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강한 게 뭔 줄도 모르면서
이 글의 소제목인 '진짜 강한 게 뭔 줄도 모르면서'는 최근에 다시 본 '비밀의 숲2'에서 최빛 서장이 한여진 경위와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 했던 '진짜 끌어들인다는 게 뭔 줄도 모르면서'의 변주이다. 평소에도 나는 인간성에 대한 회의를 품고 살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면서 그것을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고, 그리하여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를 한다. 물론 번번이 실패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어떤 가능성 앞에서 안도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최근의 개인적인 경험은 나를 다시금 인간혐오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고, 이번에는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초경쟁 사회라고들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하다 끝날지도 모르겠다. 누구와 경쟁하는지 경쟁의 목표는 무엇이고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로 일어나자마자 아니 자는 동안에도 우리는 경쟁 열차에서 내리는 법을 모른다, 아니 모른 척한다. 고약하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사탕발림으로 아이들을 '기만'하는 것 같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들 그 밑에는 어차피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운동장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런 게 버젓이 있는데도 안 보이는 척하는 우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를 잘 모른다는 게 자랑도 아니지만, 정치가 아니라도 우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한 사람이 구속되고 그가 범한 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고구마 줄기 엮듯 줄줄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니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은 기분이 들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밀려온다. 그가 받았다 하여 크게 이슈가 되었던 명품백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그야말로 '조그마한 파우치'가 맞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하다기보다는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 '한심하다' 여기는 부분인데, 그가 무엇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녀를 한심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그것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올라간다. 나의 알고리즘은 요즘 많은 명품을 보여준다. 내 돈 주고는 사기 어려운 고가의 명품을 깔별로 가지고 있다는 연예인부터 짝퉁 가방이 얼마인지에 이르기까지 한참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징그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간은 본래 그러한가. 나는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고 살고 있나.
질문을 바꿔보자. 나는 어떻게 살아야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믿는가? 그것은 실제 경쟁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관련된다. 우리는 늘 나아지고 싶으니까. 자기계발이 삶의 큰 가치가 아니더라도 애써 삶을 망치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내가 즐거워 시작한 일'이어도 어느새 우리가 어떤 경쟁의 판에 입장에 버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비교'는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을 사람마다 갖게 되는 것이리라.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나 즐거운 대로 살면 참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다가, 정말 좋을까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나란 인간은 도대체.
아까 말한 그 사람은 '돈'이 일생 최대의 목적일지도 모르겠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돈을 추구하는 삶이 갖는 퍼석거림을 나는 어디까지 감당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돈을 잘 모르는 삶도 지금에 와서는 어리숙해 보이지만, 머릿속에 돈만 있는 삶 또한 못지않게 어리숙해 보이는 것은 나의 기만인가. 그 안에 무언가 있었어야 한다고, 그 무언가가 삶을 지탱하는 것이 아닐까 낭만적인 생각을 해본다. 장르를 불문하고 내가 돈을 수단 삼을 수 있는 어떤 것, 그것을 찾는데 온 인생을 다 걸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소위 명품이라는 것으로 나를 치장할 때 흔들리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못된 마음이 나에게 있다. 저 사람은 자기한테 뭐가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저렇게 '돈지랄'을 해가면서 몸집을 부풀리려 하는 것일까. 과연 형식은 내용을 만들 수 있는가. 형식 없는 내용은 힘을 갖기 어려운가. 내용은 충실하지만 형식이 매력적이지 않아 실패한 것들을 우리는 또 많이 보지 않았던가. 둘 다 챙기는 기민한 똑똑함이 나에게는 부족하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유력해 보이고 싶어서 우리가 하는 많은 말과 행동은 과연 정말 나를 강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나. 그런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면 무섭기는 하지만 가까이 두어야겠지. 그 사람의 정확한 판단력을 두려워하면서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오늘도 어제만큼 물렁할 뿐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내가 숱하게 무릎이 꺾여가며 만들어온 나의 시간을 믿는 수밖에. 그렇게 또 오늘을 채우는 수밖에. 다정한 나의 사람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