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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걸 Aug 14. 2024

성가신 놈/동백꽃필 무렵 까불이?

Predator?/I still see you/창문과 그 너머

Continued.     


Predator?

순간, 잠시 멈칫했다. 왜냐면 그가 뜬금없는 말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 내가 보니까, 아침마다 창문을 닦더라?"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난방을 계속하니까, 밖은 춥고, 안은 따뜻해서 창문에 결로가 생겨서 그런 것 같아."

그가 대답했다. "그럼 창문을 아주 조금 열어놔. 그러면 안 생길 거야."

"창문을 열면 또 춥잖아. 아무튼 알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사실 나는 더 이상 그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마음으로, 그냥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내가 보여줄게."

"아니야,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그가 내 의사를 무시하듯 현관문을 밀고 들어왔다. 당황스러웠다. 이 찝찝한 느낌은 뭐지? 뒤따라 들어온 그는 거실에서 창문을 열며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거야."

"알겠어." 나는 최대한 평온한 척하며 대답했다. 그가 다시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고마워, 알려줘서. 이제 됐어."


하지만 그는 여전히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너의 거실을 보니까, 물건이 별로 없네?"

순간, 내 몸이 얼어붙었다. 생각이 까마득해졌다. 그가 거실을 쓱 둘러본 것을 깨달았다. 뭐지? 짜증이 갑자기 신경이 곤두서는 쪽으로 바뀌었다.

다시 밖으로 나간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너네 남편이 요즘 안 보이더라?"

"응, 한국에 가 있어."

"그래? 그럼 언제 와?"

"곧 와." 내 의식과는 달리, 그저 곧 온다고 답했다.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는 느닷없이 말했다.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뭘?"

"내 거실에서 너의 2층 침실이 잘 보인다는 거."

Do you know I See you~I see you ~~ I see you~~~ 마치 메아리처럼 나의 귓전에 박혔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이놈 뭐지? 그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옷 갈아입을 때 조심해."

"그래? 몰랐네.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겨우 말을 잇고는 그에게 말했다. "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다음에 이야기하자."

그렇게 그날의 대화는 끝내고 현관물을 닫고 잠시 소파에 앉았다.

이 성가신 놈은 마치 드라마 동백꽃필 무렵의 까불이? 같은 놈일 수도 있다. CURTAIN TWITCHER가 아니라 

Predator에 더 가깝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하고, 머리가 멍해졌다.

영국에서 만 60에 가까운 노인이 17세 딸을 둔 상황이다.


제기랄! 30대 때는 폭탄이 터지고 사방이 살인사건까지 일어났으며, 테러리스트로 휩싸인 키부츠 근처에서도 떨지 않았는데, 지금은 영국에서 이런 일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니!!!

나이와 신체의 변화가 정신력까지 무너뜨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용감하게 그러나 떨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 

미리 경고를 받았으니 오히려 더 나은 상황일 수도 있다.

삶에서는 경고조차 없이 큰일이 벌어지는 것도 부지기수이기에.


나는 과거 사회복지사로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싱글맘들을 도왔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녀들의 상황을 어쩌면 머리로는 이해했었을수도  있었겠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으므로...


그날은 두려움과 걱정에 바들바들 떨다가 그다음 날(남편과 시차차이로 인하여 통화가 불가능함)

남편과 대화를 나눈 뒤, 나는 위로를 받았고 행동원칙을 하달받았으며,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는 지인의 경험과 조언을 들으며, 추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개월이 지난 5월 어느 날, 다시 그와 마주쳤다.          


창문과 그 너머/따스한 5월의 어느 날 

날씨가 따뜻해지고, 햇살이 좋아서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기 전, 마침 사랑스러운 82세 론이 집 앞에 나와 계셨다.


"Hello, Ron! 나 리들 슈퍼마켓에 가는데, 혹시 필요한 거 있어? 네가 좋아하는 작은 귤 같은 거."

나는 겨울 동안 론이 좋아하는 귤을 자주 사다 드렸다. 그게 내가 론에게 할 수 있는 작은 배려였다. 유럽 연합에서 귤을 수입하는 곳이 많았으니까.

론이 말했다. "못 가게 되었어."

"어디를 못 가게 되었다는 거야?"

론이 얘기하던 그곳은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친척 집이었다. 그 친척이 아니면 론은 바닷가로 바람을 쐬러 갈 수 없었다.

"대상포진에 걸렸대."

"아이고... 그럼 이번 주에는 못 가는 거야?"

"다다음 주에 가기로 했어."

나는 론을 위로하려 했다. "속상하겠지만, 이번 주는 비가 온다잖아. 아마도 다다음 주에는 날씨가 더 좋지 않을까? 바닷가에 갈 때 날씨가 좋으면 더 좋잖아.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

그렇게 론과 짧은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그 순간, 앞집에 사는 그가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났다. 내가 현관문을 나설 때, 분명히 그는 골목 아래에서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냥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려했지만, 성가신 그놈이 빠른 걸음으로 내 옆에 따라붙으며 말을 걸었다.

"야, 왜 너 나보고 모른척해?"

"내가 언제?"

"조금 전에."

"너 다른 이웃과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그런데 언제 내 옆에 온 거냐?"

그가 갑자기 나에게 더 가까워지더니, 내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나는 무심코 메고 있던 배낭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의 손은 내 어깨 대신 배낭에 닿았다.

속으로 '재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짜증이 치밀었지만, 그저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너 그거 알아?"

"뭘?"

"엊그제 남자 셋이 저쪽 집 자동차 앞유리문을 박살 냈다는 거."

"티나에게 들었어. 그런데 그게 왜?"

"그거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 술을 마셨거나, 아니면 마리화나를 했겠지."

"마약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의 눈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의 얼굴이 보기도 싫었고,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어갔다.

"요즘 애들은 마약해. 알코올은 과거 세대가 하는 거고."

그제야 그는 내가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 성가신 놈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따라오며 다시 말을 걸었다.

"나는 여전히 창문을 통해 너를 본다는 것, 알아? I still see you through the window!~

제기랄!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놈은 그저 성가신 정도가 아니라, 더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럼 잘 됐네. 네가 우리 집 2층 창문으로 혹시 나쁜 놈들이 기어오르는지 볼 수 있겠구나. 네가 늘 우리 집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나는 아무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도대체 이런 대답은 어디서 나온 건지.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던 경고가 순간 튀어나온 걸지도 몰랐다. 나는 과거에 많은 위급한 상황을 겪었고, 그 경험이 위기에서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되어주었다.

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마치 복싱에서 어퍼컷을 맞고 나동그라진 것처럼.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잠깐만, 나 저 집 OO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가봐야겠다." 라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마치 일이 있었는데, 잊었던 것이 떠오르듯, 천천히 자연스럽게 근처 이웃의 앞마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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