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향해 피는 꽃

by 해피가드너



정원을 가꾼 지 5년이 되었다. 지인이 건네준 작은 모종 몇 개로 텃밭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은 농작물들을 우리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넉넉히 나눌 수 있었다. 처음 해본 솜씨치곤 소질이 있다고 다들 칭찬해 주었다. 나도 신기했다. 흙을 가까이 한 적도 없었는데 흙의 냄새와 감촉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해서다.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서일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은퇴하며 나만의 시간이 생기자 뒷마당에 심은 나무와 꽃을 돌보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런 정원에서 인생 공부까지 하게 될 줄이야.





요즈음 우리 정원은 혹독하게 추웠던 지난겨울의 여파 때문인지 아직도 잔뜩 웅크린 모양새다. 봄의 전령사라 믿었던 동백꽃은 지난 2월에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갈색으로 얼어버렸다. 겨울에 피는 귀한 꽃이라 우리 부부가 좋아했는데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려 마음이 무거웠다. 꽃을 돌본다는 건 기쁨과 상실을 함께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2월의 헬레보루스는 더 처참했다. 가죽처럼 두껍고 짙푸른 잎들은 땅바닥에 널브러졌고 눈 속에 파묻혀 흔적조차 사라진 듯 보였다. 해마다 정원의 시작을 알려 주었던 꽃이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꽁꽁 얼어붙은 눈더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날씨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3월 초가 되자 정원을 덮고 있던 눈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마침내 꽃들을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하얀 이불이 걷히던 날. 그 아래에선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가운 땅바닥에서 죽어가는 줄만 알았던 헬레보루스 잎사귀 사이로 자줏빛 꽃봉오리들이 고개를 쏘옥 내밀고 있었다. 세상에나. 저 연약해 보이는 것들이 폭설과 추위를 어떻게 버텨냈을까. 기특했다.


그러면서도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 꽃을 피우는 우리네 모습과도 닮아 있어서다.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아도 묵묵히 노력한 후에 갖는 보상 같달까. 이는 끝없이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다 마침내 완성하는 글 한 편이며 수많은 연습 끝에 무대에서 피아니스트가 받는 박수이기도 했다.


며칠이 더 지나자 옹기종기 모여있던 꽃망울들 하나둘씩 피어났다. 헬레보루스는 꽃이 만개한 후에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지 않는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누군가를 쓰다듬어 주는 듯한 겸손한 모습이다. 꽃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어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추었다. 눈높이를 맞추고 나니 자세히 보였다. 겉보기엔 수수했지만 안쪽에는 정교하고 치밀한 무늬와 단단한 수술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꽃은 아무에게나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낮아진 사람에게만 슬며시 열어 보이는 비밀 같은 꽃이다. 서서 내려다봤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차분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이었다.


고개를 숙인 헬레보루스를 보며 생각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도 이런 것일까. 기꺼이 무릎을 낮추어 타인을 바라봐 주는 것, 내가 이룬 성취를 뽐내며 고개를 들지 않는 것. 아직도 그 답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에 있음을 헬레보루스는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오늘도 나는 장화를 신고 정원에 나간다. 꽃샘추위가 아직도 가시지 않아 공기는 차갑지만 코끝을 스치는 흙냄새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고 아련하다. 앞으로도 정원은 나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계절과 시간, 그리고 살아남은 것들의 모습으로 조용히 보여주겠지. 땅을 향해 피는 헬레보루스처럼.




헬레보루스 (Hellebore / Helleborus)

꽃말: "불안함을 진정시켜 주세요", "나의 마음을 달래주세요"

사순절 장미, 크리스마스로즈라고도 불리며 내한성이 강한 식물입니다.

겨울의 찬 바람 속에서도 단아하게 피어나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원에 핀 헬레보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