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편파적임
우리는 우정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 질문에 앞서 다른 질문을 해보자. 나와 너의 관계가 우정으로 넘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가 아는 사람 모두와 우정을 나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인과 친구 사이에 무엇이 놓이게 되는지, 다시 말해 무엇이 있어야 우정으로 나아가는지 생각해 보자.
나이가 비슷하면 친구가 되나? 관심사가 같으면 친구가 되나?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우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치우치는 마음, 어느새 기울고 있는 마음이 있어야 우정이 시작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정이라 말하면서 공명(公明:사사로움이나 치우침이 없이 공정하고 명백한)하게 군다면 그는 과연 나의 친구인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우정을 말할 때 무엇을 기대하는가. 옳고 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똑바로 살라고 북돋는 이를 원하나. 그건 친구에게서 찾을 게 아니라 선생님이나 변호사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친구에게 나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런 것을 뛰어넘어 기막힌 편파성을 기대한다. 누가 뭐래도 니가 맞다고, 그게 어떻게 아닐 수가 있냐고 덮어놓고 침 튀기며 맞장구 쳐주길 바라면서 카톡을 남기는 것 아닐까. 거기에 '야, 그건 아니지, 아니 난 빠질게'라는 말은 맞는 말일 지언정 무언가 옅어지는 기분이 든다. 나도 알지,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바보 같고 이치에 맞지 않는지. 근데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따끔한 주사나 장황한 명세서가 아니라 뜨겁고 끈적한 욕 한 바가지라고!
아 또 한 가지는, 나만 편파적이라면 곤란하다. 그건 연예인과 팬의 관계다. 너는 나의 연예인이 아니다. 일방적인 관심만으로는 우정이 성립할 수 없다. 호의는 3번까지! 그 이상 넘어가면 그건 기만일 수도. 그전에 정리되긴 할 것 같은데.
나를 자꾸 증명하게 만드는 관계에 우정이 끼어들 틈은 없다. 내가 너와 하고 싶은 일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잘한 일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오늘 먹은 떡볶이가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를 논하는 것이다. 몰랐구나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