이 없다. 그래서 내 사랑은 이 모냥인가. 그렇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의 필요를 잘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할 테니 실패가 적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에 실패하면 그건 뭐 왜 뭐.


사랑을 하고 있다면(결혼 따위를 전제하지 않은 모든 사랑을 망라하여) 그는 무조건 티가 난다. 주는 사랑이든 받는 사랑이든 사랑은 반드시 흔적을 갖는다. 그 흔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척추뼈 어딘가에 붙어서 눈물샘 어딘가로 흐르며 나를 빛낸다. 매일 나는 달라지며 어제의 나를 경신한다. 애써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변한다. 변한다는 관점에서 교육과 닮았지만 자발적이고 자연스럽다는 점에서는 교육과 다르다. 그래서 사랑만으로는 교육이 어려운 것인가 싶기도 하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와 제인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는데 그렇게 맥락이 달라지고 나니 사랑이 보였다. 사랑은 많은 껍질을 두르고 있다. 껍질까지 모두 합쳐 사랑인 것처럼 우리를 현혹하지만 알맹이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실패와 눈물은 필수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를 모르는 만큼 사랑에 실패할 것이며, 딱 그만큼씩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단지 서로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데 매매계약서를 손에 넣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아늑한 home sweet home을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거만해진다. 으이그 어리석도다.


부자들은 부자라서 꿈을 꾸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돈이 충분히 많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놀다 죽을 생각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이 아닐까. 다해볼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기는 더 어렵지 않을까? 망해봐야 그깟 몇 푼일 텐데 그 타격은 상상하는 나만 받지 당사자는 어깨 한 번 으쓱하고 지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부자의 사랑이 빈자의 사랑보다 멋지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사랑을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사랑에도 행복에도 돈이 들지만 돈이 전부는 아닐 테니까, 각자의 실력껏 구멍을 메꾸려 안간힘을 쓴다.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무엇을 가짐으로써 생겨나는 자격증 같은 것이 아니다. 증명해 낼 수 있는 실체가 있지 않고 다만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알게 한다. 실제로 그 일을 해낼 수 있느냐와 별개로 무엇을 할 수 있다 믿게 되는 경험, 그것의 출발이 사랑이라 믿는다. 로체스터가 돈 많던 시절에 제인에게 보였던 마음이 사랑인지 알 수 없었던 건 그 태도가 제인으로 하여금 무엇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완벽한 실종'에서 등장인물 모두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누구에게서도 변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은 채 사랑 사랑 외쳐대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사랑은 기꺼이 나를 변화시켜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 끊임없이 상대의 눈으로 나를 보며 스스로 변화하고 끝내 내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 믿는다. 그게 사랑이 하는 일이다. 타 죽지 않고 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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