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들을 준비되었는가
우리는 진실해야 한다고 배운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배운다. 다양한 거짓말을 걸러내는 다양한 방법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대단한 능력으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감언이설로 사람을 꾀어내는 온갖 술수들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사람에게 진심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진심을 전하는 것이 남녀 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진정성을 '운운'하는 일은 그저 낭만적인 웃음거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심을 전했는데 그 방식이 서툴러, 혹은 그게 상대가 원하는 형태가 아니어서 구겨지고 버려질 때 그 진심은 잘못인가. '나는 진실했으니 그걸로 됐어.'라는 자기 합리화도 꼴배기 싫긴 하다. 되긴 뭐가 돼. 상대가 당신의 진심을 알지 못했잖아. 통하지 못했으면 그다음이 없는 거잖아, 그래도 괜찮다는 거야?
요즘은 사과하면 진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잘못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반대로 상대가 잘못한 게 명백하다면 '끝장내도 된다'라고 믿으며 밀어붙이는 캔슬문화의 시대다.
1. 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하고 텀블러 체크를 까먹고 텀블러를 흔들며 텀블러에 담아달라 요청하는 손님
2. 주문을 다시 하라는 점원
3. 그 점원에게 소리치는 손님
4. 경찰 부르겠다는 점원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왜 이렇게 된 걸까 이상하고 무서웠다.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한 비겁한 내가 있었다. 사실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주면 '간단할' 이슈가 아니었을까 생각하지만, 나는 그 점원이 아니니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이 여전히 남는다. 무엇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걸까.
진심은 잘 전하면 끝일까? 이만하면 된 것일까? '싫다는데 왜 이래!'를 시전 하는 과정에서 진심을 전달한다는 이유만으로 약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진심 앞에 강자와 약자라니. 힘의 논리라니. 그 마음 안에 숨은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한 어린 마음을 본다.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고? 내가 틀렸을지 모른다는 것을 들키기 싫은 비겁함은 아닐까. 다시 판단해야 하는 귀찮음, 이미 굳혀버린 마음이 허물어지는 붕괴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매 순간 나를 갱신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나라는 세상에 어떤 균열일지도 모른다. 그걸 깨야하는 일, 새로 해내야 하는 일은 당연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마냥 버틴다고 막아지지는 않을 텐데? 자기 개발서에서 하는 말들이 그런 것들 아닌가. 책만 읽고 실천하지 못하는 헛똑똑이들의 세상 같다. 마음을 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잘 듣지 못하는 것도 큰 무능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